아이스킬로스는 연극 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극작가였다.

기원전 490년에 제1차 폐르시아 전쟁에 참가하여 마라톤 평야에서 있었던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이 전쟁에서 아이스킬로스의 형은 전사하였으나 아이스킬로스는 한평생 이 전투에서의 공을 자랑했다고 한다.

처음 작품 경연에 참가한 것은 기원전 499년 이었으나 첫 우승의 영광은 기원전 484년에 차지하였다. 그 후 계속 명성을 떨쳤다.

그가 쓴 작품은 약 99편이나 현재 7편만 전한다. 그는 기원전 455년 시필리아에서 숨을 거두었다.

 

1.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신의 일족과 티탄족이 싸울 때에 제우스 신은 부친 크로노스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자기가 천지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제우스의 편을 들었던 티탄의 일원인 프로메테우스는 정복자요 군주인 제우스의 비위를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즉 당시 존재하고 있던 인종은 말살해 버리고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려는 제우스의 계획을 안 프로메테우스는,

인류를 동정한 나머지 하늘 나라에서 불을 훔쳐다가 땅의 인간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인간 문명의 시초를 이루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벌로써 제우스는 스키티아 황무지 바윗돌 위에 프로메테우스를 묶어 놓고 영원토록 고문을 당하도록 포고령을 내렸다.

실제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이야기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바위에 프로메테우스가 결박당하는 과정과, 그 이후 코로스, 오케아노스,이오와의 대화이다.  

 

2.오스테이아 삼부작

  1부: 아가멤논, 1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3부: 자비로운 여신들

탄탈로스의 손자인 아트레우스 왕은 그의 동생 티에스테스와 왕위 계승을 위해 암투를 계속했다.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처를 유혹한다.

이에 분노한 아트레우스는 틈을 보아 티에스테스의 아들 둘을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내어 국을 끊여 티에스테스에게 먹인다.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를 죽인다. 대신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그를 살해한다.

아가멤논과 처 클리타이메스트라 사이에는 오레스테스라는 아들과 엘렉트라, 이피게네이아 두 딸이 있었다.

아가멤논의 동생 메닐라오스의 처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하자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터지는데,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항해하기에

앞서 노한 해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바다에 던져 희생물로 바친다. 왕비 클리타이메스트라는 이 행위를 용서할 수 없다.

십 년간 트로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왕비는 티에스테네스의 아들인 아이기스토스의 정부가 된다. 아이그스토스는 아버지를 죽인 아가멤논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보며 그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아내를 유혹했다. 아이그스토스와의 사랑을 위해 왕비 클리타이메스트라는 어린 자식 오레스테스를 포키스 왕국에 보낸다.

왕비는 따을 죽인 아가멤논을 살해할 것을 모의한다. 3 부작 실제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1부 : 아가멤논

아가멤논 대왕이 트로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뒤 아르고스로 개선하여 의기양양하게 승전을 선언하는 장면과 궁성에 들어서 왕비 클리타이메스트라와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는 과정을 그린다.

 

2부: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아가멤논이 살해되고 아르고스는 클리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잔악한 통치하에 들어간다.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그의 정부에 대해서 증오와 멸시의 불을 일으킨다. 이때 정배갔던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친구인 필라데스와 함게 돌아와 남매는 아버지 무덤앞에서

처음 만난다. 오레스테스는 궁전에 가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나그네로 가장, 궁전에 들어가는데 성공. 결국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너를 기른 것은 나다.'라고 젖가슴까지 풀어헤치는 클리타이메스트라도 쓰러뜨린다.

 

3부:자비로운 여신들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긴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을 찾아 델포이 신전으로 간다. 피곤에 몰려 졸고 있는 중에 복수의 여신들이 그를 포위한다.

클리타이메스트라의 망령이 나타나 복수의 여신들에게 복수를 맹세케한다.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의 가호로 이곳을 빠져나가 아테네로 가

뒤쫓아 온 여신들과 한자리에서 아테나 여신의 재판을 받아 무죄 선고를 받고 고향인 아르고스로 돌아간다.

 

코로스장 : 혹시나 말씀하신 것보다 더 지나친 일을 저지른 건 아니신가요?

