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가장 엄격한 질서를 갖춘 것으로 일컬어지는 경복중에서조차 정문인 광화문이 아주 살짝 축을 비틀고 서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조선시대 건물들은 육안으로 보면 직각으로 배치된 것 같아도 실제로 도면을 그려보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창경궁 명경전 일대의 전각 및 회랑 배치는 마치 지진 후의 측량 결과라고나 할 만하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미묘한 역동성과 뒤틀림이 그 건축적 경험을 더 흥미롭게 한다.

한국 건축의 이러한 현장성이야말로 웬만한 도면 작업으로는 쉽게 착안되거나 전달되지 않는 특성이다.

 

심지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간주되었던 악보가 불세출의 연주가를 만나 멋지게 연주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이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우어에 의해 '연주 불가능'이라고 거절당했으나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연주에 성공한 것이 바로 그런 예다

 

악보란 음악적 의사소통에 있어서 완벅한 수단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최선임은 분명하다.

 

사방전묘도법이란, 관찰자가 특정 장소에 서서 둘러보는 사방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한 그림 안에 수많은 시점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다시점적 도면이라고 할 만하다.

당연히 건물의 모서리 부분 등에서 건물이 배치되는 한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입체적인 성격이 있으나 도면의 각 요소들은 평면적이다.

따라서 2차원도 아니고 3차원도 아닌 중간 성격, 즉 2.5차원의 도면이다.

 

영조척은 그 이름부터가 '집을 짓기 위한 척도'다.

목공척이라고도 한다. 여러 종류의 자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 중의 하나다.

주로 부피의 측정, 병기 및 선박의 건조, 건축, 특히 성곽의 축조 등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나에게 건축을 결정하는 형식과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형식은 구축술이요 내용은 집합이라고 답할 것이다.

 

한옥은 자연형 냉방시스템이다.

이것은 깊은 처마와 개방적 구조의 대청마루, 텅 비어 있으며 햇살을 직접 받아 달아오르는 앞마당, 건물 때문에 항상 그늘이 지는 뒷마당과 그 그늘을 보강하는

대나무 같은 식재등으로 구성된다. 그야말로 건축의 제반요소가 총동원되어 만들어지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마이크로하다.

왜냐하면 거대한 인공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건축물과 이를 둘러싼 상황에 시스템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약한 목판을 장기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 또한 이러한 사고의 소산이다.

 

이런 입장에서 조면 지금 우리가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건축이 우리의 기후 및 생활 조건과 얼마나 무관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에너지의 왕성한 소비를 통해 이를 마이크로하게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오는 한여름에 정전이 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처마 깊은 한옥과 처마가 없는 소위 모더니즘 박스의 성능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건축과 결합되는 형식이 변화하고 있다. 지금 건축은 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커지는 동시에 기술의 형식과 형태에서는 자유로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온라인 경매사이트에서 '80년 된 한옥 팔아요'라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건축주 측은 대지를 포함하지 않고 집만 파는 것이므로 구입하는 사람이 한옥을 옮겨가는 조건을 단서로 달았다.

다소 코믹하게 느껴지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이 광고야말로 한옥이라는 건축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옥은 옮겨 지을 수 있다.

한국 건축사에는 옮겨 지은 집에 대한 기록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인왕산 기슭에 인경궁이라는 거대한 궁궐을 조성했는데,

병자호란 당시 창적궁이 소실되자 이곳의 건물들을 뜯어다가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슨 레고 집 짓기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는 보통 건물과 그것이 놓이는 장소의 깊은 관계를 한옥의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만 한옥이라는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장소를 초월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다름 아닌 한옥 반제품 키트다.

한옥 중에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것들, 이를테면 도산서원의 도산서당을 키트로 만들어 컨테이너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다.

아니면 현대건축가가 설계한 표준 한옥으로 키트를 만들 수도 있다.

집주인은 필요한 인허가를 거친 후 대지 조건에 맞게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깊은 내용이 담긴 좋은 한옥을 손쉽게 가질 수 있다.

이런 개념이 확산되면 공장에서 대량으로 치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장작업을 줄일 수 있고 품질관리도 용이해지며 한옥의 가격 또한 비약적으로 낮출 수 있다.

심지어 수출도 가능하다. 궁극의 조립식 건축, 이것이 한옥이다.

 

한옥은 수직적으로 분화된 수많은 공간들의 집합체다.

대문간에서 대청에 오르기 위해서는 문턱에서 기단, 댓돌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높낮이를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공간의 층위들은 때로는 기능적으로, 대로는 의미적으로 분화되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뒷마루 아래에는 보통 신발이 놓이고, 마루 아래에는 강아지집이 있다.

부엌 위에는 다락이 있으며 안방에서 그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는 집의 심장, 즉 아궁이가 있다.

요컨대 한옥은 단층집이지만 동일 평면상의 공간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한 수직적 공간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다라서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2층 한옥이 된다.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의 안채에서 그런 예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옥은 원래 다층 건물이었는데 어떤 힘에 의해 아래로 눌려 겉보기에 단층이 되고 만 것처럼 보인곤 한다.

 

관련 서적

1.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1,2,3,               김봉렬/돌베개/2006

2. 한국건축의 역사                                   김동욱/기문당/1997

3. 한국건축답사수첩                                 한국건축역사학회/동녘/2006

4.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한필원/북로드/2004

5. 하늘아래 기와집을 거닐다                      박선주/다른세상/2005

6.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허균/다른세상/2002

7. 한옥의 미학                                         신영훈/한길사/1985

8. 한옥의 재발견                                      주택문화사/2002

9. 아름지기의 한옥짓는 이야기                    정민자/중앙 엠앤비/2003

10. 한옥에 살어리랏다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돌베개/2007

11. 한옥건축재계 1창호 2목조                     장기인/보성각/1993

12. 그림으로 보는 한국건축용어                  김왕직/발언/2000

13. 한국의 문과 창호                                 주남철/대원사/2000

14. 북촌가꾸기 기본계획 및 한옥실측도면집  서울특별시/2002

15. 북촌 새로 고친 아름다운 한옥                서울특별시/2004

16. 사진과 도면으로 보는 한옥 짓기             문기현, 한국문화재보호재단/2004

17. 산수간에 집을 짓고                              서유구/안대회옮김/2005

18. 목수                                                  신응수/열림원/2005

19.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박상진/김영사/2004

20.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푸른역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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