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의 세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변화는 두 가지의 기본원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 가치 창출은 소비자 개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소비자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기업은 개별 소비자와 그들의 고유한 경험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기업은 개별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 명제가 바로 'N=1'이라는 첫 번째 원칙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수를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고유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2. 오늘날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자원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모든 기업은 넓은 다양성의 세계, 즉 '글로벌 생태계'를 통해서 자원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은 이제 자원의 소유가 아니라 자원에 대한 접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 명제가 바로 'R=G'라는 두 번째 원칙이다.

    즉, 자원을 글로벌 생태계를 통해 찾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가치는 제품 생산에서 소비자의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B2B와 B2C는 컨버젼스된다(N=1).

 

2.아무리 큰 기업이라고 해도 개별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다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기업들은 외부 원천을 통해 생산, 인력, 서비스같은 경쟁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R=G).

 

3.기존의 기업 시스템은 변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새롭고 유연한 기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4.기업은 글로벌 생태계의 자원들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4.수만 명의 소비자들 중 단 한명의 소비자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특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기업의 지배적 논리를 파악하는 방법

1.우리 기업은 어떠한 관리자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2.어떤한 종류의 프로젝트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추자하는가? 투자를 꺼리는 프로젝트들은 무엇인가?

3.우수한 성과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4.직원들이 동경하는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5.고위 관리자들은 어떤 경력이 있는가? 그들은 모두 같은 회사에서 성장하였는가?

6.다른 기업에서 이직한 직원들은 어떻게 관리하는가?

  그들을 조직에 융화시키기 위해 기업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들은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영향력은 얼마나 지속되는가?

7.고위 관리자들은 조직 내 의견 충돌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그리고 의견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8.위험을 예측하고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베리는 형의 죽음을 계기로 영원한 아이 피터팬을 창조했다.

베리가 여섯 살때 어머니가 가장 아끼던 둘째 형 데이비드가 스케이트 사고로 죽었다.

슬픔에 깊이 빠진 어머니는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형의 죽음은 베리에게 형뿐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마저 빼앗아 간 것이다......

이런 이중 상실을 겪으며 베리는 다시는 버림받기 싫어서 스스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는 대신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로 남아 무능한 어른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죽지 않는 존재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피터팬>의 주인공, 피터팬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피터팬은 베리의 꿈이었던 것이다.

 

성인이 되어도 어른들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런 어른아이의 현상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카일리 박사는 "피터 팬 신드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너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빨리 철들어 혼자 모든 일을 알아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유아화와 거리가 멀다.

반면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구성원들의 유아화 정도는 심해진다.

사회 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국가에서 국민들의 삶을 더 많이 책임질수록

사람들은 성숙해질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귀여운 피터 팬이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착한 신데렐라처럼 다른 사람에게

더 귀엽고 어리게 보이며 호감을 주는 것이 생존전략이 되는 것이다.

 

하루는 친구가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롱펠로우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보게 친구!. 오랫만이군. 그런데 자네는 여전히 젊군. 자네가 이렇게 젊은 비결은 뭔가?"

이 말을 들은 롱펠로우는 정원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를 보게나!. 이제는 늙은 나무지. 그러나 저렇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그것이 가능한건 저래뵈도 저 나무가 날마다 조금이라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마찬가지라네. 나이가 들었어도 하루하루 성장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네!"

 

인간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죽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온전히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

심할 경우 먹고 씻고 배설하는 것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다시 한번 갓난아기 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삶을 시작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삶을 마감하도록 운명지워진 게

바로 우리 인간이란 존재다.

 

 

완벽주의자는 행복한 삶이란 긍정적인 감정들이 물 흐르듯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감정을 거부한다.

 

연습할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쥐가 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건 분명히 심리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그 순간, 그리고 다른 많은 상황에서 매번 승리의 문턱에서 아래로 끌어내린 것은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세계 챔피언을 향해 가는 길에 실패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패없이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완벽주의자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불합리한 기대를 한다.

희망 사항을 믿고 현실에서 멀어진다.

 

완벽주의자의 가장 큰 특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완벽주의자는 두려움에 의해 움직인다. 무엇보다 넘어지거나 이탈하거나 비틀거리거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사각형을 둥근 구멍에 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실패가 불가피한 현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상에 끼워 맞추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가 그러한 노력이 부질없다는 사실에 직면하면 도전을 꺼리거나 조금이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보이면 달아나 버린다.