프로메테우스: 인간들이 앞날의 운명, 다가올 재앙을 내다보지 못하도록 만들었지.

코로스장: 불행을 내다본다는 건 좋지못한 병이죠. 그래 어떻게 그 병을 고치셨나요?

프로메테우스: 그들에게 맹목적인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지

코로스장: 그것 참 훌륭한 선물을 주셨군요.

프로메테우스: 그뿐 아니라 불도 주었지

 

프로메테우스: 근심 걱정이란 멀리멀리 떠돌아다니는 것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우리 주위에 가가이 있는 것이니까.

 

희망이 있을 때, 희망에 신념이 깃들 때, 비로소 기나긴 인생도 즐거운 것이 되리니

 

프로메테우스: 때가 되면 알겠지. 세월은 흘러가면서 만사를 가르쳐 주는 법이니까.

헤르메스: 하지만 시간이 아직 네놈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질 않았구나

 

세상이란 쓰러진 사람을 더 세게 밟는 법이니까요

 

행복한 일생을 평화로운 죽음으로 장식하는 자만이 축복받은 자니라

 

클리타이메스트라: 난 너를 길렀다. 같이 나이를 먹으며 살 수 없을까?

오레스테스: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저하고 같이 산다고요?

클리타이메스트라: 이렇게 된 것은 운명 때문이다. 내 아들아

오레스테스: 지금 이 순간을 갖게 한 것도 운명일테지요.

클리타이메스트라: 조심해라. 부모가 죽을 때 남길 저주가 있으니.

오레스테스: 낳자마자 재난 속으로 아들을 내던진 부모

클리타이메스트라: 내던진 것이 아니라 친지에게 널 보냈을 뿐이다.

오레스테스: 멋대로 태어난 몸. 난 두번이나 팔려 다녔소

클리타이메스트라: 널 팔아 대가를 받은 적은 없다.

오레스테스: 그 대가는 수치지. 분명히 책망하고 있소...........

클리타이메스트라: 아 내가 낳고 기른 것은 독사였구나.

 

아이기스토스+클리타이메스트라 -> 아가멤논 살해, 오레스테스 ->아이그스토스 살해, 클리타이메스트라 살해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남기고 싶은 유산은 무엇인가?

당신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어떻게 칭송해주길 원하는가?

목숨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어떤 분야에서 탁월해야 당신의 운명을 완수할 수 있는가?

 

특히 남자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이들의 일상적인 욕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는 이미 52세 혹은 63세가 되어 있다.

 

자신이 올바른 목적을 가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신의 목적에 감동을 느끼는가?

그것이 마음을 움직일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는가?

 

훌륭한 스토리는 결코 관계가 먼 요소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러한 스토리들은 결코 보잘것없는 주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들은 항상 능률적이고 놀랄 정도로 간결하다. 통일성은 설득력 있는 스토리의 표상이다. 훌륭한 스토리는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내부적으로 명확한 논리를 지닌다. 당신이 공유하는 생각, 말하는 모든 단어, 표현하는 모든 문장은 독특한 스토리의 몇 가지 단면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훌륭한 스토리가 당신을 감동시키고 격려하듯이, 궁극적인 사명이 당신의 활력을 북돋워주려면 반드시 모든 요소가 조화되어야 한다.

당신이 공언한 가치는 사명의 각 부분과 일치해야 한다.

삶의 어떤 부분이 궁극적 사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무엇이 잘못인지 조사하여 그것을 바꾸거나 제거해야 한다.

 

올바른 스토리를 작성하려면 삶의 근저를 이루는 요소가 대부분 가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진실과 낙관주의 간의 균형은 아주 미묘하다. 낙관주의가 현실과 크게 괴리되면 낙관주의 성향이 개인의 인생 스토리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그것은 비관적인 선입관만큼이나 해롭다. 낙관주의가 우리의 현실 감각을 크게 손상한다면 그러한 낙관주의는 부정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어야 한다.

 

우리가 용인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음으로써, 그것도 고의적으로 방조함으로써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것이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다른 대안을 찾는다.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한 사람이 묻는다. "어떻게 파산한 거요?"

