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가 몹시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처리하고자 할때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사람의 뇌나 평범한 여든 살 노인의 뇌나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은 뇌의 '전전두피질'이라는 부위가 관장한다.

피질이란 뇌의 바깥 부분을 덮는 물질, 즉 외피를 가리킨다. 두께는 0.25센티미터로 껍데기처럼 뇌를 감싸고 있다.

이것은 이마 바로 뒤에 있는데, 전체 피질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진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발달한 뇌의 주요 부위인 이것의 부피는 기껏해야 나머지 뇌 부분의 4~5퍼센트 정도다.

전전두피질이 작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나 에스프레소처럼 콤팩트하면서도 큰 가치를 가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전전두피질이 없다면 당신은 아무런 목표도 세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 가서  우유 한 병을 사야겠다는 단순한 계획조차도 세울 수 없게 된다......

어디 그뿐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자동차에 치인다 해도 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창의적인 사고 역시 불가능해진다.

설령 누군가에 의해 병원에 옮겨져 운 좋게 치료를 받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고 해도 가족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얘기해줄 수 없게 된다.

전전두피질이란 한마디로, 의식이 외부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생물학적 공간이다.

기계처럼 자동적으로 조종되듯 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통해서 사고하면서 문제와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뇌의 핵심이다..................

안스텐 박사는 전전두피질에 우리가 어느 시점에 품었던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외부 자극이나 특정한 장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이 저장되는 창고가 바로 전전두피질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안스텐 박사는 전전두피질을 통해 우리 스스로 생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해', '결정', '환기', '기억', '억제'라는 이 다섯가지 기능이 의식적인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기능들이 다양하게 결합되어 계획과 문제 해결, 의사 소통의 다양한 과제를 수행한다

 

복잡한 개념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머릿속에서 처리하기가 훨씬 쉽다.

 

의식적인 사고 과정은 한 번에 한 가지씩 진행돼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점점 더 자신의 내면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된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 느닷없이 툭 떠오르기도 하고 강아지가 여기저기 킁킁대고 돌아다니듯이 자신의 마음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주의력이 이리저리 배회하는 이유는 신경계가 매 순간 잠시라도 쉬지 않고 뇌에 만들어진 수십억 개의 연결회로를 처리하고, 재배치하고, 재연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문용어로는 '환경적 신경 활동'이라고 한다.

쉬고 있는 뇌도 전기 활동을 관찰해보면 마치 곳곳에서 1초에 몇 차례씩 전기 폭풍의 번개가 치는 지구를 우주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다.

그 결과 사고와 이미지가 마치 물결 치듯이 의식이라는 수면으로 떠오른다.

 

정신 분열증은 사람들이 억누르거나 손쉽게 무시해버리는, 즉 당장의 과제와 상관없는 신호들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었을 때 나타난다.

 

자기 조절이란 어떤 의미에서 한정된 자원이다.

실험결과, 자기 조절력을 한 번 보여준 사람은 그 이후의 과제에서 그 능력이 감소하고 말았다.

그는 뭔가를 자제할 때마다 그다음 충동은 더욱 참기어렵다고 주장한다.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매력적인 여성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는 것처럼 당신이 뭔가를 움직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이미 당신의 뇌가 수백만 개의 회로를

연결해 이런 결정을 내린 직후다. 이 시점 직후의 0.2초라는 시간은 행동을 취할 준비는 돼 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 0.2초의 간격도 특정한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는 방해가 될지 모르는 뭔가를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내하면 당신은 뇌가 보내온 신호들 사이에 끼어들 능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온각 신경활동을 수행하면서 뇌는 동시에 온갖 미친 아이디어를 마음으로 보낸다. 하지만 당신은 어떤 충동을 실행에 옮길지 선택하는 능력, 즉 '거부권'이 있다.

앞서 설명한 세 가지 과정인 뇌의 신호와 욕망 그리고 행동을 따로 인식하지 않은 채 뇌에서 신호가 들어오는 즉시 행동에 옮긴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동물적인 행동이다

 

일단 행동에 옮기고 나면 강력한 고리가 활성화되므로 그 행동을 멈추기가 더 어려워진다.

 

모터와 같이 정신적인 행위 역시도 일단 작동하기 시작하면 자체적인 추진력이 만들어진다.

의자에서 일어나기로 결심하면 그에 필요한 근육을 미록해 이 운동행위와 관련있는 부위가 활성화된다.....