 

최적주의자에게 실패는 피드백을 얻는 기회다.

최적주의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

 

삶을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사람은 최종 목적을 향한 지름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비참한 실패라고 인식한다.

 

완벽주의자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접근방식 때문에 모든 비판을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공격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종종 비판에 대해 극도로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결국 비판에서 배울 점이 있는지 평가하지 못한다.

 

철학자 미니어 몰도비아누가 " 우리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우리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한말은 완벽주의자에게 완벽하게 해당한다.

완벽주의자는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실제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학습을 위한 대가- 결점, 부족함,

실수를 인정하는 것-는 치르지 않으려고 한다.

 

완벽주의자를 방어적으로 만드는 두 가지 특별한 심리 기제가 있는데, 첫째는 자기 향상이고, 둘째는 자기 확신이다.

자기 향상이란 우리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자기 확신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을 올바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두가지 기제는 종종 충돌한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동시에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이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열등감으로 인해 스스로 무가치하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무가치하게 보이기를 원한다. 자기 향상과 자기 확인은 강력한 내면의 욕망이고

그 두가지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이 이기는지는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완벽주의자의 경우에는 자기 확신과 자기 향상이 만나 극도로 방어적이 된다.

 

세상에는 많은 잘못이 있고 상황에 따라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적절할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은 순진한 낙천주의자이며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다.

 

최적주의자는 실수했을 때 책임을 지고 실패에서 배운다.

실수와 실패는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실패에 대해 훨씬 관대하고 실패한 자신을 용서한다.

 

완벽주의자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그 길은 직선으로 뻗어 있으며 요지부동이다.

또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은 단정적이고 엄격하다.

의사 결정과정에는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감정은 종종 예측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해야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

미래는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적이다. 뜻밖의 사건 또는 자연 발생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은 위험하다.

특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서는 모든 변수에 확실하게 대비를 해놓지 않는 한 놀고 즐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완벽주의자의 경직성은 통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완벽주의자는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려고 한다. 자신이 손을 놓으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지 직접 해야한다.

통제를 거두는데 대한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도전하고 실패를 감수하면서 맞서 싸우는 경험 자체가 자신감을 키워준다.

 

역설적으로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자신감은 실패할 때 오히려 강화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항상 두려워했던 그 괴물-실패-이 생각했던 것만큼 무시무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정체를 드러냈을 때 더 이상 무섭지 않았던 것처럼 실패는 막상 마주하면 오히려 위협적이지 않다.

 

많은 결과들이 완벽주의 때문에 미루는 습관과 무기력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완벽주의자가 어떤 일을 잠시 혹은 영원히 뒤로 미루는 이유는 게으름을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오로지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완벽주의자가 일 자체를 피하는 것으로 실패를 피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결국 성공 가능성까지 배제하게 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숨겨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허락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중에야 나는 슬퍼해도 괜찮다는 것, 의기소침하거나 두렵거나 외롭거나 불안하게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심리 돌파구가 되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건강한 것이라는 단순한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전진과 후퇴, 승리와 실패를 반복하며 가는 오랜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웬즈라프와 웨그너는 "떠오르는 어떤 생각을 억누르거나 피하기보다 생각나는 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

불안과 우울증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내가 강의를 시작했을 무렵 가장 여려웠던 점은 대중 연설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내성적이고 완벽주의인 나는 강의를 할 때 심장이 뛰는 소리가 청중에게 들릴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극도로 긴장하니 준비한 이야기조차 자꾸 잊어버렸고,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나는 처음에 그 혼란스러운 감정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그 감정을 제어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애쓰면 애쓸수록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불안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이 수그러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목적을 갖고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효과가 없다.

예를들어, 뭔가를 더 잘하기 위해 어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는 거짓 수용이라고 부른다.

거짓 수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강의하기 위해 불안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바람이나 희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를 들어 화가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러고 나서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완벽주의자와 최적주의자를 구분하는 차이의 핵심이다.

 

선과 악, 즐거움과 고통까지 현실을 완전하게 받아들이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풍요로워진다.

현실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일때 우리 안에 지혜와 선이 흐른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역설적 의도"라는 기법을 제안했다.

