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을 같이 자라나고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세대를 이어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러했지만,

현재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우리는 외롭고 서로 부대낀다.


인간이 편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 관계의 수는 제한적이다.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그 관계는 얕고, 피로감은 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곳에 정착하여 긴장을 낮추고 편하게 살아가야 한다.

만나는 사람 수도 혼자일 필요는 없지만 적을수록 좋다.


한 곳에 정착하여 살기.

어느 한 곳에 오래 살때 우리는 그 곳에 애착이 생기고,

그 공간에 존재하는 사소한 것들로도 추억은 생겨나고 마음 속에 이상적인 곳이 된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곳일지라도.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마음 풍성한 고향이 있다.

물론 그 고향은 이미 마음속에 그리는 고향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 속의 고향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사람을 같이 한다.

마음 속에 그릴 수 있는 고향을 갖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과 같다.


세상이 힘들다지만 그런 고향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꿈을 꿀 수 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고향을 갖기 위해 한 곳에 정착하여 오래 세월을 살아가자.

그리고 그 곳에서 추억을 만들어 가자.






서산 시골 농가에서 발견한 모습입니다.

집앞 밭둑에 부추를 심은 것인데,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런 언덕에는 풀들이 자라는데, 이 공간을 부추로 대체한 것입니다.

이렇게 재배한지 오랜 세월이 된 것 같았습니다.

장소가 좁을 때, 밭둑을 채소를 키우는 장소로 활요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논둑에 콩을 배재하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인 할머니께서 낫으로 부추를 베어 주셔서 우리는 반찬거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언덕에 자라고 있는 부추

 부추를 베기 전에 집사람이 잡초를 뽑고 있습니다

 언덕 전체를 걸쳐 부추가 자라고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부추가 잘 자라도록, 부엌에서 나온 재를 뿌려줍니다. 

재를 뿌린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 있습니다.

 

음풍농월 (吟風弄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놂.

힘든 시절은 부드럽게 넘기고 달이 뜨는 밤에 여유롭게 기분을 누린다면 세상에 부러울게 뭐 있으랴.

그렇게 세상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인생을 누리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제일 적당한 글귀가 나는 음풍농월이라고 생각한다

 

소요음영(逍遙吟詠) :천천히 거닐며 시가를 나직이 읊조림 = 미음완보(微吟緩步)
    * 시비에 거러 보고, 정자에 안자 보니, 소요음영하야 산일이 적적한대(정극인, 상춘곡)

시가를 읊는 것은 같으나, 소요음영은 자작시이던 남의 시이던 시가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지 않고,

                                   음풍농월은 바람과 달 등 자연을 대하며 읊는 자작의 시가로 한정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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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ce :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3&dirId=30702&docId=1323162&qb=7JuU7ZWY64+F7J6R&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Ui4msoi5TGssuP4aZNsss--317419&sid=TXZIe3JEdk0AAEHdEmY

 

지난번에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이석호(李錫浩)와 이원규(李元揆) 공저인 '중국명시감상(中國名詩鑑賞 :위즈온 刊)'에서 당시(唐詩)편 497쪽에서 인용했습니다. 이석호 교수는 서울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연세대 명예교수로 계신 석학입니다. 이원규 교수는 연세대학교 중어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남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였던 분이십니다. 1050쪽이 넘는 이 책을 준비하신 두 분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는 이 책의 428~435쪽에서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4수 모두를 인용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은 그의 음주시(飮酒詩)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봅니다. 음주의 풍류(風流)와 술의 효용을 잘 표현하여 자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시랍니다. 이 중에서도 전체적으로 제1수가 제일 유명합니다. 명구(名句)로는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 '窮通與修短   造化夙所稟', '蟹蠣卽金液   糟丘是蓬萊' 등이 있어서 명언(名言)으로도 많이 인용이 됩니다.

 

대체로 음주는 모든 근심을 잊고 즐거움을 누리자는 뜻에서 이루어 집니다. 이백도 현실에서 근심을 잊고 즐거움을 찾는 방법으로 술을 마셨답니다. 비록 신선의 세계에서 금단(金丹)을 복용하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하고 싶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이상이었지요.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주중선(酒中仙)이 되고자 노력한 시인이랍니다. 따라서 이백은 술과 달을 소재로 쓴 시가 많습니다. 

 

이백의 월하독작

 

제1수

 

꽃 사이의 한 병 술을

혼자 마시는데 친구라곤 없네

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니

그림자 이루어 세 사람이 되었네

달은 본디 술 마실 줄을 모르고

그림자는 다만 내 몸을 따라다닐 뿐이네.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봄철에 마음껏 놀아 보세.

내가 노래하니 달이 어정이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는 멋대로이네.

취하지 않을 때는 함께 서로 즐기다가

취한 뒤에는 각기 서로 흩어지네.

영원히 무정의 교유를 맺어

아득한 은하수를 두고 서로 기약하네.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제2수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성은 하늘에 없을 것이고,

땅이 만일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땅에는 응당 주천이 없을 것이네

천지가 이미 술을 사랑했으니

술을 사랑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이미 청주를 성인에 비유함을 들었고,

다시 탁주를 현인에 견줌을 말하네.

현인 성인이 이미 술을 마셨으니

어찌 반드시 신선을 구할 것인가?

석 잔 술에 대도와 통하고

한 말 술에 자연과 합치네.