다른 사람이 대답한다. "두 가지 방식이요. 점진적으로 그리곤 갑자기 그렇게 되었소."

 

당신이 신문기자인데 스토리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서 몇 개의 멋진 인용문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래서 인용문의 단어를 살짝 손질하여 베껴 쓰기 시작한다.

한 번 그렇게 하고 나면 두 번 혹은 백 번을 위조하고 베낀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얼마 후 당신은 인물이나 사건사고마저 날조하여 기사를 쓰게 된다.

 

누군가 당신의 스토리를 장악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뇌의 회색물질, 당신의 스토리가 탄생하고 살고 있는 뇌의 회색 부분을 차지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를 세뇌시키려는 것들은 이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모두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형상 지으려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영향력이다.

우리의 가치나 사고, 느낌이나 언어,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마음에 대한 '소유권'을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 우리 존재의 상당 부분을 적당한 가격으로 팔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의 가치나 신념, 사고나 행동이 최고 입찰자에게 팔려나간다.

 

성공적인 세뇌는 개인의 신경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꾼다.

뇌기능 지도에 의하면 신경구조는 각각의 자극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 신경경로는 잘 포장된 도로와 같은 것으로 전기 자극이 규칙적이고 빈번하게 소통된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고, 결국 우리의 정체성이라든지 인생 스토리의 변화를 야기한다.

 

인간의 뇌기능은 아주 쉽게 손상된다. 의지력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외부적으로 강요되는 정신 착란을 막지는 못한다.

우리가 자신을 믿고 강인한 독립심과 인내력을 지녔더라도 우리의 신념이나 행동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는 아주 쉽게 환경에 동화된다. 삶의 목적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속인다.

 

우리의 뇌는 아주 대단한 위조자다. 기억과 인식의 융단을 짜는데 그것이 아주 매력적이어서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거의 간파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화폐위조자다. 모두가 가짜 지폐를 찍어내고 그것을 거래대가로 흔쾌히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가 잘 조율된 사기의 가해자이자 희생자임을 모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신념과 가치는 유전되거나 유전자에 기록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면적인 목소리가 올바르지 않으면 올자른 스토리를 작성하지 못한다

 

우리가 전하려는 핵심 포인트는 스토리가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스토리는 목적을 지녀야하며, 스토리가 진실해야 하며, 스토리가 희망찬 행동을 유도해야 한다.

 

세상의 문이 내게 활짝 열려 있는데 나는 멈칫거리며 발굼치를 들고 기웃거리기만 해왔다.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다. 나는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갈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진전은 "외부의 목소리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모다 많이 귀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일기에서 위선은 금방 드러난다. 실질적으로 누구도 자신의 본 마음을 오랫동안 숨기지 못한다.

어조가 진실하지 못하므로 노련한 공산당원은 개인의 일기를 검사하며 이내 거짓을 들춰낸다.

 

당신의 새로운 스토리는 미래의 청사진이다. 그것은 당신이 변화시키고 싶은 삶의 영역에서 새로운 인생경로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다.

 

멀티태스킹은 비범함의 적이다. 안된 말이지만 인간은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종업원이 여러가지 일을 할 때 그들은 실질적으로 어떤 일에도 몰두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일에 부분적으로 방심하고 있는 상태다.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몰입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집중하고, 최대의 에너지와 최고의 에너지를 투입한다는 뜻이다.

 

목적이 가치가 있고 성취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때 희망은 사람들에게 활력을 제공한다.

 

정신세계의 95%에 달하는 잠재의식세계를 훔쳐보고 미래의 사건을 대략 예견할 수 있지만 그러한 미래의 방향을 수정하게 하는 것,

특히 잠재의식이 우리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었을 때 진로를 수정하게 하는 것은 바로 5%의 의식세계다.

말할 필요도 없이 5%의 의식세계는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우리 인간을 다른 종들과 구분짓는 결정적인 요인도 바로 우리의 의식이다.

이것은 자율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이식하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스토리를 반복해서 쓴다. 신체, 감정, 정신, 영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한 일을 일기로 쓰거나 다른 형태로 기록한다.

