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울타리  밖의 세상에서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필요한 지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흡수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당신의 실제 삶은 교실 문이 활짝 열린 가운데 치르는 오픈북 시험과 같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의 문제를 기회로 바라보지 못할까?.

기본적으로 문제를 껴안고 받아들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란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또는 불평해야 할 대상이라고 배웠다.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결과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진정한 이노베이터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기존의 가정과 사고 방식을 철저히 뒤집는다.

 

"필요 발견하기"의 핵심은 "틈"을 찾아내 그것을 채우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에 존재하는 틈, 일반화되어 있는 서비스에 존재하는 틈,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행동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러나는 틈 말이다.

 

훨씬 불확실한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이 정도면 괜찮다"싶은 역할과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작고 안정적인 단계를 밟아나가는데 만족한다.

우리는 너무 멀리 나가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굳이 흔들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도처에 존재하며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사람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해결책이 거저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리한 관찰력, 견실한 팀워크,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마음가짐,

창의적인 해결 방식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 감옥을 만든다.

우리 스스로 만든 규칙이 우리를 특정한 역할에 가두고 수많은 다른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그러한 기존의 규칙과 고정관념에 과감하게 도전하면 어떻게 될까?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어떤 결과가 생겨날까?. 규칙을 깨뜨린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경험할까?.

 

그는 작은 목표를 갖는 것보다 큰 목표를 갖는 것이 더 쉬울 때가 많다고 말한다.

목표가 작으면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이 좁은 범위에 한정되고 일을 그르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목표가 크면 대개 보다 많은 자원을 활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도 더 많아진다.

 

규칙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면 당신에게는 엄청난 파워가 생긴다.

이미 닦여 있는 기존의 길은 당신이 택할 수 있는 수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은 보편적인 방식을 따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니는 넓은 도로를 달리고, 앞에 간 선임자들의 뒤를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정관념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주변의 기대에서 벗어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당신 앞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보일 것이다.

 

당신을 제한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상상력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떻게 네가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녀는 책을 쓰는 것과 같은 대단한 일은 권위를 가진 누군가의 찬성이나

적극적인 추천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잘린것은 결국 제게 커다란 행운이였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느끼는 중압감 대신 새로 시작하는 초심자의 의욕이 찾아왔으니까요.

저는 자유롭고 행방된 기분으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생의 시기로 들어갔습니다.....

애플에서의 퇴출 경험은 정말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인생은 당신의 뒤통수를 세게 치는 법입니다.     ---스티브 잡스----

 

기억하라.

많은 경험을 하고 당신이 아는 지식의 토대를 넓힐수록,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풍부해진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라

 

바로 "당신 스스로를 허락하라"는 것이다.

즉 고정관념에 의문을 품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나아갈 길을 스스로 설계하고,

능력의 한계를 믿지 말고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해도 좋다고 당신 스스로에게 허락을 내리라는 뜻이다.

 

불확실성은 삶의 본질이며,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가끔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망설일 때가 있고,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들 앞에서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이야말로 혁신을 일으키는 불꽃과 같으며 우리를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기억하라

예측 가능한길 바깥으로 내려서야만,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져야만, 그리고 세상을 기회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바라봐야만

진정 멋진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넷세대를 그들의 베이비 붐 세대등 다른 세대들과 구분해 주는 그들만의 태도와 행동상의 특징이다.

우리가 시험한 기준은 자유, 맞춤 제작, 철저한 조사, 협업, 엔터테인먼트, 속도, 혁신이다.

 

기술의 발달로 이동 중에도 일할 수 있게 됐는데 왜 사무실에 봍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저는 지나치게 통제받는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넷세대는 생계 유지를 위한 일도 즐거워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고, 이제 일과 놀이는 똑같은 활동으로 통합되어 버렸다.

 

넷세대는 자유를 중시한다.

그것은 그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수 있는 자유이자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들은 일자리를 비롯해서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자기의 취향에 맞춰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의심하는 법을 배웠고 인터넷을 포함해 미디어에서 보고 읽는 모든 것을 철저히 조사한다.

그들은 성실함을 중시한다.

