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정신을 맑게하고, 삶의 이치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제 안에서 들끊던 온갖 소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습니다...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건 의식적 현존 상태, 즉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하면 마치 조금도 긴장을 풀면 안되는 힘든 일처럼 들립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알아차림이라고 말하는 게 더 좋습니다...
생각, 느낌, 신체 감각 등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인간 내면의 평화로운 것, 고요하고 차분한 것, 자꾸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중하며,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와 같은 것들에는 보상이 따른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곡예에 주목할 줄 아는 것은 유용한 기술입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그런 생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그 생각에 더 냉철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내 본 모습을 좀 더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 내 생각에 지배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말이야.
현재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제 정신을 온전하고 바르게 유지하려면, 날카롭고 효과적으로 발휘하려면,
때로 쉬게 놔둬야 한다는 말씀이었지요.
때때로 내면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주위가 분명해집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마음의 소리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것을 순간의 지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틈을 내어 멈추고 고요를 느끼는 겁니다. 정적의 순간을 찾는 것이지요.
어떤 삶을 살든 자기 안의 평화를 발견하려면 우리에게 내재한 소중한 능력을 돌보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그들을 그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단지 남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판단한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바뀐 사람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그럴리가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남들을 판단하고 우리 뜻대로 바꾸려 합니다...
남들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고 느끼면, 우리 또한 남들을 더 너그럽게 대하기 쉽습니다.
주변을 더 공감하는 자세로 관찰하고 또 그들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글귀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매달리면,
어떤 경험이나 배움도 우리에게 스며들 수 없게 되어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더 높은 지혜에 도달하고 싶다면, 신념과 확신을 살짝 내려놓고
우리가 실은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는 점을 알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 일이 좀체 없습니다....
푸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각과 마음을 깨우고, 매 순간의 새로움을 알아차리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옳다는 것이 결코 핵심이 아니라네."
저도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져야만 하는 것은 제 안에, 우리 안에 거의 본능처럼 깊이 새겨져 있었더 것이지요...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우리 마음의 고통은 대부분 외부의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이는,
즉 우리가 믿거나 믿지 않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지요.
우리의 마음,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고통이 움을 틔우는 곳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말리지 않는 한 그 생각은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것입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진정 성장하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번뇌에서 멀어지고, 설사 번뇌에 빠지더라도 금세 벗어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번뇌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죽은 사람뿐입니다.
성장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서서히 줄어든다면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을 좀 더 믿고 맡겨야 했습니다.
삶에서 가장 좋았던 일들은 거의 대부분이 제 계획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지시하고 예측하려 들수록 즐거움은 사라지고 더 괴로워집니다.
긴장할수록 지성의 일부가 사그라질 뿐이지요.
현재 상황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우주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근본적인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사는 데 익숙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자유와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생각과 통제력을 내려놓기, 내면을 돌아보고 경청하기, 현재에 집중하기, 정기적으로 편안하게 쉬기,
신뢰하며 살기,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적 성장의 결정적인 도약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는 데서 이뤄집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실은 누구나 인간의 삶에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입니다.
이승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희망, 두려움, 가정, 소망, 예상, 의도 등입니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룩한 마음가짐 중 첫 번째는 자애입니다.
두 번째는 연민입니다.
세 번재는 희열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고난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성공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함께 기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뜻밖에도 평온입니다.
평온은 폭넓은 지혜를 담은 감정입니다.
흔히 알아차림이라 부르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으로, 부드럽고 총명하며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우리 자신을 좀 더 너그럽고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확고한 의지와 좋은 의도가 충만했으므로 저는 믿고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믿음이 통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알아보는 눈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낯선 사람들의 관용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습니다.
사원 생활은 수행이 길어질수록 그 불확실성의 정도를 고조하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처럼 믿음을 말하면, 상황을 철저하게 통제하려 드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더 불편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믿음이 주는 기쁨과 풍요로움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기댈 것이라곤 믿음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지요.
늘 깨어 있으면서 현실에 절대로 맞서지 않는 부분 바로 알아차림이었습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지 저는 낯선 이의 호의에 기대야 했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이 점점 더 필요해질수록 분명해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남을 도와주길 좋아하며, 기회가 생기면 선뜻 나서서 돕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누라가 머리를 말리는 장면에서, 거울에 붙은 포스트잇 메모지가 하나 보입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달하면 갑자기 굉장히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수용의 태도가 우리 마음에 어떤 감정이 머물게 할 것인지,
그리하여 우리 정신을 어떻게 건강하고 온전하게 지킬 적인지를 결정합니다.
제가 들을 수 있는 더 현명한 목소리가 있음을,
삶을 통제하려 애쓰는 대신 삶과 함께 춤을 출 수 있음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기보단 손을 활짝펴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길을 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