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신비롭고 달아나기 쉬운 것이어서
늘 새로이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위험하고 우리를 열광시키기도 하지만
그만큼 체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알베르 카뮈-
약자의 유일한 무기는 논증이다. 자유의 사상을 대표하는 소크라테스, 갈릴레오 갈리레이, 코페르니쿠스, 조르다노 부르노, 스피노자, 로저 베이컨 등에서부터 근대의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성의 신봉자들이 종교적 권위나 세속적인 권력의 본질인 무지.편견.폭력.아집.교만.교활. 포악. 위선.궤변. 협박.허위.광신.잔인등과 싸워온 기록은 눈물겨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위대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을 말하며 '자유로운 사상' 이란 어떤 사상인가를 이 두권의 책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나의 글은 논증으로 무장하는 동기가 되었다.
나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이 민족에 대한 일본 통치가 20년만 더 계속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보는 일이 있다. 일제의 통치술이 비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해방 전 어느 시기에 이 민족은 이미 사실상 거의 일본인이 다 됐던 것이 아닌가 싶다.
베트남 민족은1867년에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지만 식민군대와 100년 후에도 무기를 들고 전쟁을 벌일 만큼 끈질겼다. 알제리 민족은 1830년에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120년이 지난 뒤에도 8년간의 독립전쟁을 벌일 나큼 민족의식이 강했다. 인도네시아는 1602년에, 인도는 1600년에 각기 식민지가 되어 가장 긴 식민 통치를 받았던 나라지만 300년 후에도 독립전쟁을 벌일 만큼 동화되지 않고 자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의 35년간은 이에 비하면 거의 잠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우리는 민족적 에네르기를 사실상 거의 상실했던 것이 아닐까. 과거의 원나라와 청나라의 헐술했던 지배에서 되살아난 것을 가지고 이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하기에는, 일제 말기의 실태는 너무도 일본화해 있었다는 것이 나의 숨김없는 심경이다.
얕은 재주나 술수는 우직한 성실만 못하다.
참지식인은 비판을 생명으로 한다. '비판'은 시와 비를 반으로 쪼개어 보여준다는 뜻이다. 지식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진리를 밝히고, 진리를 억압하는 권력구조를 비판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식인이 가진 힘이란 이성적인 사고와 진리에 대한 믿음과 용기뿐이라고 생각했다. 비판할줄 모르는 지식인은 육체적 고자와 같다.
세계의 정치개력운동사에서, 어느 나라의 경우에나 큰 공통점이 있어요. 우익은 이권으로 뭉치고 좌익은 이면으로 모이지만, 동시에 우익은 이권분배의 크기로 분열하고, 좌익은 이념의 지나친 정밀화.세밀화에 집착하는 '작음'의 고질적 아집 때문에 망한다는 역사적 경험이에요. 경험적으로 그렇쟎아요?
내게는 분명히 중요한 흔적을 남긴 분이 있다. 그것은 현대 중국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이다. 루쉰은 문학의 형태로 실천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실천으로 행동화한, 흔치 않은 지식인 중의 한 분이다. 젊은 시절의 누구나가 그렇듯이 정신적.사상적 모색으로 고민하던 나는, 루쉰의 많은 저서를 읽으면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에 감동했다. 단순히 지식을 '상품'으로 파는 것에 안주하는 교수나 기술자나 문인이 아니라, 부정한 인위적. 사화적 조건으로 말미암아서 고난 받은 이웃과 고난을 바꾸어 보려는 '지식인의 사회적 의무'에 눈을 뜬 것이다. 그 의무감은 '인간에 데한 사랑'에서 싹 튼 것임은 물론이다. .... 내가 몇 사람의 잠을 깨우고, 몇 사람의 의식을 깨우쳤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루쉰처럼 '역사'를 밀고 갈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한 '시대'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30년 전 나의 의식의 눈을 뜨게 해 준 루쉰에 대한 조그마한 답례를 한 셈이다.
.... 남한에는 너무도 원칙이 없고 북한에는 너무도 원칙이 강하다는 사실, 남북 각기 교조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민족의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어디든지 간다'는 말처럼 통일문제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집요함은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는 신앙으로서의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직까지는"라고 말한 까닭은 내 나이가 올해 예순다섯인데, 더 나이가 들게 되면 장담할 수는 없다는 뜻에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무종교로 살다가 죽음에 임박해서 '무슨 거사'니 '무슨 베드로'니 또는 '무슨 신도'로 둔갑할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렇게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세상에 태어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어주고 불러준 그대로의 이름으로 생명의 위대한 어머니인 땅로 되돌아갈 것이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예수와 부터의 사상과 행덕을 기리는 데는 남에게 빠지지 않으려는 사람이지만, 그 두분의 이름을 빌려서 행해지는 제도화된 종교와 종교형식은 경멸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추악할 수 있을까? 세속 권력과 돈의 노예가 된 종교들!. 어쩌면 그렇게도 잔인할 수 있을까? 나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지만,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잔인무도한 행위를 본 뒤로는 차라리 신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길을 걸을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 내가 오늘 걷는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뒤에 오는 이의 길이 될 것이니
이를 두고 강준만은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이 말을 더 잘 실천에 옮긴 인물은 백범이라기보다는 리영희다. 백범은 죽기 전 일 년여 동안은 전 민족의 칭송을 받을 정도로 똑바른 걸음을 보였지만, 해방 직후 적어도 2년간 너무나 흐트러진 걸음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시종일관 똑바로 걷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리영희의 독특성이 두드러진다. '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매화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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