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만능주의와 시장지상주의 속에서 모든 인간이 탐욕을 갈구하고 있다.

도덕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영역조차 경제논리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현세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한다.

진정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고,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인가를?

이 책은 근본적인 가치를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이에게 이책을 권합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 1박에 82달러

.나 홀로 운전자가 카풀차로 이용하기 : 러시아워에는 8달러

.인도인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 : 6250달러

.미국으로 이민하는 권리 : 50만달러

.멸종 위기에 놓인 검은 코뿔소를 사냥할 권리 : 15만달러

.의사의 휴대전화 번호 : 연간 1500달러 이상

.대기에 탄소를 배출할 권리 : 1톤에 13유로

.자녀의 명문대 입학허가 : 가격 미정

 

누구나 이러한 것들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많다.

돈을 좀 벌어야겠다면 여기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이마나 신체 일부를 임대하여 상업용 광고를 게재하라 : 777달러

.제약회사의 약물 안전성 실험대상이 되라 : 7500달러

.민간 군사기업에 고용되어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가하라 : 매달 250달러에서 메일 1천달러까지

.의회 공청회를 참관하려는 로비스트를 대신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새 줄을 서고 좌석을 확보하라 : 시간당 15~20달러

.학력이 부진한 댈러스 소제 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이라면, 책을 읽어라 : 2달러

.비만이라면 4개월안에 체중 6킬로그램 감량하라 : 378달러

.아프거나 나이 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보험 증권을 사서, 피보험자가 살아 있는 동안 보험료를 불입하고 그들이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라 : 수 백만달러

 

사고 판다는 논리가 더 이상 물질적 재화에만 적용되지 않고 점차 현대인의 삶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과연 이렇게 살고 싶은지 자문해봐야 할 때다.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삶의 영역으로 시장과 시장 지향적 사고가 확산하는 현상은 현대에 발달된 가장 두드러진 모습 중 하나다.

영리를 추구하는 학교와 병원과 교도소가 늘어나고 전쟁을 민간 기업에 위탁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민간군사기업의 수가 미국 군대의 수를 앞질렀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인 사회에서 생활하기란 재산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욱 힘들다.

따라서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부유한지 가난한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 속한 영역이 무엇인지, 시장과 거리를 두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해당 재화, 즉 건강.교육.가정생활.자연 예술.시민의 의무와 같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다.

 

미국 대부분의 주는 회사가 직원 명의로 생명보험을 가입할 때 직원에게 알리거나 직원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

기업소유 생명보험 증서의 대다수는 직원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퇴하거나 해고당하고 나서도 효력이 남아 있다.

따라서 회사는 퇴사한지 몇 년이 지난 직원의 사망보험금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청소부 보험은 보험증권을 매입해서 수혜자가 되는 회사와 보험증서를 파는 보험회사로 이루어진 쌍방의 자발적거래다.

 

영국법은 보험과 도덕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둘은 거의 분간할 수 없었다. 18세기 들어 보험 '계약자'는 선거결과, 의회해산, 영국귀족의 사망 가능성,

나폴레옹의 사망이나 체포, 즉위 기념일을 몇 달 앞둔 여왕의 수명을 걸고 도박을 벌였다. 꽤 성공 가능성이 있어서 인기를 끌었던 투기도박의 대상으로는 군사작전과

포위공격의 결과, 거액의 보험에 들어 있는 로버트 월풀의 생명, 전투가 끝난 후 조지 2세의 생존 귀환여부 등이 있었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평등이 점차 심화되면서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현상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점차 분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고 일하고 쇼핑하며 논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닌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사회적 위치.태도.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행복한 삶이란 각자가 가진 탁월성을 이룰 때 가능해진다.

개인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는 그의 개인적 역량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각각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적절하고 올바른 판단, 그리고

그가 속하게 되는 공동체의 가치관 등과 밀접히 연결된다 이 모든 것은 덕을 행하는 인격형성의 문제로 나아간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모든 것이 유에 있으나,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이 무에 있다.

색은 유에 있으나,색을 탐하는 마음은 무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땅히 지키고 보살펴야 할 것은 유가 아니라 무이다.