일단 이 과정이 시작된 후에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하면

처음에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 그러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보다 훨씬 막강한 거부권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방해요소를 억제하려면 충동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 그 행동을 일찍, 재빨리, 자주 거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스트레스가 없어야 과제를 더 잘 수행할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침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데만 해도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긍정적 스트레스'라고 한다. 긍정적인 스트레스는 주의력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된다.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행동한다. 다시 말해 기저핵이 당신을 조종한다......

여름휴가 도중에 잡혀 있는 전화회의를 잊어버리기 쉬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요한 업무를 기억해야 할 능력은 당신이 다사로운 햇살과 칵테일 한 잔을 즐기는 동안 스르르 녹아버린다. 긴장을 너무 풀어버린 탓에 말이다.

 

두려움과 위급성은 집중도를 높이는 데 때때로 확실히 도움이 된다.

 

머리가 복잡해서 잘 돌아가지 않으면 아이디어를 종이에 옮겨 보라.

복잡한 아이디어를 머리에서 그집어내면 한결 생각하기가 수월해진다.

즉 당신의 무대가 그만큼의 정보를 수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전체적인 활동량이 줄어들 것이다.

 

행복할수록 통찰력을 더 잘 발휘하는 반면,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그 반대가 된다. 이는 미세한 신호를 인지하는 능력과도 관계가 된다.

이는 미세한 신호를 포착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소리를 잘 들어야 하는데 주위가 너무 시끄러운 것이다.

 

통찰력이 나오는 순간에는 뇌에서 감마대가 폭발하듯 증가한다. 감마파는 가장 빠른 뇌파로 한 무리의 뉴런이 초당 40회씩 일제히 켜진다.

감마파는 뇌의 여러 부위가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깊은 명상에 잠겨 잇으면 감마파가 많이 나온다.

학습장애가 있는 사람은 감마파가 정상인보다 더 적으며, 의식이 없는 사람은 아예 감마파가 나오지 않는다.

 

마음 챙기기란 우리가 반응하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 여백이 생겨서 다양한 대안을 살피고 나서 그중 가장 적당한 것을 고를 수 있다.

 

"자신의 마음에 균형이 있고 정교하게 집중하면 이전에는 몰랐던 경로의 차이를 파악해서 조절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마음에 집중하면 뇌의 기능과 나아가 구조도 바꿀 수 있다."

 

누군가를 적으로 여기면 지능마저 떨어질 수 있다.

누군가를 적으로 간주하면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그런 태도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까지도 말이다.

 

자신과 싸움을 하면 남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지위감이 올라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남과 당신의 발전이나 위기를 고류하면 관계감도 높아질 것이다.

 

통찰력은 세부 사항에 집착하지 말고 더 포괄적이고 폭넓게 생각할 때 튀어나온다. 뇌가 통찰력을 발휘하려면 고요한 상태여야 한다.

즉, 전기적 활동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미세한 신호를 잘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이미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다. 불안하면 사람들의 시야는 좁아지고 뇌의 잡음이 더 심해진다.

그러므로 불안을 줄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늘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다시 말해 비호감에서 호감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900여페이지에 달하는 사기열전 1권을 5개월정도의 시간을 거쳐 읽었다.

인명록을 뒤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며 그 내용도 복잡하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처세와 사고를 들여다 보면서 오늘날의 삶을 살아가는 데 되세겨볼 내용들이 많음을 느낀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천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어찌 교제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 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그러나 유세자가 상대방의 비밀을 들출 뜻이 없었지만 우연히 상대방의 비밀을 말한다면 유세자는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유세자가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 말을 하고 교모한 주장을 내세워 그 잘못을 들추어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 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여 공을 세우더라도

군주는 그 덕을 잊을 것이며,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몸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또 군주가 좋은 계책을 얻어 자기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몸이 위태로워진다.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때 유세자가 이것을 알게 되면 역시 몸이 위태로워진다.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말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 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된다..............

유세자는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없이 행동한다.

 

의심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 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고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최고에 이르렀을 때 본연의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모른 데서 생긴 재앙입니다.

 

상여가 말했다.

내가 곰곰히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서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오.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얇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새로 사귄 친구 한 명과 사귐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서 나라의 커다란 피해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원한을 쌓고 재앙을 만드는 일입니다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릭한 걸음만 못하며,

진나라 용사 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 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었다. 토/일요일 이틀 동안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직관적 이해와 자각이 추상적 사고와 지적 논리 분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을 사용하지 않아요. 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잠재우려 애쓰면 더욱더 산란해질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의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현재의 순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게 느껴집니다.

