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책이다.

 

문화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작업들 전체, 정신적이고 지적인 발전 과정,

사람들이 살아가며 따르는 가치, 관습, 신념, 상징적 실천들,

총체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문화를 예술적이고 지적인 읨로 보면 당연히 혁신이 포함되지만,

삶의 방식으로서 문화는 일반적으로 습관이 문제다...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는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으나,

생활 방식으로서 문화는 대개 관습의 문제다.

 

문화 연구자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 개념에 관해

"문화라는 개념의 어려움은 끊임없이 확장하도록 강요받고 있어

마침내 일상적인 삶 전체와 거의 동일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화가 낭만주의적 개념이라면, 문명은 계몽주의의 언어에 속한다.

 

소설을 읽기 위래서는 소설책이 필요하고, 소설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제지 공장과 인쇄기가 필요하다.

문명은 문화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사실 문화는 자신이 일정한 정신적 기반을 대여해주려 애쓰는 대상인 바로 그 문명이 만들어 낸 피조물이다.

 

문화는 문명에 비해 유용성의 지배를 덜 받으며, 실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무가 덜 하다.

 

문화는 총체성의 문제지만,

자기 수양은 자기 분할의 형태, 즉 한 신체 안에 예술가와 예술품이 동시에 들어 있는 형태를 취한다.

 

지금까지 글쓰기관련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글쓰기가 펼쳐진다....

산다는 것은 밀려오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수락의 여정이다.

때로는 어떤 일은 삶보다 커서 존재를 덮어버리곤 하는데, 그럴때 사람들은 말을 하고 글을 쓴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짓누르는 일이 내가 다룰 만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문장력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

 

결핍과 욕구를 충족하려는 인간이 스토리를 움직이고 이에 뒤따르는 모든 요소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원하는 주인공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토리는 공감을 일으키는 인물이 뜻하지 않게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나 그에 굴하지 않고 맞서 돌파구를 찾으려 할 때

발생하는 일련의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일련의 행위: 플롯 전환점

어떤 스토리든 주요 등장 인물은 일련의 행위를 하고, 작가가 이를 글로 적은 것이 내러티브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한 것이 내러티브다.

반면 플롯은 내러티브처럼 단순하지 않다.

스토리텔러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신중하게 재료를 고르고 배치한 것이 플롯이다.

재닛 버로웨이는 플롯을 극적 효과와 감정선, 주체 의식이 드러나도록 의도적으로 배치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보면 스토리는 내러티브와 플롯이 결합한 것이다....

로버트 맥키의 정의에 따르면 플롯 전환점이란 "스토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국면"이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절망을 딛고 일어서며 다른 사람의 절망 극복기에서 삶의 해답을 찾는다.

 

소설가 다린 스트라우스는 "나는 기획단계에서 초기에 각 플롯 라인을 포물선으로 그려본다.

한쪽 끝에 A를, 반대 끝에 B를 적는다. A는 질문이고 B는 그에 대한 답이다.

 

좋은 발단은 주인공이 어쩌다 어느 시간에, 어떤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충분한 배경을 제공하고 아쉬움을 남겨

다음 단계로 인도한다. 취재를 철저하게 하면 디테일이 차고 넘칠정도로 많아진다.

 

완결된 내러티브 포물선의 두 번째 단계는 상승(혹은 발전)이다.

다른 단계와 같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분량은 가장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운명의 급전환'이라는 뜻을 가진 페리테이아를 언급한다.

위기는 눈앞의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지점이다.

 

작가는 독자가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시점을 선택해야 한다....

시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하나로 통일된 정의는 없다.

소설가 다린 스트라우스는 시점이란 "스토리를 전달하거나 경험하는 인물의 심리적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학 에이전트 피터 루비는 시점을 "카메라 렌즈의 위치"에 비유한다.

주로 문학성 짙은 논픽션을 쓰는 필립제라드는 "시점은 1인칭도, 3인칭도 될 수 있다.

스토리 텔러가 등장 인물의 심리에 얼마나 깊이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했다.

 

활자화된 글은 글쓴이의 목소리다.

목소리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붙잡아두는 데 일조하며, 때로는 글의 인상을 좌우한다.

편집자 출신 루이스 래펌은 "나는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귀를 기울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살핀다.

이 방법으로 매년 꼭 읽어야 할 책을 가려낸다"라고 말했다....