.반복해서 읽는다. 예컨데 출근하기 전에 그것을 검토한다.

.거듭 생각한다

.스토리의 내용을 시각화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그리고 자신에게 은밀하게 이야기한다.

.신중하게 실천하여 새로운 행동습관으로 만든다.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의지를 갖고 순간순간 의미를 탐색하기를 희망한다.

또한 생각의 감옥, 즉 한계를 만들어 스스로 가능성을 가로막지 않고, 나아가 타인과 세상으로 관심을 확대하기를 원한다.

 

현대인을 위협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삶의 의미나 내면의 실존적 공허함이다.

잠재해 있는 공허함은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낼까? 권태로운 상태에 있을 때이다 -빅터 프렝클-

 

우리는 때로 삶의 중심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빈둥거리며 겉돌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고 때로는 혼자 걷는다.

 

우리의 삶에 있어 권력추구는 쾌락 추구와 동일한 선상에 있다. 그것은 '저 밖에'있다.

직원, 직장상사, 고객, 주주, 아이들,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가게 점원에게 우리가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며 매우 위험한 착각이다.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힘은 확실하지 않다. 파워 게임에서는 항상 경쟁상대가 있고 경기장은 수시로 바뀐다.

신들에게서 커다란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라는 명령을 받은 그리스의 영웅 시시포스가 마지막 순간에 바위를 놓치는 것처럼,

권력추구는 끝이 없고, 기쁨이 없는 노역이 된다.

 

몇 십 년 전 그룹치료의 일환으로 '권력의 원칙'을 조명한 기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우선 구성원들로 하여금 얼마 동안 함께 시간을 지낸 후 리더를 선택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신중하게 리더를 선택한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리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묻는다. 진정한 리더는 리더 뒤에 있는 리더였다.

 

권력이 경기장에서 뛰고 있을 때 항상 또 다른 권력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

권력은 피곤한 게임이며, 쾌락과 마찬가지로 덧 없고 항상 예기치 못한 힘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의 광할한 탐험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쾌락 의지나 권력 의지를 넘어 선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내부로부터 온다. 그 의미는 각자가 발견하고 통제하고 실현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하찮더라도, 아무리 큰 힘과 권력이 방해하더라도 의미는 우리를 지탱해 준다.

무엇보다 의미는 우리가 견뎌야 하는 그 어떤 고통과 괴로움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바쁘게 살고 목표와 계획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할일이 없어서 마치 죽음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낭비가 어디 있는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 해결되고 나면 '무엇을 위한 생존인가'하는 문제가 등장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삶의 수단(생계 수단)을 갖고 있지만 삶의 의미는 갖고 있지 않다. -빅터 프랭클-

 

지도층이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가 쉬워진다.

그것은 의미있는 가치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다. 만일 우리의 가치를 평가받고 행복을 보장받으면 우리는 자신을 의미있는 전체의 일부로 느낀다.

 

개인적인 시련과 무시무시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 최상의 인간 존재를 보여 준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 갖고 있는 무한한 힘과 탄력성을 목격하며, 의미 추구가 어떻게 해서 모든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동기인지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의미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는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 의미는 여러가지 형태와 크기로 찾아 온다.

우리 삶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언제 오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나타난다. 때로는 며칠, 몇 달 또는 몇 년씩 의미있는 순간을 놓치고 흘러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하게 보였던 뭔가가 결정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때로는 마치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의 조각이 모여 조각이불을 만드는 것처럼

수많은 순간들의 집합적인 의미로 마침내 우리 마음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현재의 모든 순간에 있다.

 

작은 질문에 대답을 찾지 못하면 큰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그것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삶은 의미있는 대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발길을 멈추고 충분히 오랫동안 감상을 할 때에만 의미가 꽃을 피운다.

의미를 탐지하고 알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지만, 대개는 다른 곳에 가느라고 바쁘다.

일터에서와 가정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은 진정한 존재의 본질을 위협한다.

만일 발길을 멈추고 우리 존재의 향기를 맡지 않으면 의미는 불가능한 꿈이 된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충분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시간을 되찾는 것은, 의미에 마음을 열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렇게 많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결국 의식이 중요하다. '똑똑해지는 것보다 의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의식한다는 것은 의미를 아는 것이다.