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밝은 눈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수양이며,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승을 만나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려 하지 말라. 당신의 스승은 지금 당신 곁에 있으니."

 

"만약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확신을 굳히면, 그는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애플이 PARC의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은 IT 업계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되곤 한다.

잡스는 때대로 그것을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요약하면, 역사에 등장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접목해 활용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지요." 언젠가 잡스는 말했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잡스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세상을 이분법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조건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멍청한 놈'이었고, 그들의 업무는 '최고'든가 아니면 '완전히 쓰레기'였다.

 

"그는 하나의 중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교묘하게 다른 주장으로 넘어 갔습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상대방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취하고는 원래 자신은 다른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죠."

 

"카리스마 있고 사람들을 조종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죠.

그가 당신을 뭉게 벌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당신은 괜히 위축감을 느끼고 그의 인정을 받고 싶은 열망에 빠지죠.

그러다가 그가 당신을 인정하고 치켜세운다고 쳐 봐요. 완전히 그에게 종속되는 일만 남은 거예요."

 

가장 품질이 높고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현실 왜곡장은 추진제가 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결국 현실 자체에 일격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머릿속에 마치 임시 구조물을 세우는 것처럼 모종의 패턴을 형성합니다.

사실은 화학약품으로 패턴을 에칭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레코드판의 홈과 같은 그런 패턴에 끼어서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미친자들을 위한 축배를.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말뚝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합니다. 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는 그들을 찬영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 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때 그것을 묵살하거나 나중에 고치겠다고 미루어 두면 안됩니다."

 

"스티브는 그때그때의 순간을 중시하고 주로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이해하려 합니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슬라이드가 있어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오."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우리는 '집중'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사람을 뽑는 일에 대해서도 얘기했지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파악하는 지, 믿을만한 참모진을 어떻게 구축하는 지 등등.

나는 회사가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떤 블로킹과 태클 동작들을 취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지요.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집중이었습니다.

구글이 어떤 회사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파악해라.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 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크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 않은 제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포드가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고객에게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 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딜런이 말했듯이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 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이것의 본질은 우리가 각자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싶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죽은 후에도 나는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 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모든 인간의 이지는 육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부터 나온다

 

무너지는 육체와 달리 마음의 상태를 아름답게 유지하며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 사람의 80퍼센트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의 대다수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생을 함께 했던 가족들과 격리된 채 눈을 감는다.

 

온유하고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는 협심증에 걸릴 확률이 휠씬 적다.

문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면에서, 활동적이고 야망에 찬 사람들에게 있다.

엔진 계기판의 바늘이 항상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는 사람들 말이다.

 

언젠가는 죽고 말 우리, 마지막 순간을 향해 한 걸음씩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자신의 생이 남들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마감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축복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방광은 신축성과 팽창성을 잃으므로, 전과는 달리 소변을 많이 담지 못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노인들은 자주 소변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폐렴은 나이 든 사람들의 친구이기도 하다.

폐렴은 견디기 힘든 모든 종류의 질환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른 인체의 노화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승리하는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양보다는 질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이 한계점에 이르면 특별한 질환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아도 그냥 흩어져버리게 마련이다.

 

어치피 노령화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고, 그에 따른 신체적인 변화로 인해 점차 죽음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그 어떤 의심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주변 곳곳에서 끊임없이 서성이며 틈만나면 달려드는 치명적인 적들과의 싸움에서, 대항할 힘조차 점점 없어진다면 어찌 그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인가?

점차 다가오는 무기력이 신체 조직과 기관의 쇠약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든 기계든 부속품이 닳고 낡으면 기능이 저하되어 결국 정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나뭇잎과도 같다. 무성함 뒤에는 반드시 쇠퇴가 따른다.

 

죽음의 손을 뿌리칠 수 있다는 환상은 인류 발전의 영속성과 양립할 수 없다.

더 정확히 표현해서 우리의 영생이 우리 자녀들의 권익과 양립할 수 없다는 얘기다.

테니슨도 이런 면에선 뜻을 분명히 했다.

"나이 든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에는 공팡이만이 자라고 과거만이 되풀이될 것이다."

젊은이의 눈을 통해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고,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재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은 우리들이 지나갔던 수렁에 빠지지 않게 된다.

새 세대들은 스스로를 개선하기를 열망하고, 바로 그 과정에서 인류를 위해 크나큰 공헌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릇 살아있는 생물이 때가 되어 죽음으로써 생이 무대를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노령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요, 이 세상을 자손들을 위해 더욱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삶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과정인 것이다.

