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이 많다.
재대로 쓸 줄만 안다면 삶은 충분히 길다.
짧은 삶을 받은 것이 아니다.
긴 삶을 짧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루하루 무언가를 처리하면서 사는 것, 그것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루하루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다.
삶을 시작하기에 가장 늦은 때는, 삶을 떠나야 할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순간을 향해 가면서, 그 순간이 오면 비로소 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마루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낭비다.
미루는 것은 하루하루를 빠앗아가고 내일을 약속하면서 오늘을 빼앗는다.
삶의 가장 큰 장애물은 기대다.
개대는 내일에 의존하면서 오늘을 잃게 만든다.
운명의 손에 달린 것을 열심히 계획하면서, 자기 손에 달린 것은 놓아 버린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고백이다.
지금 이 삶이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고백.
쉬는 것을 실제로 누리지 못하니까, 쉬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았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을 놓아주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직위인가, 명예인가, 책임감인가, 누군가의 기대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매일 조금씩 당신의 삶을 대가로 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느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사는 법은 다르다.
평생을 바쳐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죽는 법 또한 평생을 바쳐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쁜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바쁜 것이다.
사는 법을 모르니까 일정을 채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까 가장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자기 안에 방향이 없으니까, 바깥의 모든 자극에 끌려 다닌다.
시간은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아주 싸게 여긴다.
삶은 한번 시작되면 되돌아오지 않고, 이미 한 일을 지우지도 않는다.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만이, 오늘을 진짜로 산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이 유일한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다.
어제는 이미 없고, 내일은 아직 없다.
당신에게 진짜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가, 10년 후 당신의 과거를 결정한다.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은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가장 많이 산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산 사람의 보물은 과거에 있다.
과거가 아름다운 사람은, 오늘을 아름답게 산 사람이다.
진짜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마주 앉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찮은 일 속으로 도망친다.
자기와 마주 앉는 것이 무서워서, 다른 모든 것을 원한다.
그러나 결국 마주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세상으로 나가면 숨고 싶고, 숨으면 나가고 싶다.
이 진자 운동이 멈추지 않는다.
이런 흔들림이 낯설지 않은가. 당신도 그렇다. 모두가 그렇다.
이것은 폭풍이 아니다. 멀미일 뿐이다.
당신은 육지가 보이는 곳에서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병의 이름을 아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당신의 동요는 위험하지 않다.
다만,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당신은 폭풍에 휩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멀미하고 있을 뿐이다.
흔들리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러나 그 흔들림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길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마음이 항상 고르고 잔잔한 흐름을 유지한다.
자기에게 만족한다.
주변을 기꺼이 바라본다.
이 기쁨이 끊기지 않는다.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른다.
이것이 마음의 평정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라.
자기 자신을 믿어라.
가는 길이 맞다고 확신하라.
흔들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흔들리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마라.
그것이 평정이다.
인간이 마음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싫을수록, 더 바쁘게 움직이려 한다.
분주함으로 자기를 잊으려 한다.
루크레티우스가 말했듯,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친다.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오래 견디지 못한다.
자신의 크기를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하다.
그것이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운명이 빼앗은 것은 무대일 뿐, 배우가 아니다.
자리가 사라진 것이지
당신의 능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옆에 앉은 사람의 성격은 닿는 것만으로도 옮아온다.
그러나 반드시 피해야 할 사람이 있다.
음울한 사람이다...
위험한 것은, 처음에는 당신도 동의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 한탄의 일부는 옳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같은 한탄을 듣다 보면, 당신의 눈도 그 색깔에 물든다.
어느 날 문득 당신도 똑같이 물든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감염이다.
우리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의 식습관을 닮아 간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말투를 닮아 간다.
함께 쉬는 사람의 가치관을 닮아 간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누구에게 감염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혼자인 시간이 당신을 만든다.
이름을 빼면, 직위를 빼면, 평판을 빼면, 그때 남는 것이 진짜 당신이다.
오늘 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라.
당신이 그렇게 작아지는 순간, 오늘 하루의 걱정들이 얼마나 사소한지를 느낄 것이다.
그 작아짐이 사실은 가장 큰 자유다.
조용히 사유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이 가장 오래 남는 일의 시작이다.
다수는 진리보다는 편안함을, 덕보다 이익을, 사유보다 행동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항상 조금 어긋나 있고, 항상 조금 외롭다.
멈추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빨리 먹으면 맛을 모른다.
빨리 읽으면 내용을 모른다.
빨리 살면 삶을 모른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다.
사는 법을 알고 있다는 증거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무엇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군중 속에서는 방향을 잃어도 불안하지 않다.
함께 잘못 가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안도감과 안전은 전혀 다른 것이다.
양떼 안에 있을 때는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한 발자국만 떨어져야 비로소 무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보인다.
그리고, 그때,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보인다.
가장 많이 밟힌 길은 안전하지 않다.
가장 많이 밟힌 길.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그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다.
대부분의 삶은 더 나은 것을 고를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 옳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의심해야 할 이유다.
군중은 진실을 가장 못 알아본다.
행복한 삶이란 자기 본성에 맞는 삶이다.
남의 행복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자기 안에 이미 단단한 것이 있는 사람이다.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당신은 자기 삶을 잃는다.
옆 사람의 삶을 기준으로 자기 삶을 측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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