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다움으로 산다

2.온화한 분위기

3.말과 태도를 가린다

4.겸손하면서 당당하다

5.과시하지 않는다

6.좋은 자세를 취한다.

 

나이 들수록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람 특징 - 나이 들수록 고급스러운 사람이 되는 법 - YouTube

 

"글 전체에서 엘리트주의에 물든 학자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보다 100년 이상의 경험을 축적한 지식인의 눈으로 보면 르 봉은 전형적인 차별주의자다."

번역자가 붙인 말이다.

내가 보기엔 르 봉은 군중의 부정적인 부분만 드러내서 글을 쓰고,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제외한 듯하다.

부패한 권력과 왕국은 타국의 침략에 의해서 망하기도 하지만, 민중의 봉기로 전복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동양에서는 백성 혹은 민중의 뜻을 하늘의 뜻으로 해석하고 왕들의 통치에서 제일 주의할 항목으로 뽑는다.

 

군중 속의 개인은 바람결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무수한 모래알과 같다.

 

이성과 벌이는 싸움에서 감정이 완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종교적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예술 작품과 기념물 모두를 발물관과 도서관에서 끄집어내 파괴하고 과장에 내던진다면

인간이 위대한 꿈이 이루어낸 흔적 중에서 무엇이 남을까?

신과 영우, 더 나아가 시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환상을 주기 위해서다.

희망도 없고 환상도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대담하게도 행복을 약속하기 때문에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다.

바로 여기에 사회주의의 주된 힘이 있다.

군중은 예로부터 진실을 갈망한 적이 없다.

군중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오류가 마음에 들면 그것을 신격화한다.

군중의 마음에 환상을 심을 줄 아는 사람은 쉽게 그들이 지배자가 되지만,

군중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들의 제물이 된다.

 

경험은 군중의 정신에 진실을 확고히 심어주고, 지나치게 위험해진 환상을 걷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효과를 거두려면 많은 사람이 같은 일을 경험해야 하고,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어야 한다.

한 세대가 겪은 경험은 일반적으로 다음 세대에 쓸모가 없다.

 

군중의 지도자는 대부분 사상가가 아니라 행동가다.

매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고, 앞으로 갖출 가능성도 무척 낮다.

혜안은 대부분 의심과 신중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많은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신념이다.

복음서가 믿음에 산을 옮길만한 힘이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에게 믿음을 부여하면 그의 힘이 열 배는 더 커진다.

 

결국 세계를 이끌고 가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다.

그러나 지성은 너무 멀리서부터 세계를 끌고 간다.

사상을 만들어낸 철학자가 흙으로 돌아가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사상이 내가 방금 설명했던 장구한 과정을 거쳐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뜻이다.

 

신념과 관습은 우리 삶의 지극히 사소한 행동까지 지배하기 때문에

독립심이 강한 사람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

우리 정신에 무의식적으로 발휘되는 지배력이야말로 진정한 폭정이다.

 

1895년에는 대표작인 <군중 심리>를 출간했다.

이책은 출간된 지 1년 만에 19개 언어로 번역될 만큼 큰 주목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사회심리학의 선구자 역할을 한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드골, 루스벨트, 처칠 등 세계를 이끈 정치인들도 <군중 심리>에서 르 봉이 제시한 원리를 통치에 적극 활용했다.

한편 히틀러나 무솔리니 등 파시스트들이 개중을 선동하는 일에 그의 의론을 악용하기도 했다.

레닌과 스탈린, 마오쩌둥까지 그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분석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개인이 모여 군중이 되면 개인으로 존재하는 때처럼 이성적으로 추론하지 못한다."

 

대중이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라면 군중은 '활동하는 대중'이다.

 

르 봉에게 군중이란 문명의 계단에서 몇 단계 아래로 내려간 '야만인'이며 오직 파괴하는 힘밖에 없는 존재다.

 

수백 명이 한 공간에 있더라도 각자가 다른 목적을 띤다면 그들은 집합체에 불과하지만,

소수라도 '특정한 상황에서' 군중을 형성할 수 있다.

 

누군가의 신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언론을 통해 악의적인 확언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확언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의견이 일치되어 여론이 형성되면 전염이란 매커니즘이 개입한다.

 

책의 뒤로 갈수록 생각을 깨우는 글들이 많다.

정신을 새롭게하는 글들이 고맙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다.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것은 진실과 사실의 추구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 운동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감과 분노에 빠진 사람들의 존재다...

사유하기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넘어서 한 개인을 사유 주체로, 판단 주체로 그리고 행동 주체로 자리잡게 한다.

 

정의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사건에나' 공정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되어야 비로소 그 진정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선택적 정의는 정의의 이름을 빌린 '불의'일 뿐이다.

 

이탈리아 정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나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라고 한 이유다.

 

칸트가 중요한 철학적 공헌을 했다고 해서,

그가 지닌 여성 혐오 사상과 인종 차별과 같은 인식의 사각지대의 문제들이 덮여서는 안된다.

