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의지를 갖고 순간순간 의미를 탐색하기를 희망한다.

또한 생각의 감옥, 즉 한계를 만들어 스스로 가능성을 가로막지 않고, 나아가 타인과 세상으로 관심을 확대하기를 원한다.

 

현대인을 위협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삶의 의미나 내면의 실존적 공허함이다.

잠재해 있는 공허함은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낼까? 권태로운 상태에 있을 때이다 -빅터 프렝클-

 

우리는 때로 삶의 중심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빈둥거리며 겉돌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고 때로는 혼자 걷는다.

 

우리의 삶에 있어 권력추구는 쾌락 추구와 동일한 선상에 있다. 그것은 '저 밖에'있다.

직원, 직장상사, 고객, 주주, 아이들,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가게 점원에게 우리가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며 매우 위험한 착각이다.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힘은 확실하지 않다. 파워 게임에서는 항상 경쟁상대가 있고 경기장은 수시로 바뀐다.

신들에게서 커다란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라는 명령을 받은 그리스의 영웅 시시포스가 마지막 순간에 바위를 놓치는 것처럼,

권력추구는 끝이 없고, 기쁨이 없는 노역이 된다.

 

몇 십 년 전 그룹치료의 일환으로 '권력의 원칙'을 조명한 기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우선 구성원들로 하여금 얼마 동안 함께 시간을 지낸 후 리더를 선택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신중하게 리더를 선택한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리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묻는다. 진정한 리더는 리더 뒤에 있는 리더였다.

 

권력이 경기장에서 뛰고 있을 때 항상 또 다른 권력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

권력은 피곤한 게임이며, 쾌락과 마찬가지로 덧 없고 항상 예기치 못한 힘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의 광할한 탐험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쾌락 의지나 권력 의지를 넘어 선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내부로부터 온다. 그 의미는 각자가 발견하고 통제하고 실현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하찮더라도, 아무리 큰 힘과 권력이 방해하더라도 의미는 우리를 지탱해 준다.

무엇보다 의미는 우리가 견뎌야 하는 그 어떤 고통과 괴로움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바쁘게 살고 목표와 계획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할일이 없어서 마치 죽음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낭비가 어디 있는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 해결되고 나면 '무엇을 위한 생존인가'하는 문제가 등장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삶의 수단(생계 수단)을 갖고 있지만 삶의 의미는 갖고 있지 않다. -빅터 프랭클-

 

지도층이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가 쉬워진다.

그것은 의미있는 가치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다. 만일 우리의 가치를 평가받고 행복을 보장받으면 우리는 자신을 의미있는 전체의 일부로 느낀다.

 

개인적인 시련과 무시무시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 최상의 인간 존재를 보여 준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 갖고 있는 무한한 힘과 탄력성을 목격하며, 의미 추구가 어떻게 해서 모든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동기인지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의미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는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 의미는 여러가지 형태와 크기로 찾아 온다.

우리 삶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언제 오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나타난다. 때로는 며칠, 몇 달 또는 몇 년씩 의미있는 순간을 놓치고 흘러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하게 보였던 뭔가가 결정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때로는 마치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의 조각이 모여 조각이불을 만드는 것처럼

수많은 순간들의 집합적인 의미로 마침내 우리 마음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현재의 모든 순간에 있다.

 

작은 질문에 대답을 찾지 못하면 큰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그것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삶은 의미있는 대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발길을 멈추고 충분히 오랫동안 감상을 할 때에만 의미가 꽃을 피운다.

의미를 탐지하고 알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지만, 대개는 다른 곳에 가느라고 바쁘다.

일터에서와 가정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은 진정한 존재의 본질을 위협한다.

만일 발길을 멈추고 우리 존재의 향기를 맡지 않으면 의미는 불가능한 꿈이 된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충분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시간을 되찾는 것은, 의미에 마음을 열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렇게 많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결국 의식이 중요하다. '똑똑해지는 것보다 의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의식한다는 것은 의미를 아는 것이다.

 

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향해 미궁의 어둠속으로 들어갈 의지와 능력이라 말하겠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포함하는 최악의 시간에 우리의 용기는 가장 큰 시험을 받는다.

 

의미는 순간의 의식에서 발견되며, 순간에서 너무 멀어지면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면 오히려 성공적 결과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잘 해야 한다'는 불안과 초조함이 잘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뭔가에 대해 기대가 높을수록 그 일이 실제 달성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성공적인 진행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프랭클은 이것을 '역설 의도'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승진이나 승급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기를 쓸때는 다분히 인위적인 행동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상호작용과 분위기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뭔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의미'다.

 

일을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가질 기회를 놓칠 때마다 장기적인 성공 가능성은 줄어든다.

반면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은 현저하게 높아진다. 매일매일 순간순간의  삶이 성공이 되고 특별한 목표를 향해 다가가게 된다.

 

만일 우리가 목적을 위해 수단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 끝은 정말 끝이 된다.

우리가 과정을 소중히 한다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충실할 때 결과에 상관없이 무한한 성취감을 경험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목표에 치중하면 오히려 길에서 벗어나서 목표 달성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는 그 불행한 상황 너머에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무의미한 고통으로 보이는 것을 진정한 인간적 성취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모든 상황은 그 안에 의미의 씨앗을 품고 있다. -빅터 프랭클-

 

우리는 배우기 위해 고통을 겪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 속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무의미해집니다......

우리가 운명, 즉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삶에 의미를 더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도 한 가지만은 앗아갈 수 없다는 충분한 증거를 보여준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태도, 우리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다.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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