프랭클은 불안감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말고, 더욱 불안해지고 더욱 안절부절못하도록 자신을 부추기라고 제안하다.

그러면 불안감이 몸에 자유롭게 흐르다가 저절로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불교 승려이며 학자인 마티유 리카르는 "분노를 들여다볼수록 아침 햇살에 눈이 녹듯이 눈앞에서 분노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평상시에 문제를 해결하듯이 "잘못"을 고치려고 하면 오히려 우울증이 점점 더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때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

 

과학 철학자 토머스 쿤은"어느 분야내에서 오래된 패러다임이 더 이상 새로 축적되는 지식을 받아들여 설명할 수 없게 되면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벽돌 탑처럼 오래된 패러다임이 무너져 내려 새로운 기초를 형성하고,

그 기초 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지식의 축적을 담아내지 못하고 무너지면 다시 한번 그 잔해위에

또 다른 패러다임이 생겨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감정이 흐르는 도관에 비유하면, 더 넓어진 기초는 더 넓어진 도관과 같다.

감정의 흐름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든 즐거운 감정이든 더 많은 양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우리가 슬픔을 경험할 때마다 기쁨에 대한 수용력이 향상한다고 말한다.

기쁨은 가면을 벗은 슬픔이다.

웃음이 샘솟는 바로 그 우물은 종종 눈물로 가득 찬다.

그도 그럴 것이

슬픔이 우리 존재를 깊이 파고들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기쁨을 담을 수 있으니.

 

건강한 목표를 설정하려면 한 손에는 높은 희망과 위대한 기대감을, 다른 손에는 객관적인 현실을 올려 놓고 군형을 맞추어야 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해크먼은 " 동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는 성공 가능성이 50 대 50인 지점에 있다"고 제안한다.

 

나다니엘 브랜든은 현실 존중을 정신 건강을 위한 기초로 여긴다.

감정, 실패, 성공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은 동일률을 인정하고 우리 감정에 적용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자기 수용은 현실주의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 느끼는 것을 느낀다.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

이루어낸 것은 이루어낸 것이다" 동일률이 일관적이고 노리적인 철헉의 기초가 되는 것처럼, 자기 수용은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의 기초가 된다.

 

아이나  배우자나 그 누구와 대화를 나눌 때 만일 상대방의 감정이 격해지면 일단 그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이 최선이다.

설득하거나 가르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은 잠시 보류하는 것이 좋다.

 

장기적인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대체로 도전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실패와 부족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와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또한 탐험하고 모험하고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격려하는 것이다.

 

체계나 경계가 없는 자유는 방종이며, 자유가 없는 체계나 경계는 구속이다.

 

새뮤얼 스마일즈는 말했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더 이상 희망하거나 욕망하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보다 무서운 저주는 없을 것이다."

건강한 발달을 위해, 성장하고 성국하기 위해, 아이들은 어느 정도 실패와 시련, 고통그러운 감정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노력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자제력을 배우고 스스로 성공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타고난 지능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성공이 자신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실패에 대해 속수무책이 된다.

 

오늘날은 끊임없이 인정만 받으려고 하고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도전하고 인내하며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태도가 필요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지혜는 고통의 경험에서 온다. 우리는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우리의 삶과 상황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힘든 상황이 닥칠 때 비로소 삶과 경험을 진중히 돌아보게 된다.

솔로몬이 현명한 가슴이라고 말했던, 세상을 깊이 볼 수 있는 혜안을 얻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폭풍의 눈을 마주 보아야 한다.

 

인격은 편안하고 조용하게 발달할 수 없다.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영혼이 강해지고 비젼이 분명해지며 꿈을 꾸게 되고 성공할 수 있다.

 

기쁨의 경험은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으로 연결하고 고통의 경험은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 높이 날고 있을 때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현실의 제약을 이해하고 겸손해 진다.

기쁠 때는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 보고 괴로울 때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보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듯하다.

 

건강한 심리는 오만함과 열등감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다. 오만 과 열등감이 어우러져서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쁨고 고통이 어우러져야 현실과 건강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

 

고통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지혜와 동정심을 배우게 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슬픔과 고통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때 고통이 줄어든다.

 

나 자신이 먼저입니다. 나를 받아들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차원 높은 동정심은 이기심이 발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혐오가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동정하기 어렵습니다.

