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윤리는 변한다.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들이 먼 훗날 보았을때 적절할 것이지 판단하고 실행한다면 좀 더 현명해 질 것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과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다.
윤리에는 그것과 관련된 일체의 논의를 뒤집어버리는 강력하고도 오랜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규칙은 변한다'라는 절대적 성질이다.
우리가 올바르고 윤리적이며 표준이라 여기는 것들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확실성, 신념 그리고 우리가 늘 자명하고 영원한 진리라 믿어온 바들을 지탱하는 기둥들 중 많은 것들은 이미 무너졌다.
윤리적 변화를 급격하게 추동하는 가장 큰 동력들 중 하나는 기술이다.
기술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안들을 제공한다.
현대 윤리는 오늘날의 격정적인 토론과 무모한 절대적 확신에 대해 요즘 쉽게 찾아보기 힘든 단어 하나를 요구한다.
바로 겸손이다..
좌파에서든 우파에서든 가장 폭력적인 사람은 대개 두려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저들'보다 '나음'으로써 자기 지위를 확보하려는 경우가 우리에겐 너무 흔하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우려면 우선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학계의 전문가라는 이들은 점점 난해한 말들을 주워섬기며 자기 영역을 좁혀가고,
또 그렇게 배타적인 태도로 일반 독자를 소외시키면서 멀찍이 자신들만의 섬을 만든다.
이런 사람들을 도발할 생각으로 나는 이 두껍지 않은 책을 썼다....
윤리에 대한 생각과 토론은 진리의 학문적 요새가 아니다.
전문가라는 이들의 종신재직권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의미다.
2017년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 의사들은 태아 상태의 새끼 양 여덟 마리를 양수가 가득한 커다란 지퍼백 같은 장치 안에 넣고 관찰했다. 그런데 이 인공자궁에서 한 마리가 살아남았다....
인큐베이터가 아닌, 양수로 가득 찬 플라스틱 용기에 미숙아를 넣어 생육시키는 임상실험은 아마도 향후 몇 년 안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 복제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일이라 여기는 미국인은 2001년 당시 7퍼센트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16퍼센트로 늘어났다.
게다가 유럽 계열의 조상을 둔 어머니들은 모두 합해봐야 10개 남짓밖에 되지 않는 씨족들의 후손들이었다.
아무리 많은 인종주의자와 몇몇 '지도자'가 그게 아니라며 설득하려 해봐야 우리 인류가 단일 조상의 후손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즉, 우리 인류는 기본적으로 단일 종족이고, 따라서 극단적으로 위험한 전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언제든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일한 종이 이처럼 거대한 개체수를 가진 데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챔팬치와 보노보는 인간보다 개체수가 훨씬 적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훨씬 더 크다.
고래나 곰, 고양이의 종이 딱 하나씩만 존재한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최근까지 우리가 파악해온 모든 생명체는 단일 분자 DNA를 토대로 한다.
생명체의 근간을 구성하는 A,T,C,G라는 4개의 화학물질만으로도
박테리아부터 오렌지와 모기 그리고 달팽이, 정치인, 강아지 꼬리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 비DNA 생명체를 만들 수 있기에 생명체와 유전이 여러 화학물을 통해 발생 가능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유일무이의 독특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만약 다른 생성으로 가서 대기와 식품, 연료 저장소를 만들고 새로운 문명의 씨를 뿌리는 일이
그곳에 이미 존재하던 생명체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생명체의 싹을 심어야만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해야할까?
신체의 일부만 남은 플라나리아는 자기 신체에서 어떤 부위들이 잘려나갔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부위들을 만들어낸다.
정말 신기한 점은 고리 부분만 남았다가 새로 생긴 머리의 뇌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다.
새로 생긴 이 뇌는 잘려나간 머리가 가지고 있던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다.
이전 개체에 있던 기억임에도 새로 생성되는 개체로 옮겨가는 것이다.
심지어 새로 만들어진 부위는 애초에 뇌가 없는 상태에서 생성되었고, 그 상태에서 새로운 개체로 성장해야 했음에도 말이다.