 

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향해 미궁의 어둠속으로 들어갈 의지와 능력이라 말하겠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포함하는 최악의 시간에 우리의 용기는 가장 큰 시험을 받는다.

 

의미는 순간의 의식에서 발견되며, 순간에서 너무 멀어지면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면 오히려 성공적 결과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잘 해야 한다'는 불안과 초조함이 잘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뭔가에 대해 기대가 높을수록 그 일이 실제 달성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성공적인 진행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프랭클은 이것을 '역설 의도'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승진이나 승급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기를 쓸때는 다분히 인위적인 행동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상호작용과 분위기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뭔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의미'다.

 

일을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가질 기회를 놓칠 때마다 장기적인 성공 가능성은 줄어든다.

반면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은 현저하게 높아진다. 매일매일 순간순간의  삶이 성공이 되고 특별한 목표를 향해 다가가게 된다.

 

만일 우리가 목적을 위해 수단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 끝은 정말 끝이 된다.

우리가 과정을 소중히 한다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충실할 때 결과에 상관없이 무한한 성취감을 경험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목표에 치중하면 오히려 길에서 벗어나서 목표 달성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는 그 불행한 상황 너머에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무의미한 고통으로 보이는 것을 진정한 인간적 성취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모든 상황은 그 안에 의미의 씨앗을 품고 있다. -빅터 프랭클-

 

우리는 배우기 위해 고통을 겪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 속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무의미해집니다......

우리가 운명, 즉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삶에 의미를 더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도 한 가지만은 앗아갈 수 없다는 충분한 증거를 보여준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태도, 우리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다. -빅터 프랭클-

 

 

 

 

 

심지어 가장 엄격한 질서를 갖춘 것으로 일컬어지는 경복중에서조차 정문인 광화문이 아주 살짝 축을 비틀고 서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조선시대 건물들은 육안으로 보면 직각으로 배치된 것 같아도 실제로 도면을 그려보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창경궁 명경전 일대의 전각 및 회랑 배치는 마치 지진 후의 측량 결과라고나 할 만하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미묘한 역동성과 뒤틀림이 그 건축적 경험을 더 흥미롭게 한다.

한국 건축의 이러한 현장성이야말로 웬만한 도면 작업으로는 쉽게 착안되거나 전달되지 않는 특성이다.

 

심지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간주되었던 악보가 불세출의 연주가를 만나 멋지게 연주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이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우어에 의해 '연주 불가능'이라고 거절당했으나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연주에 성공한 것이 바로 그런 예다

 

악보란 음악적 의사소통에 있어서 완벅한 수단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최선임은 분명하다.

 

사방전묘도법이란, 관찰자가 특정 장소에 서서 둘러보는 사방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한 그림 안에 수많은 시점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다시점적 도면이라고 할 만하다.

당연히 건물의 모서리 부분 등에서 건물이 배치되는 한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입체적인 성격이 있으나 도면의 각 요소들은 평면적이다.

따라서 2차원도 아니고 3차원도 아닌 중간 성격, 즉 2.5차원의 도면이다.

 

영조척은 그 이름부터가 '집을 짓기 위한 척도'다.

목공척이라고도 한다. 여러 종류의 자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 중의 하나다.

주로 부피의 측정, 병기 및 선박의 건조, 건축, 특히 성곽의 축조 등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나에게 건축을 결정하는 형식과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형식은 구축술이요 내용은 집합이라고 답할 것이다.

 

한옥은 자연형 냉방시스템이다.

이것은 깊은 처마와 개방적 구조의 대청마루, 텅 비어 있으며 햇살을 직접 받아 달아오르는 앞마당, 건물 때문에 항상 그늘이 지는 뒷마당과 그 그늘을 보강하는

대나무 같은 식재등으로 구성된다. 그야말로 건축의 제반요소가 총동원되어 만들어지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마이크로하다.

왜냐하면 거대한 인공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건축물과 이를 둘러싼 상황에 시스템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약한 목판을 장기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 또한 이러한 사고의 소산이다.