즉 그들은 정직하고, 사려 깊고, 투명하고, 약속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온라인과 직장에서 친구들과 놀라울 정도로 협력을 잘한다.

그들은 속도위에서 번성한다.

그들은 혁신을 사랑한다.

이것이 넷세대이다.

 

인간의 뇌가 평생동안 바뀌면서 진화한다는 걸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를 고려해 봤을 때

그린의 연구는 생각만큼 놀라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뇌에 물리적인 자국을 남긴다.

과학자들은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뇌 일부분은 다른 택시 운전사들의 그것보다 더 크다는 걸 찾아냈다.

뇌는 특히 태어나서 처음 3년 동안과 대부분의 넷세대가 일주일에 20~30시간 동안 인터렉티브 디지털 기술에 빠져있을 때인 10대 때,

또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외부에서 들어오는 영향에 특히 잘 적응한다.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디지털 몰입이 가시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초기 증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디오 게임 플레이어들은 분간 능력이 뀌어나고, 예술가와 엔지니어와 의사들이 갖고 있으면 좋을 법한 고도로 발전된 공간 기술을

갖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나는 관찰을 통해서 넷세대는 평균적으로 나보다 여러 가지 일들을 더 빠르게 바꿔가면서 처리하고,

인터넷에서 찾고 싶은 것을 더 빨리 찾아낸다는 걸 알아냈다.

넷세대의 사고는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고, 적응력이 강하고, 멀티미디어의 이해에 잘 맞는 것같다.

 

뇌의 특정 부위를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활용할 경우 그것이 근육처럼 크기와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뇌가 다르게 기능하도록 훈련시키는 데도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 모른다.

연구원들은 이미 시각장애인이 손가락을 사용해서 글을 읽을 때 얻는 정보가 그들의 시각령을 통해 처리된다는 걸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시각장애인은 손가락을 사용해서 세상을 본다.

그러나 만일 정상인이 시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된 일련의 연구 결과들은 시력이 정상인 사람들이 "촉각을 통한 식별감각"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력을 잃은 지 불과 5일만에 그들의 시각령은 촉각과 청각에 대한 반응 능력을 확대시켰다.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어떤 움직임에 대해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보면 운동 피질에서 신체를 실제 움직일때 생기는 것만큼 큰 변화를

생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연구팀은 한 집단의 참가자들에게 다섯 손가락을 사용해서 간단한 연주를 해보라고 시켰고,

또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손가락 움직임을 사용해서 머릿속으로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 보게 시켰다.

두 집단 모두의 뇌 기능에 변화가 일어 났으며, 머릿속으로 연주한 집단의 뇌 기능에서 일어난 변화는 실제로 피아노를 연주한 사람들의

뇌 기능에서 일어난 변화만큼이나 컸다.

이 연구 결과는 뇌가 환경의 영향에 반응하면서 평생 동안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신경과학은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뇌의 물리적인 구조와 활동에 선명하게 각인된다는 걸 보여 줍니다.

 

여러분의 뇌는 시야에 들어 있는 어떤 것들에 집중하도록 만들되 그 외의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덜 집중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정말로 중요한 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는 것이다.

 

 

죽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죽음

모든 소유물이 없어지는 거야!.

죽음이란 건 그런 걸 모두 잃는거지.

죽음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평생 마음 쏟은 일들과 소유물,소망,게다가 우리의 정체성까지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야.

 

제대로 보면 말이야, 내 이름도 내가 아니고, 나의 직업도 내가 아니고, 바닷가 별장도 내가 아니지.

살면서 미리 죽음을 받아 들이면 그런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데 익숙해져.

그런 것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일시적이고 우습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깨닫게 되지.

 

땅을 파보면 썩어서 티끌로 돌아간 육체대신 남은 뼈들이 나와. 모두 생명의 찌꺼기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죽었는지 상상할 수 있겠니?.

그것들이 다 저기 있는 거란다.

우리는 한 없이 거대한 공동묘지를 그저 계속 달리고 있는거야.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어.

물론 문제도 있었지만 심각하진 않았지.

다만 어머니가 안타까워 보였어. 돈이 없어서 줄곧 고통을 당했으니까. 수치스러운 일을 겪는 것도 보았고.