크래이머는 "자아를 개입시킨 목소리는 독자에게 커다란 선물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 "자아를 허락한다는 것은 온기, 근심, 연민, 아첨, 불완전함 공유 등을 허락하는 것이다.

이것이 빠지면 무미건조하고 사실성 없는 글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목소리는 정확히 무엇일까?..

내가 내놓을 수 있는 포괄적인 정의는 "글에서 저절로 드러나는 글쓴이의 개성"이다.

 

여기서 개성은 필립 로페이트가 <자전적 에세이 작법>에서 예로 든 것처럼

헨리 루이스 멩켄식의 "짖궂은 철면피"가 될 수도 있다...

글에 개성을 입히고 싶다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개성'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페르소나는 정직해야 한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만들자...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글을 큰 소리로 읽는 것이다....

흐름을 깨는 부분이 나오기도 하고 수정할 곳이 나오기도 할 것이다.

대개는 이 과정에서 장황한 수식을 잘라내고 문장을 단순화한다....

마음이 편하면 글쓰기가 빨라지고, 글 쓰는 속도가 빠르면 좀 더 자기다워진다...

편안한 친구와 대화할 때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이야기해야 자기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편안하고 속도감 있게 작업하는 것이 글을 쓰는 훨씬 쉬운 방법이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틀리지 않았다면 인간의 기억은 의미있는 데이터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 집합은 종종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와 하나의 감정이 결합한 것이다.

이야기나 노래 속에 이미지 하나가 복잡한 감정을 와르르 불러내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진자 재능있는 작가는 독자의 기억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것이 얼마나 강렬한지 독자의 마음 안에 실제 감정을 떠오르게 하는 세계를 하나 말들어낼 정도다.

사건들은 그저 종이 위에 활자로 나열될 뿐이지만 그곳에 담긴 감정은 진짜다.

그래서 누군가 어떤 책에 "흠뻑 빠져 들었다"라거나 "헤어 나올 수 없었다"라고 하는 아주 독특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몇 가지 디테일을 신중하게 골라 이미 독자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건드리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료를 조사하면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사건도 놀라울정도로 생상하게 재현할 수 있다.

 

작고 소소한 순간의 힘과 중요성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창조적 논픽션은 철저한 진실성 준수에 달려 있다.

구체적 사실에 의존해 정직하게 현실 세계를 쓰고, 기억과 상상에 의존해 이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보여주어야한다.

더 멋진 스토리를 쓰겠다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픽션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기 위해 존재하는 사실을 사용하는 것은 창조적 논픽션이다.

 

윤리적으로 취재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진실의 힘에 있다.

 

존 맥피 <전원>

트레이시 키더 <새로운 기계의 영혼>

토니 루카스 < 한 땅>

잭 하트 <작가의 코치><낱말 짓기>

라요스 에그리 <극작의 기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는 3일동안 소환된 모든 기억들.

한 사람의 삶은 장례식장에서 되세겨지고, 정리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한번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전할 일들이 있다면,

삶이 충분히 가치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재수하던 시절이 그랬다. 모든 것을 걸때 후회란 있을 수 없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마주친 형 없는 세상, 탓할 사람 없는 세상이 두려워서,

두려움을 이기고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줄까.

 

내게는 아버지의 삶처럼 비창한 풍경으로 가인되었지만,

기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덤덤한 표정이엇을 것이다....

밀란 쿤테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당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신우형, 볼례누이, 복희 누이, 상욱아,

총을 쏠 때마다 손이 떨려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네.

총구를 하늘로 겨눠도 재수 없으면 떨어지는 내 총알에 누군가 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 누구도 내 총에 죽는 일만 없기를 날마다 기도한다네.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아홉살 작은아버지는 잘난 형 자랑을 했을 뿐이다,

그 자랑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민족이고 사상이고, 민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무엇에도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버지가 몇마디 말로 정의해 준다 한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사램이 덤덤하게, 죽음을 맞이하기가 쉬운 줄 아냐!"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 설켜 꾾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속에 부활하는 거라고.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밤은 깊어가고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나는 냉정한 합리주의자 아버지의 딸이니까.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좋은 글은 정신을 맑게하고, 삶의 이치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제 안에서 들끊던 온갖 소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습니다...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건 의식적 현존 상태, 즉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하면 마치 조금도 긴장을 풀면 안되는 힘든 일처럼 들립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알아차림이라고 말하는 게 더 좋습니다...