동정심이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아무 상처도 받지 않는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비겁자다.

진정한 영웅은 스스로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들은 성공하려면 우선 실패해야 하며, 행동하려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우리는 완젹하지 못하지만 용감한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올리버 웰덴 홈스의 말로 표현하면 " 70세가 되는 것은 때로 40세가 되는 것보다 더 설레고 희망적"일 수 있다.

 

여름의 뉴욕 거리에는 벌거벗은 육체들이 활보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은밀한 심리상담실에서만 옷을 벗는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소심해졌거나 아니면 여전히 소심한채로 남아 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가 아니며 결코 그랬던 적도 없다. 단지 잠시 방향을 잃거나 무언가에 현혹되거나 낙담하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은 자신감있는 태도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 노먼 커즌스-

 

커다란 슬픔의 집 한가운데 앉아 있는 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평화로운 정원에 앉아 있게 된다 -하피즈-

 

자각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지닌다.  - 프리츠 펄스-

 

새로운 상황, 특히 시련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

전에 취하지 않았던 다른 방식, 상상력과 도전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겁을 먹고 위축되고 상황에 압도당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디폴트 행동에 의지한다.

늘 의지하던 익숙한 방법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디폴트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대응하는 특정한 메카니즘이자 습관적인 행동방식이다.

 

이처럼 삶이라는 오선지위에 처음 그려진 음표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심리에 두고두고 울림을 만들어낸다.

 

삶의 초반에 그려진 음표가 만들어내는 울림이 되풀이되어

"그래. 내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이런가 봐."하는  생각에 빠지면서 삶에 특정한 테마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살면서 생긴 굵직한 사건이나 트라우마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는 모종의 보상심리에서 기인한 행동 또는 디폴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그 테마와 관련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이미 자리잡기 시작한 행동방식을 또 다시 취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우리 삶에 드리운 테마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삶의 심리적 테마와 감정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길은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고 정서적 치유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 과정은 대개 다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당신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심리적 테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2.과거에 받았던 상처나 간직해온 아픔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것을 종이에 적어 보거나 당신의 말을 경청해 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라.

3.그것을 감추거나 이겨내기 위해서 생겨난 디폴트 행동이 무엇인지, 습관적으로 어떤 행동을 반복했는지 생각해보라.

4.감정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라.

  당신의 슬픔과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올 때까지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하라.

 

삶은 당신이 디폴트에만 의지하며 주저앉아 있기를 원치 않는다.

삶은 당신이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또한 당신이 괴로움을 마음껏 느끼고 받아들이기를, 그 다음에 그것을 놓아버리기를, 그리고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가듭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명심하라.

먼저 자신의 디폴트를 깨닫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시련속에서 그 재능을 꺼내서 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신을 재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일 또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이 내게 요구하는 것에 응답하는 일에는 에너지와 상상력,용기가 필요하다.

삶이 내게 완전히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위기와 시련은 삶에 남아 있는 디폴트의 흔적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다.

뿐만 아니라 삶이 당신에게 성장하고 발전하라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보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라고

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하다.

 

디폴트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당신 삶의 비뚤어진 궤도는 천천히 수정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진짜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 삶과 행동방식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사각지대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당신이 미처 모르는 사이에 당신 삶을 조종해 온

괴물을 인식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목발에 몸을 의지하고 싶어한다. -쥘 짐머-

 

인생이란 자아를 최대한 발현하는 과정,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 삶이라는 지도위에 나 있는 당신만의 길을 발견하고

당신이 이뤄야 할 목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시도하고 경험하는 시간이다.

삶은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정서와 영혼을 끊임없이 확정시키라고 재촉한다.

삶 그 자체가 지닌 에너지와 생명력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라고 끊임없이 졸라대고 재촉한다.

 

괴로움과 고통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에는 자신이 확대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느끼기 어렵다.

이런 느낌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시도와 행동이 발전은커녕 자꾸만 적어지고 축소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더 시시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가는 기분, 가진 것을 자꾸 잃어버리는 기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자꾸 적어지는 그런 기분 말이다.

그것이 어떤 좋은 물건이든, 지위든, 돈이든, 시간이든.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부터 당신의 삶에는 희망이 자라기 시작한다.