 

전당포에 가보니 그렇게 대단해 보였던 우리 부모님도 알고 보면 한 없이 약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거야.

그런 수치가 내 삶의 원동력이였단다.

아직도 기억에 선한 게, 그 어린 나이에도 " 이 좁은 동네를 박차고 나가야겠다."라는 마음이 간절했어.

 

부자 친척집에 놀러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지.

하지만 그건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말했어. "벌써 먹고 왔어요". 뭐랄까. 그런 힘, 그런 원칙이 확실했지.

옷차림에는 늘 신경을 썼어. 남의 집에 갈때는 반드시 제대로 차려 입었지. 안그러면 흉잡히니까.

가난하고 힘도 없는데 얼간이처럼 보여서야 되겠니?.

천만의 말씀이지. 나도 너 못쟎게 품위 있다!. 벌써 배터지게 먹었는데 내가 네 고기를 왜 먹냐!.

이런 자세를 가져야 했던거야.

또하나 중요한건 가족이였단다. 짜증나는 삼촌이 매일 저녁 찾아와도 반갑게 맞아야지. 가족이니까.

가족은 무조건 서로 믿고 도와야 하는 거 아니겠니.

그게 바로 우리 부모님들이 지켜왔고 또 나에게 물려준 가치관이란다.

 

"개미의 생활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기서 온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열정과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어떤 주제에 몰두하면, 그게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그걸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모래 알에서 세계를 보고,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한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지.

 

같은 시간을 산다고 해서, 다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죽음에 직면하니까,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별로 유감스러운게 없더구나.

분명한 건, "빠바방!" 그러면 난 이제 세상에 없는 거라는 것 뿐이었지.

 

혁명이 터지면 사람들은 그 새로움에 열광하면서 거기에 휩쓸려 버려. 혁명은 마치 어린애같지.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만면서 추하고 야비한 어른으로 변하거든.

모든 혁명의 탄생의 순간에는 뭔가 황홀한 데가 있어. 혁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약속하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거짓된 모습이 드러난단다.

 

늘 그러셨쟎아요. 무서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똥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변기에 앉은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했지. 상대가 누구든 주눅들 것 없어.

누가 폼을 잡으며 장군처럼 으스대거든 그자가 아침마다 똥 누는 장면을 생각해 봐라.

남들과 다를 바 없지.

 

세계의 아름다움이란 그 다양성에 있는 것이지. 그런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삶의 토대인데 말이야!.

난 인류의 풍요로움이 그 다양성에 있다고 확신해.

 

내가 좀팽이에 겁쟁이에 무능력자였다면 넌 아마 이렇게 투덜거렸을거야.

"에이 좀팽이. 나한테 준게 대체 뭐야?. 뭘 배울게 있어야지!."

반면에 나를 능력있는 아버지로 느꼈다면 이랬겠지.

"와, 정말 우리 아버지 때문에 정말 숨 막혀 죽겠어." 하지만 난 나고 넌 너야.

그러니 적당히 타협접을 찾아야 해. 아버지가 위압적이다?.

좋아. 그래도 네 나름대로 전략을 만들면서, 적당히 지낼 줄 알아야지.

 

첫 걸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는 게 중요하지.

그래야 다음 걸음을 제대로, 크게 내딛을 수 있어

시작이 좋아야 순탄하게 진로가 개척되지.

 

"진리는 길 없는 땅이다." 길은 가는 사람이 찾는거야.

누구도 너한테 " 봐라, 저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말해주지 않아 . 그럴 수 없지.

정해진 길을 따라 가면서는 절대 새로운 길을 발견하지 못해.

뭔가를 추구할 때도 마찬가지야.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결코 찾을 수 없어.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거야. 확실한 것, 잇숙한 것들에 대한 포기.

뭔가를 추구한다는 건 낯선과정이고 대단한 결단을 요하는 일이거든. 누구나 익숙한 것 안에서 살아가는 게 편하니까.

아침 여덟시에 기차가 떠나고, 아홉시에 은행 문이 열리고, 행실은 발라야 하고, 돈을 훔치면 안되고 등등 말이야.

하지만 익숙한 것을 떠나서 남들이 많이 다녀보지 않은 길을 찾거나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한다면 비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어.