생각, 느낌, 신체 감각 등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인간 내면의 평화로운 것, 고요하고 차분한 것, 자꾸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중하며,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와 같은 것들에는 보상이 따른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곡예에 주목할 줄 아는 것은 유용한 기술입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그런 생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그 생각에 더 냉철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내 본 모습을 좀 더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 내 생각에 지배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말이야.

 

현재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제 정신을 온전하고 바르게 유지하려면, 날카롭고 효과적으로 발휘하려면,

때로 쉬게 놔둬야 한다는 말씀이었지요.

 

때때로 내면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주위가 분명해집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마음의 소리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것을 순간의 지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틈을 내어 멈추고 고요를 느끼는 겁니다. 정적의 순간을 찾는 것이지요.

어떤 삶을 살든 자기 안의 평화를 발견하려면 우리에게 내재한 소중한 능력을 돌보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그들을 그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단지 남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판단한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바뀐 사람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그럴리가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남들을 판단하고 우리 뜻대로 바꾸려 합니다...

남들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고 느끼면, 우리 또한 남들을 더 너그럽게 대하기 쉽습니다.

주변을 더 공감하는 자세로 관찰하고 또 그들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글귀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매달리면,

어떤 경험이나 배움도 우리에게 스며들 수 없게 되어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더 높은 지혜에 도달하고 싶다면, 신념과 확신을 살짝 내려놓고

우리가 실은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는 점을 알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 일이 좀체 없습니다....

푸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각과 마음을 깨우고, 매 순간의 새로움을 알아차리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옳다는 것이 결코 핵심이 아니라네."

저도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져야만 하는 것은 제 안에, 우리 안에 거의 본능처럼 깊이 새겨져 있었더 것이지요...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우리 마음의 고통은 대부분 외부의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이는,

즉 우리가 믿거나 믿지 않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지요.

우리의 마음,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고통이 움을 틔우는 곳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말리지 않는 한 그 생각은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것입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진정 성장하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번뇌에서 멀어지고, 설사 번뇌에 빠지더라도 금세 벗어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번뇌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죽은 사람뿐입니다.

성장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서서히 줄어든다면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을 좀 더 믿고 맡겨야 했습니다.

삶에서 가장 좋았던 일들은 거의 대부분이 제 계획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지시하고 예측하려 들수록 즐거움은 사라지고 더 괴로워집니다.

긴장할수록 지성의 일부가 사그라질 뿐이지요.

 

현재 상황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우주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근본적인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사는 데 익숙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자유와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생각과 통제력을 내려놓기, 내면을 돌아보고 경청하기, 현재에 집중하기, 정기적으로 편안하게 쉬기,

신뢰하며 살기,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적 성장의 결정적인 도약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는 데서 이뤄집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실은 누구나 인간의 삶에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입니다.

이승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희망, 두려움, 가정, 소망, 예상, 의도 등입니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룩한 마음가짐 중 첫 번째는 자애입니다.

두 번째는 연민입니다.

세 번재는 희열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고난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성공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함께 기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뜻밖에도 평온입니다.

평온은 폭넓은 지혜를 담은 감정입니다.

흔히 알아차림이라 부르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으로, 부드럽고 총명하며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우리 자신을 좀 더 너그럽고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확고한 의지와 좋은 의도가 충만했으므로 저는 믿고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믿음이 통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알아보는 눈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낯선 사람들의 관용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습니다.

사원 생활은 수행이 길어질수록 그 불확실성의 정도를 고조하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처럼 믿음을 말하면, 상황을 철저하게 통제하려 드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더 불편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믿음이 주는 기쁨과 풍요로움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기댈 것이라곤 믿음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지요.

 

늘 깨어 있으면서 현실에 절대로 맞서지 않는 부분 바로 알아차림이었습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지 저는 낯선 이의 호의에 기대야 했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이 점점 더 필요해질수록 분명해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남을 도와주길 좋아하며, 기회가 생기면 선뜻 나서서 돕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누라가 머리를 말리는 장면에서, 거울에 붙은 포스트잇 메모지가 하나 보입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달하면 갑자기 굉장히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수용의 태도가 우리 마음에 어떤 감정이 머물게 할 것인지,

그리하여 우리 정신을 어떻게 건강하고 온전하게 지킬 적인지를 결정합니다.

 

제가 들을 수 있는 더 현명한 목소리가 있음을,

삶을 통제하려 애쓰는 대신 삶과 함께 춤을 출 수 있음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기보단 손을 활짝펴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길을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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