희망은 언제나 변화와 가능성이라는 토양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카페오레와 크루아상을 벗삼아 미친듯이 글을 썼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며 대게 안정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변화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시련을 겪고 있을 때 거기에 함몰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당신은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종착지에 이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 앞으로 나가는 당신을 방해하는 것, 당신이 너무 집착하고 있어서 시야를 흐리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놓아주어라. 마음에서 떠나 보내라.

그것은 결혼생활일 수도 있고 친구나 직장, 경력, 살던 집, 자기 이미지, 습관적인 행동, 당신의 과거나 잘못된 미래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무엇, 늘 해온던 방식, 이미 그려놓은 잘못된 미래상을 버리는 일은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스스로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 늘 해오던 방식에 의존하고 싶어한다.

우리 내면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자신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재평가 해야만 한다.

자신이 아직도 그 옛날의 '퀸카'라고 믿으며 거리를 떠도는 알코올중독 노숙자 여인 또는 지금은 그저 대학원의 수많은 평범한 학생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학부를 수석 졸업했다는 과거 경력에 집착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덜어내면 더 많은 것을 얻을 기회가 찾아온다.

비우면 더 많은 것을 채울 공간이 생겨난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할수록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착은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지만 놓아주는 것은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집착은 오로지 과거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놓아주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붙들고 있던 것을 놓을 때, 우리는 자신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시닥할 수 있다.

그럴 때 신성한 힘이 우리 삶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다.

 

역경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다.  -체사레 파베세-

 

혼란과 괴로움의 한간운데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때문인 것처럼 느끼기 쉽다.

그러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상황에 압도되어 있기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 뿐이다.

 

갑자기 내 자신이 바보같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마치 발밑에 있던 단단한 안전장치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힘든 건 내가 처해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진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 모든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 그런데도 근사한 글 한 줄,

아무것도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 시절의 작문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 교수님은 혹독하고 잔인한 비평으로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물론 나도 포함해서)의 재능을 가차없이 깍아내리셨다.

당시 나는 그 교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말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여섯살이나 일곱 살 때 좋아하던 무언가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무언가를 위한 사전 염습도 아니며 장난같은 헤프닝도 아니다.

그 일은 이제 당신의, 당신 삶의 스토리 일부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련을 위한 자리를 삶의 한 공간에 마련한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닫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이카는 처음엔 비중이 적은 조연을 맡았지만 곧 연극반에서 공연하기로 결정한 '브리가둔'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깜짝놀란 마이카는 주연을 맡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는 방과 후에 할 일이 많다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자신은 누군가의 대역 정도만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마이카의 노래 실력에 반한

연극반 선생님은 그가 꼭 주연을 맡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선생님은 마이카의 '숨겨진 재능'을 끌어내 계발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며 그를 설득하려 애썼다.

목소리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마이카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뮤지컬 연습시간에 일부러 빠지고, 공동 주연을 맡은 친구한테 싸움을 걸어 분란을 일으키고, 친구들과 잔뜩 술을 마시고 취한 채

연극반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선생님이 마침내 마이카의 '노골적인 반항 행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그를 불렀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마이카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누나가 자기한테 했던 말이 커다란 충격과 상처였기 때문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선생님의 격려 속에서 뮤지컬의 주연 역할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마이카는 이 공연으로 모든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다. 단 한사람, 그의 누나만 빼고 말이다.

마이카의 누나는 그의 뮤지컬 공연이 있던 주에 캠핑 여행을 떠나버렸다.

 

이 일은 나도 때로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어.

나는 언제나 강해 보이려고만 애썼어. 내게도 약한 모습 두려워하는 모습이 있는데도 말이야.

 

당신에게 벽난로같은 무언가가 없다면 하나쯤 만들어야 한다.

찾아가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당신만의 벽난로가 될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어디라도 상관없다. 당신이 그곳에서 소속감과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동네에 있는 친근한 커피숍, 바닷가의 특정한 장소, 늘 앉아서 기다리는 벤치도 좋다.

햇볕을 듬뿍 받으며 자연의 향기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도 괜찮다.

요가 클래스, 도서관의 조용한 방이나 당신의 서재, 실직자의 구직활동을 도와주는 단체도 괜찮다.

 

삶의 힘든 시기를 혼자서 보내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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