 

변화란 마치 뜨개질을 하는 것과 같아서 완성을 위해서는 꾸준하게 지치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한 번에 한 걸음씩"의 입장을 지켜내며,

인내심을 가지고 개혁의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변화의 의미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헌법에 근거하여 설득했다.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는 범주 속에 트랜스젠더를 함께 넣는 것도 한계를 지닌다.

왜냐하면 "LGB"는 성적 지향에 관한 것이지만, "T(트랜스)"는 젠더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단적 범주를 지칭하는 라벨을 붙이는 것에는, 언제나 그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 문화 종교 정치적 차별만이 아니라 생명의 위기를 경험하면서까지 오랜 성전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트랜스젠더라고 규정되는 사람들,

이 모든 이가 다양성을 지닌 인간이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타자에 대한 혐오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인간됨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인류에 철학과 종교가 등장하게 된 이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런데 내게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행복의 추구'라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존재다.

이 죽음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오직 인간만이 죽는다. 식물과 동물은 소멸할 뿐이다."라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이 유한한 삶에서 무엇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성찰하게 한다...

철학은 '행복의 추구', 종교는 '구원의 추구'라고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이고 있을 뿐이다.

 

나는 행복한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유한한 삶에서 나에게 행복이 경험과 의미를 주는 소중한 그리고 진정한 관계를 가꾸고 있는가.

 

모든 고립이 외로움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더라도 나와 함께할 사람이 없기에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 없는 상태의 고립이 있다.

즉 나의 행동에 "함께" 공조하고 연대하는 사람이 없을 때의 경험이다.

공포와 두려움을 권력 유지의 무기로 삼는 정치나 종교는 개별인들이 고립에 처하도록 하면서

그 고립감이 주는 두려움을 이용해 그들을 조종하게 된다.

 

외로움은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는 것이다.

반면 고독이란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음'의 상태이다. 동시에 이 세계와 타자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모든 사유는 바로 고독의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고독은 '나와 나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그 대화가 바로 사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고립감과 외로움을 '고독의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우선적 전제조건은 자기 신뢰와 자기 사랑이다.

자기 신뢰를 통해서 자신과 또 다른 자기와의 대화인 비판적 사유가 가능하게 된다.

자기 신뢰와 자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자 사랑을 할 수 없다.

 

외적인 고립이 정신 세계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자로 자기만의 정원을 끊임없이 가꾸는 일이다.

그는 그 오랜 고립과 시간에 끊임없는 독서와 자기 성찰을 통해서,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낮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립과 외로움이 줄 수 있는 파괴성을 넘어서서 비판적 사유와 성찰이 일어나는 '고독'의 시공간을 창출했고

27년 6개월이라는 길고 긴 고립의 시간 동안 새롭게 변화된 세계의 낮꿈을 일구어 냈다.

 

고독의 시간에 자신과 만나는 것은 타자와 "함께-살아감"의 중요한 토대가 되기에, 함께-살아감의 소중한 예식이기도 하다.

'고독 연습'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살아감이란 무수한 문제들과 씨름하는 것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질병과 같은 외적인 문제들,

또는 삶의 부조리와 무의미성과 씨름하는 내적인 문제들 등 우리 각자의 삶에 '문제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지금' 절실하게 시름하는 문제가 끝나면 이제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 문제의 색체와 농도가 다를 뿐,

언제나 지금 나의 삶에는 외적인 문제들, 그리고 내면적인 문제들이 나의 세계에 자리 잡게 된다...

"나는 어떻게 하면 문제없는 삶을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문제들과 씨름하는 삶을 살 것인가"로 질문의 구성을 바꾸어야 한다.

 

이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만이,

우리 각자의 삶이 지닌 무의미성과 부조리를 넘어서는 용기와 열정을 지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삶이 비처럼 나 자신에게 쏟아지게 하련다.

 

타자들의 죽음은 '나'의 죽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 죽음들이 '나'를 이 삶으로 소환하는 것이다.

그 죽음들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문제없는 삶'에 대한 동경과 기다림이 아니다.

오히려 '어떠한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나의 삶을 살 것인가, 라는 근원적인 물음들을 용감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어떠한 문제들과 씨름하며 살 것인가. 이 근원적인 물음과 매일 대면하는 것은 우리의 살아있음의 과제이다.

 

의도적 헌신이 없는 삶이란 실존적 심연으로 우리 자신을 사라지게 한다.

목적의식이 없는 삶은 불안을 가져 온다.

의미로운 삶이란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이 내면은 끊임없이 자신이 새로운 탄생을 믿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탄생의 능력은 새로운 해의 시작에 새로운 결심을 하는 행위로 드러난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50대 이후에는 적게 기대하고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고 누리려는 관점이 커진다.

즉, 현재 가진 것에서 최대한 누리려는 생각이 커진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 

 

토머스 콜의 걸작 <인생 여로>

 

삶은 행복으로 시작해 행복으로 끝나지만 두 행복은 성질이 전혀 다르다.

처음의 환희와 열기로 들뜬 행복이라면 나중은 고요와 내려놓음이 특징인 행복이다.