 

이런 입장에서 조면 지금 우리가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건축이 우리의 기후 및 생활 조건과 얼마나 무관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에너지의 왕성한 소비를 통해 이를 마이크로하게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오는 한여름에 정전이 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처마 깊은 한옥과 처마가 없는 소위 모더니즘 박스의 성능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건축과 결합되는 형식이 변화하고 있다. 지금 건축은 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커지는 동시에 기술의 형식과 형태에서는 자유로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온라인 경매사이트에서 '80년 된 한옥 팔아요'라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건축주 측은 대지를 포함하지 않고 집만 파는 것이므로 구입하는 사람이 한옥을 옮겨가는 조건을 단서로 달았다.

다소 코믹하게 느껴지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이 광고야말로 한옥이라는 건축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옥은 옮겨 지을 수 있다.

한국 건축사에는 옮겨 지은 집에 대한 기록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인왕산 기슭에 인경궁이라는 거대한 궁궐을 조성했는데,

병자호란 당시 창적궁이 소실되자 이곳의 건물들을 뜯어다가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슨 레고 집 짓기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는 보통 건물과 그것이 놓이는 장소의 깊은 관계를 한옥의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만 한옥이라는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장소를 초월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다름 아닌 한옥 반제품 키트다.

한옥 중에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것들, 이를테면 도산서원의 도산서당을 키트로 만들어 컨테이너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다.

아니면 현대건축가가 설계한 표준 한옥으로 키트를 만들 수도 있다.

집주인은 필요한 인허가를 거친 후 대지 조건에 맞게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깊은 내용이 담긴 좋은 한옥을 손쉽게 가질 수 있다.

이런 개념이 확산되면 공장에서 대량으로 치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장작업을 줄일 수 있고 품질관리도 용이해지며 한옥의 가격 또한 비약적으로 낮출 수 있다.

심지어 수출도 가능하다. 궁극의 조립식 건축, 이것이 한옥이다.

 

한옥은 수직적으로 분화된 수많은 공간들의 집합체다.

대문간에서 대청에 오르기 위해서는 문턱에서 기단, 댓돌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높낮이를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공간의 층위들은 때로는 기능적으로, 대로는 의미적으로 분화되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뒷마루 아래에는 보통 신발이 놓이고, 마루 아래에는 강아지집이 있다.

부엌 위에는 다락이 있으며 안방에서 그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는 집의 심장, 즉 아궁이가 있다.

요컨대 한옥은 단층집이지만 동일 평면상의 공간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한 수직적 공간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다라서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2층 한옥이 된다.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의 안채에서 그런 예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옥은 원래 다층 건물이었는데 어떤 힘에 의해 아래로 눌려 겉보기에 단층이 되고 만 것처럼 보인곤 한다.

 

관련 서적

1.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1,2,3,               김봉렬/돌베개/2006

2. 한국건축의 역사                                   김동욱/기문당/1997

3. 한국건축답사수첩                                 한국건축역사학회/동녘/2006

4.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한필원/북로드/2004

5. 하늘아래 기와집을 거닐다                      박선주/다른세상/2005

6.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허균/다른세상/2002

7. 한옥의 미학                                         신영훈/한길사/1985

8. 한옥의 재발견                                      주택문화사/2002

9. 아름지기의 한옥짓는 이야기                    정민자/중앙 엠앤비/2003

10. 한옥에 살어리랏다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돌베개/2007

11. 한옥건축재계 1창호 2목조                     장기인/보성각/1993

12. 그림으로 보는 한국건축용어                  김왕직/발언/2000

13. 한국의 문과 창호                                 주남철/대원사/2000

14. 북촌가꾸기 기본계획 및 한옥실측도면집  서울특별시/2002

15. 북촌 새로 고친 아름다운 한옥                서울특별시/2004

16. 사진과 도면으로 보는 한옥 짓기             문기현, 한국문화재보호재단/2004

17. 산수간에 집을 짓고                              서유구/안대회옮김/2005

18. 목수                                                  신응수/열림원/2005

19.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박상진/김영사/2004

20.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푸른역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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