뇌는 정말 신기한 존재고, 기억은 뇌보다 훵씬 더 신기하다.
미국과 멕시코를 합친 것과 비슷한 표면적의 남극 대륙, 그리고 텍사스의 약 3배 크기인 그린란드,
이 두 곳의 얼음이 지구 전체 담수성 얼음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구 해수면은 그린란드가 녹을 경우 약 6미터, 남극대륙이 녹으면 약 60미터 상승한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음의 2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또 성실하게 일하면 나중에 잘살게 될 거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부모는 자녀 및 손자 손녀가 자신들보다 더 여유롭게 잘살 것이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캐나다의 어느 냉소적인 트위터 사용자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이웃해서 사는 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3년 내내 장동차 경적을 울려대는 사람의 옆집에서 이웃으로 사는 것."
그러자 누군가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그 자동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사람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시길..."
다음과 같은 행동이 트럼프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 중 하나다.
"나는 강력한 권력이 있고 그렇기에 얼마든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나를 멈출 수 없고, 사람들은 결국 나를 따를 것이다."
모든 종교와 윤리, 영적 전통의 중심에는 연민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이들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하는 그 방식 그대로 하상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파산의 66퍼센트는 의료 관련 문제에서 비롯되고,
이 때문에 해마다 50만명에 이르는 이들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밀려난다.
지역 보안관들은 주 정부로부터 재소자 1명당 매일 25달러를 받기 때문이다.
도 만약 이웃에 있는 민간 교도소들이 규모를 키워나가면 그들 역시 보안관들에게 요돈을 두둑이 챙겨준다.
모든 사람이 콩고물을 나눠먹는 것이다.
진실을 찾는 게 늘 어려운 것만은 아니야.
진실은 네 얼굴을 빤히 쳐다볼 때가 많거든.
진실의 문제는 그걸 믿기 어렵다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 그 진실을 믿게 하기란 훨씬 더 어렵고. -월터 다비 배너드-
인간은 대개 공포보다는 분노를 표현하는 쪽을 선호한다. 공포는 잔인함을 낳는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은 분노에 불을 붙일 성냥 그리고 증오로 가득한 말들이 잔뜩 담긴 상자를 들고 나타난다.
"당신으로 하여금 터무니없는 사실을 믿게 만들 수 있는 이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잔혹한 행위를 하게도 만들 수 있다. -볼테르-
이 "좋은 놈'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렇듯 오로지 '옳음'과 '그름', '좋은 놈'과 '나쁜 놈'
혹은 '원칙을 지키는 감독자'와 '사악한 장사꾼'이라는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놓치곤 하는 진리가 있다.
바로 이것 '좋은 놈들'도 때로는 '나쁜 놈들'만큼이나 당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길, 깊고 끈질기게 생각하길 바란다.
윤리는 우리가 배우고 적응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변한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각성해서 올바른 존재가 될 순 없다.
그러니 우리의 토론에선, 또 서로를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선 특정 시대의 법률이나 종교적인 잣대에 얽매이지 말자.
대신 순수함, 관대함, 공감, 공손함, 겸손함, 연민, 예의바름, 진실함 등의 여러 핵심 원리를 가운데 놓고 판단하자.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윤리적이기 위해, 즉 조금이나마 더 '올바르기' 위해, 궁극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덕목임과 동시에
우리의 인간성과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가치들이다.
"개발자의 가치관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코드 속에 녹아들어가 그 가치관을 제도화하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이다.
어떤 개발자가 리스크값을 매기고 순위를 정하고 또 평가할 때,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요소와 자신이 생각하는 결과에 대한 개인적 기준을 프로그램 안에 녹여두게 된다.
물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 누가 수영복을 안 입고 있는지 금방 알아볼수 있듯,
위기가 닥치면 누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주방 보조원, 택배 노동자, 운전사, 병원 노동자, 미화원들 ...
우리가 흔히 무시하는 이런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