청년과 노인 모두 희망어린 환영을 본다.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의 4분의 3은 다음과 같은 6가지 요인으로 설명된다.

사회적 지원: 힘들 때 빋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있는 것

아량: 사람들은 관대하게 행동할 때, 그리고 주변에 관대한 사람들이 있을때 더 행복하다

신뢰: 부정부패는 인생 만족도를 저해한다

자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

1인당 소득

건강수명

 

H=S+C+V+T

(H:지속적인 행복의 수준, S: 이미 설정된 행복의 범위, C: 삶의 상황, V: 자의로 다스릴 수 있는 요소, T: 나이듦)

 

"목표를 추구할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다.

아무 목표나 세워보자.

쾌감은 주로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갈 때 올 것이다.

최종 성공의 순간에 느끼는 짜릿함은 대개 긴 뚜벅이 여행의 끝에 무거운 베낭을 내려놓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과 비슷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것이 전진의 법칙이다.

쾌감은 주로 목표를 달성할 때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전진할 때 생긴다."...

복권 당첨자든 하반신 마비 환자든 모두 1년 안에 자신의 행복 기준선 부근으로 복귀한다.

 

"한 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실망감을 강하게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증발하죠.

그래서 중년에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왜 나이 들수록 행복해질까?

나이 들면서 비록 육체는 우리를 배신할지언정 우리의 됨됨이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은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날그날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거죠. 인생이 주는 하루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수용하는 거, 수용이 정말 중요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걱정하지 말잔 말이지."...

그것은 말하자면 "음미"에 더 가까웠다.

 

그때 알았죠. 그분들이 말하는 시간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시간이 아니란 걸요.

그런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건 다른 시간이었던 거죠. '인생'의 시간.

그 순간 깨달았어요.

나이 여든에는 '오랜'친구를 새로 만들 수 없다는 걸. 불가능한 거죠. 남은 세월을 생각하면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소중한 사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관심이 많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냥 같이 앉아 얘기나 좀 하는 정도인 사람한테는 별 관심이 없거나 젊었을 때보다 훨씬 관심이 덜 간다고 했어요.

이게 바로 선택성 이론이죠. 감정은 그대로지만 감정을 줄 대상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더 신중하게 선택하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우리 인생의 기본 목표와 선택의 양상이 시간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시간의 지평이 바뀌면 우리가 세우는 목표와 우리가 하는 선택의 양상이 바뀐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활동은 물론이고 우리가 느끼는 것,

더 나아가 우리가 인지하는 것마져 달라지는 것일지 모른다.

 

"나이 든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를 선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어요.

젊은 사람들은 무작위라고 해도 좋을만큼 세 항목을 골고루 선택했고요."

 

노인들은 과거에 집착한다는 통념과 달리 어느 연령 집단보다 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노인들은 대체로 현재 지향적이고, 젊은이들에 비해 먼 미래에 대한 관심이 적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긍정적인 것을 음미하기,

부정적인 것에 덜 매달리기, 수용하기, 과민 반응하지 않기, 현실적인 목표 설정하기, 소중한 관계 우선시하기.

 

지혜는 나이에 상관없이 유용해요, 하지만 노년에 특히 더 중요하죠.

진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젊은이들은 생식이 가능하니까 지혜롭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노인들은 다른 식으로 종의 생존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지혜의 할머니 효과죠.

 

인간은 좋은 날을 보내고 있을 때조차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무엇이 아닌지를 잘 모른다.

더욱이 수년간 불안에 휩싸여 있을 때는 문제의 근원을 잘못 짚을 공산이 훨씬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호와 소음을 구별하고 적정 반응과 과잉 반응을 구별할 수 있을까?..

 

변화는 좋은 것이지만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나 좀 여기서 꺼내줘!"이 충동은 모든 것을 내팽개치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변화는 우리가 그간 축적된 기술, 경험, 인맥을 이용할 때,

다시 말해 그런 것을 처음부터 다시 쌓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이용할 때 덜 파괴적이고 더 성공적이다....

그러니 횡적으로, 점진적으로, 건설적으로, 논리적으로 움직이자.

그러면 충동적으로 실수를 범할 확률이 낮아지고, 불리한 상황을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되고,

문제의 원인을 잘못짚었을 때 입는 피해가 줄어든다. 그리고 만족감이 생긴다.

우리 안의 보상 체계는 우리가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만족감의 분출이라는 보상을 주는 반면, 실제로 목적지에 도달하면 일순간 쾌감이 생기지만 곧 그것이 새로운 기준점이 되어 버린다.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어떤 위험을 감수할 때 그것이 파괴가 아닌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에서 뭔가를 조정할 때는 그간 축적된 경험과 이전에 했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 의무, 기회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토대로 해야한다.

 

우리는 시간을 우리의  종으로, 즉 우리가 사용하고 채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반대로 시간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우리가 거부할 수 없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싫어한다.

그래서 '기다리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언이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시간과 공조해 시간이 우리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이다.

인내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겠지만 해결책 중 하나는 된다.

 

로버트 스턴버그 <지혜: 그 본질, 기원,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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