 

생에 정해진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생은 균형있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모든 즐거움과 성취감, 그리고 고통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의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중 스스로 보람있고 남들로부터 칭송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시간은 사실 별로 길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시인이 수줍어하는 정부에게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마차를 탄 채 가까이 달려오고 있어요"라고 노래했듯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직시할 때,

세상은 한층 더 빠르게 진보될 수 있고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대의 죽음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고, 세상 삶의 일부분으로, 창조의 근원을 이룬다

타인이 그대에게 자리를 내준 것처럼 그대 역시 타인에게 자리를 내주라

 

곧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으면 매사에 더욱 부지런하고 뜻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래야만 '조용하고 침착하게' 죽음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 그가 펼치는 죽음론이었다.

"삶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알차게 유용했느냐에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내용과 결과에 따라 실제로는 얼마 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른 질환과 달리 치매 환자는 자신의 이상 증세를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는 의지력이나 판단력 없이 뇌가 죽어가는 대로 이끌려간다.

 

사망 후에도 머리카락과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니며, 사망 후 성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이성적 사고는 초심리학적인 설명이나 종교적 이론을 거부한다.

 

죽음 앞에 이르러 경험했다는 그 세계와, 죽음과 함께 나타난 독특한 평화로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닥쳐온 죽음에서 그런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점에 강한 의문을 두고 있다.

세상을 떠나야 하는 마지막 시점에서 니타난 평화나 평온함이, 특히 의식할 수 있는 안락감이, 실제보다 훨씬 과장스럽게 표현되지 않았을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우리 인간이 원래 기대밖의 현상에 익숙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과대평가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 둘 다 혐오스럽기만 하다.

일흔한 번째 인생은 저 멀리서 보내야 할 것 같다.

 

죽음의 과정이 무섭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막상 죽음 앞에 서면 대부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눈 앞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감각은 급습하는 두려움과 공포에 일단 저항감을 보인다.

모든 병마는 각기 짜여진 틀에 맞춰 독특한 형태로 파괴 공작을 진행시킨다.

만약 병마의 전술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대한 쓸데없는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각각의 질병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죽이는 가를 알고 있다면, 비록 죽음과 맞싸워 패배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불필요한 공포로부터는 일단 벗어날 수 있다.

 

때론 좌절과 실망을 보이고 때론 자신의 무능함을 안타까워하는 의료진들이지만, 자살로 생을 끝낸 사체에 대해서는 좀처럼 슬픔을 보이지 않는다.

몰론 예외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 자기 학대적인 죽음에는 충격과 연민의 감정은 생길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고뇌의 감정은 따르지 않는 것이다.

 

성공적인 인생을 이루기 위해 희망은 필수적이다.

 

죽음 속에 내재된 존엄성은 죽음 전의 인생이 얼마나 고귀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존엄한 죽음은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희망의 한 형태이고, 그 희망은 생전의 삶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존재 여부가 갈리게 된다.

 

죽음은 결코 우리 계획에 따라 오지 않는다. 우리의 예상을 뒤엎으며 찾아든다.

우리 모두는 '아르스 모리 엔디', 즉 아름다운 끝맺음을 원한다.

인류가 문자를 쓰게 된 이후 우리는 이상적인 죽음을 글로써 기록해왔다.

 

자연은 자신이 갈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자연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우리 객체가 적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을 진행시킨다.

어떨 땐 심장 질환으로, 어떨 땐 뇌졸증으로, 또는 암으로 그렇게 해서 우리 각자한테도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모든 생물의 세대는 세대에 의해 교체되는 질서로 형성되어 있다.

자연의 도도한 순환과 무자비한 힘에 대항할때 그곳에는 패배만이 남을 뿐이다.

 

내가 지금껏 들었던 불가사의 중의 가장 이상한 것은,

인간이 죽음을 , 때가 되어 찾아드는 필연적인 종지부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재수가 없어서 혹은 나쁜 운명을 타고나서 죽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로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과 성실로 살아온 삶, 바로 그것이 우리가 죽을 때 필요로하는 존엄성인 것이다.

바로 어제의 삶이나 지난 주의 삶이 아니라 그 훨씬 전의 과거, 그 몇십 년 동안의 삶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존엄성이 있다.

존엄있게 삶을 영위한 사람만이 죽을 때도 존엄성 있게 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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