 

내 육신은 죽더라도 ,같은 길을 가거나, 같은 가치를 믿는 사람을 통해서 내 정신의 일부나마 남아 있으면하는 소망말이야.

네가 인생에 대해서 뭔가를 안다면, 자신의 파편을 모아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은 이 소망을 이해할 수 있을거다.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가 그 작은 꾸러미겠지.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거 말야.

진정한 삶, 내게 맞는 삶, 자신을 올바로 이닉할 수 있는 삶을 사는거지.

 

갈림길을 만나거든 오르막길을 택하거라.

올라간다는 건 희망을 품는거니까.

 

물론 누구나 마지막길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단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죽을 수는 없는거지.

그러나 문앞까지는, 의식이 있는 한, 나는 네 엄마 손을 잡고 가고 싶단다.

 

인간이 죽는 건, 태어났기 때문이야.

젊을 때는"죽음은 다른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죽음이 삶의 일부이고 삶에 통합될 수 있는 것이란 걸 배우고 깨닫는다면, 삶이 휠씬 아름다워져.

삶과 죽음의 대조만큼 삶이 더 풍부해지겠지.

그걸 이해하려고 바로 죽을 필요는 없어.

마음편히 백살정도 살수도 있지.

하지만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는 걸 깨닫는 건 정말 중요해.

 

신기하지 않니. 자연은 그냥 제 갈길을 가.

네가 죽는다고 자연이 신경이라도 쓸까?.

네가 병들어 고통스러워 한다고?. 아니야.

풀코야. 그냥 흘러갈 뿐이야. 모든 게 흘러가. 병도 고통도.

 

그게 바로 자연이 주는 위대한 교훈이야.

한 순간이라도 멈춰 서서 부드럽고 은밀하게 바람에 나부끼는 자작나무 이파리들을 관찰해 봐라.

그럼 내 육신이라는 것도 하찮다는 걸 이해하게 돼. 자연은 눈부실만큼 무심해.

자연을 흔들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왜 우리는 자연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걸까.

흥분하지도 않고 울음을 터트리지도 않는 법을 말야.

그러면 호들갑떨지 않고 모든 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거야.

그래봐야 아무것도 아니지. 무엇을 위한 일도,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야.

이나무를 위한 것도 이 풀밭을 위한 것도 아니고, 하찮은 노란 꽃을 위한 것도 아닌야.

그런 존재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매일매일 자라고 변화하며 이 거대한 전체의 일부가 돼.

 

난 내생명이 이제 사라질테지만 그러면서도 사라지지 않을거라는 걸 알아.

왜냐면 나도 여기 이 모든 나무들과 같이 생명 그 자체의 일부이기 때문이야.

이 우주의  생명속으로 녹아들어서 그 전체의 한 부분이 된다는 건 장말 경이로운 일이야.

나의 생명은 결코 나만의 생명이 아니야.

존재의 생명이고 우주의 생명이지. 난 단지 그 일부분일 따름이야.

따라서 내가 내 육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 내겐 잃을게 없어. 아무것도.

 

무상함이야말로 늘 도처에 있고 믿기 어려울만큼 대단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도 결국은 스러져간다는 걸 아는거야.

 

침묵은 재능을 보호해 주는 방패막이다.

비밀이 없는사람의 마음은 공개된 편지와 같다.

침묵은 훌륭한 자재력에서 나오는데, 필요한 순간 침묵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이다.

당신을 소외시키려고 작정한 사람과의 대화, 당신을 마음대로 조종할 목적으로 당신의 꼬투리만 잡고 늘어지는 사람과의 대화,

자신의 속셈을 숨기고 교묘한 말만 늘어 놓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과묵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할일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이미 한 일은 반복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침묵은 자신의 재능을 보호해주는 방패막이다.

 

빨리 말하는 사람은 실패도 빨리한다.

항상 신중한 태도로 말하고,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조심해서 말하라.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마디 더 말할 시간은 있어도, 그 말 한마디를 취소할 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평소 유언장을 쓴다는 각오로 말하라.

아무리 사소한 말도 가장 중요한 말을 하는 것처럼 말하라.

 

행운이 당신을 도와주고 있다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라.