다만 술 가운데 멋만 얻을 뿐이니

술 모르는 이에게는 전하지 말게나.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

賢聖旣已飮    何必求神仙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

但得酒中趣    勿爲醒者傳

 
 

제3수

 

3월의 함양성에

온갖 꽃이 대낮에 비단과 같네.

누가 능히 봄에 홀로 근심하는가?

이런 풍경 대하면 곧장 술을 마시네.

빈궁과 영달, 장수와 단명은

조화에 의하여 일찍이 마련된 것.

한 잔 술에 죽음과 삶이 같아지니

모든 일이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네.

취한 뒤에는 천지도 잃어버려

멍하니 외로운 베개를 베는구나.

내 몸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니

이런 즐거움이 최고의 기쁨이로다.

 

 

 

三月咸陽城   千花晝如錦

誰能春獨愁   對此徑須飮

窮通與修短   造化夙所稟

一樽齊死生   萬事固難審

醉後失天地   兀然就孤枕

不知有吾身   此樂最爲甚

 

제4수

 

궁핍한 근심 천만 갈래이니

맛있는 술 3백 잔을 들 것이라.

근심은 많고 술이 비록 적지만

술을 기울이니 근심이 오지 않네.

술을 성인에 비유함을 아는 바이라

술이 거나해지자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네.

곡식을 사절하고 수양산에 누웠고,

자주 텅텅 비어 안회는 굶으면서

당대에 술 마시기를 즐기지 않았으니

그 헛된 이름을 무엇에 쓸 것인가?

게와 가재가 곧 금액이요,

술지게미 언덕이 바로 봉래산이네.

바야흐로 반드시 아름다운 술을 마시고

달빛을 타고 높은 누대에서 취할지어다.

 

窮愁千萬端   美酒三百杯

愁多酒雖少   酒傾愁不來

所以知酒聖   酒酊心自開   

辭粟臥首陽   屢空飢顔回

當代不樂飮   虛名安用哉

蟹蠣卽金液   糟丘是蓬萊

且須飮美酒   乘月醉高臺 

 

제4수에서 보면 "辭粟臥首陽   屢空飢顔回" 사속와수양(辭粟臥首陽)은 은(殷)나라 충신 백이숙제(伯夷叔齊) 형제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의 곡식을 거절하고 수양산에 숨어 살면서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은 고사(故史)를 인용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누공기안회(屢空飢顔回)는 공자의 수제자 안회(顔回)는 가난하여 자주 양식이 떨어져 굶기를 자주 했다는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현자(賢者)의 대표로 꼽는답니다. 그냥 오늘은 이런 정도로 백이숙제의 이야기와 공자의 수제자 안회가 굶는 이야기가 이렇게 이백의 월하독작 시에 나온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어떨까요?

 

궁금한 점이 있다.

나만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사이트간의 제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고자 할때 그 사이트에 로긴을 해야만 댓글이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내용인지 궁금하다.

네이버든 다음이든 많은 블로그와 카폐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를 검색해서 좋은 느낌을 얻었을때 혹은 먼가 의견이 있어서 댓글을 달고자 할때

항상 부딪치는 문제가 회원가입하고 로긴 후에야 댓글을 달 수 있다는 문구를 만나게 된다.

과연 그렇게만 해야지만 댓글을 달 수 있을까?

만약 본인의 고유 ID 즉 어디에나 어느 사이트에나 접속할 수 있는 ID가 존재한다면

어느 사이트를 방문하든지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회원가입, 로긴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편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미 이런 방법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절실히 필요한 기능이다.

너무 많은 사이트에 가입하면 어느 것이 로긴 ID인지 P/W인지 전혀 생각나지도 않고 혼동되기 일쑤다.

이렇게 많은 것을 기억할 수도 없고 어디에 적어놓고 관리할 수도 없다.

한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자면 본인의 E-MAIL ID를 가지고 즉시 의견을 입력할 수 있다면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면 E-MAIL ID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임을 입증하는 방법이므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E-MAIL ID중 하나를 사용하면 된다.

또한 각 사이트마다 주장하는 회원이 몇명이니 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거나 거기에 접속하는 E-MAIL ID의 수를 가지고서

회원으로 관리해도 된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개인에게 연락도 가능하고 어느 사이트를 방문하든지 편하게 본인을 확인하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즉흥적으로 정리해본 사항이지만

인터넷에서 정리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너무도 많은 사이트와 그 사이트에서 관리하는 회원 ID, P/W등등이 몇번 사용되지도 않으면서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들도 불필요한 자원 낭비로 볼수 있다.

즉 자원 아끼기처럼 ID등 많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재 활용성 혹은 정리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앞으로 필요해 보인다

 

드디어 찾아낸 기능입니다.

네이버에는 네이버가 로긴이 안된상태에서 다음 형태로 댓글이 가능하네요.

이름을 넣고 비밀번호를 넣고 본인 블로그 주소를 넣은 후, 덧글 입력 아이콘을 누리면 됩니다.

 

 입력한 후, 입력된 상태입니다. 만족스럽네요.

 아마도 다음에도 이런 형태로 댓글을 입력하는 기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기능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습니다

 

 

다음에도 다음에 로긴이 안된상태에서 다음 형태로 댓글이 가능하네요.

이름을 넣고 비밀번호를 넣고 본인 블로그 주소를 넣은 후, 덧글 입력 아이콘을 누리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전에 댓글 달기가 안됐던 이유는 블로그 운영자에 따라 로긴 하기 전에는 댓글 달기가 안되도록 설정이 된 경우인 것 같습니다.

다시 시도를 해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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