행운은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사람을 좋아한다.

반면 불운이 닥치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서 기다려라.

 

우리는 일을 시작하는 방법보다 마무리 짓는 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작하는 것보다는 성공적으로 끝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기보다는

그의 눈을 가린채 술래로 세워 놓고 웃음거리로 만든다.

 

멀리 보고 움직여라.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마라.

단판 승부에 패하면, 그 피해를 복구할 방법이 없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은 다음에는 반드시 기쁜 일이 찾아 온다.

한번 실패했더라도 다시 시도하라.

설령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더라도 두 번째 시도에서는 첫 번째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바라지만, 동시에 최악의 상황을 예상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쉬운 일은 신중하게, 어려운 일은 과감하게.

쉬운 일을 할때는 자신감이 지나쳐 일을 소홀하게 하기 쉽고,

버거운 일을 할때는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기 쉽다.

따라서 쉬운 일은 신중하게, 어려운 일은 과감하게 처리해야 한다.

 

거짓말은 천박한 바보들의 입을 통해서 가장 빨리 퍼지고,

진실은 항상 오랜 시간이 걸려 가장 늦게 도달한다.

 

지혜의 절반은 인내에 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참을성이 없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그 만큼 다른 사람을 기다려 주지 못한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 인생의 가장 중요한 법칙은 참을 줄 아는 것이고, 지혜의 절반은 인내에 있다"라고 했다.

 

어떤 일이든 완성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

당신의 성공을 모르다가 갑자기 알게 될때, 그 가치가 한층 더 커지는 법이다.

자신의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신비로운 태도를 유지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당신에게 끌리고, 기대를 갖게 된다.

자신을 불가피하게 드러내야 할때도 전부를 드러내지 말고, 상대에 따라 말과 행동을 아껴라.

신중한 태도만큼 안전한 것은 없다.

자신의 속내를 모조리 드러내는 것은 상대에게 비판의 기회를 주면서, 자신은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계획을 미리 공개하면, 그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과도한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마땅히 받아야 할 비난보다 더 큰 비난을 받게 된다.

 

지나친 기대감은 발목을 잡는 짐이 된다.

일을 시작할때 다른 사람들의 기대감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마라.

머리 속으로는 손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같아도 일을 진행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칠 때도 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는 쉬워도 그것을 실현하기는 어렵고,

상상에 욕망이 더해져 지나친 기대감을 갖게 되면 실망도 그 만큼 커지는 법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지나친 기대감이 아니라,

적당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멋진 시작이다.

또한 사람들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실현하면 그 기쁨과 영광은 두배가 된다.

 

당신의 재능을 가리는 사람 곁에는 절대로 가지 마라.

당신을 한층 빛나게 해 줄 사람만 사귀어라.

 

잘 모를때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라.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확실한 것만 선택하라.

그러면 독창적이라는 존경은 못받아도 신뢰할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들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고 편안한 일을 먼저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을 맨 나중으로 미룬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을 가정 먼저 하고 부수적인 일을 나머지 시간에 한다.

학문에서나 인생에서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의 순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전임자는 먼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더 관대한 평가를 받는다.

지나간 일은 언제나 좋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후임자가 되어야한다면 앞 사람을 능가할만큼 충분한 능력과 전략을 갖춘 뒤에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이 현명하다.

 

크게 성공하려면 오래 준비하라.

성과가 영원히 지속되길 원한다면 오랫동안 준비해야 한다.

 

성공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복수이다.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오히려 치켜세우는 것처럼 훌륭한 행위는 없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처럼 영웅적인 복수는 없다.

당신의 성공은 어느 것이나 당신의 불운을 빌던 사람에게는 심한 고문이 되고,

당신의 성공은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옥이 된다.

시기심이 강한 사람은 단 한번만 죽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시기하는 사람이 박수갈채를 받을 때마다 매번 새롭게 죽는다.

시기받는 사람의 명성이 지속되면, 그 시기하는 사람의 고통도 끝나지 않는다.

전자는 영광 속에 영원히 살고, 후자는 고통 속에 영원히 산다.

명성의 나팔이 전자에게는 불멸을, 후자에게는 근심걱정의 교수형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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