 

공(空)은 아무것도 없는 허(虛)이다.

하지만 무는 유가 있음에 존재하는 것이니, 존재한다는 자체로 공이 아니다.

공을 채우면 무가 되나, 그렇다고 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

 

마음에 혼탁한 것과 맑은 것이 끼어 있는데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니 우선은 무작정 버린다.

억지로 잊으며 버리니 버리는지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나 스스로 버리고 있다 생각하는 것 이것을 기(棄)라 한다.

이 기의 단계를 넘어서면 버리지 못하느 것을 포기할줄 알게 되니, 이것이 사(捨)이니라.

계속해서 버리고 또 버리다 보면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어 혼탁한 것을 골라 버리게 된다. 이것이 탁(擢)이요.

자신이 크게 아끼는 것 또한 버릴 수 있게 되면 연(捐)에 이르게 되느니라.

허나 마침내는 혼탁한 것이나 맑은 것이나, 버리는 것과 버리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것조차 번뇌라는 걸 깨닫게 되니,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되느니라. 버리려는 마음조차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떨어버리는 수란다.

 

무공이든 법(法)이든 마찬가지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얼마만큼 아느냐에 따라 성취의 고하가 나뉘는 게지.

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 여실지견하여 상대를 가늠할 수도 있는 것이고 샛길로 빠지지도 않는 거란다.

 

居無不居有, 유에 있지 않고 무에 있다.

 

 

 

 

 

 

이 책은 노년기에 맞이하는 모든 상황을 정리한 책으로, 지금까지 읽어 온 책 중에서 체계적으로 가장 잘 정리가 된 책이다.

단지 지은이가 독일 출신이여서 세계1,2차 대전을 지나온 사회적 배경이 등장하는 점이 아쉽다.

나머지 전체 내용은 우리 나라와 독일 구분없이 노년기를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사항들을 다루고 있다.

 

특정한 해에 태어난 인구의 정확히 50퍼센트가 죽고 50퍼센트가 아직 살아 있게 되는 나이가 바로 평균 기대수명이다.

 

전체적으로 볼때 우리에게는 60세 이후 10~15년간 지금가지의 의무나 강제에서 벗어나 우리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큰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선배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멋진 기회다.

늙는 건 저절로 되지만 행복하게 나이드는 것은 배워야 하는 일임을 명심하라.

 

계단

         헤르만 헤세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이 모든 과정과 지혜와 미덕도

제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생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슬퍼하지 않고 용기 있게 새로운 문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이별과 새 출발을 준비해야 하리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네

 

우리는 힘차게 공간들을 하나씩 통과해야 하리

그 어느 곳에도 고향처럼 집착해서는 안 되리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화장시키려 하네

어느 한곳에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안주하면 긴장이 풀리기 쉬우니,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익숙함의 마비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젊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그치지 않으리라

자, 이제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해라!.

 

자식들을 다 키우고 부부만 남아둘이 살아가야 하는 시기가 늘어났다는 것은 부부가 자녀가 독립한 뒤 늙어가는 세월 동안 둘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살아가는 동안 더불어 삶, 친밀감, 믿음, 위로, 교류, 지지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인간관계를 필요로 한다.

늙어가는 마당에 외롭기까지 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인간관계의 수는 늙어가면서 빠르고 지속적으로 변한다.

우선 은퇴와 동시에 직업적인 관계들이 사라진다. 직업상 동료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은퇴하고, 후배들은 한창 일을 하느라 정신없다.

그래서 선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은 있는지 몰라도 할애할 시간은 없다. 때로 그들은 선배들이 얼른 떠나서 자리를 비워주기를 기다린다.

 

거의 독점적으로 직업상의 관계만을 유지하고 개인적, 사회적 만남을 등한시했던 남자들은 노년에 점점 더 외로워진다.

반면 아내들은 변함없이 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관계로 말미암아 바쁘다.

늙은 부모를 돌보아야 한다면 틈틈이 사회적인 만남을 가지며, 직업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들의 인간관계는 아직 다양하다.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는 대화를 어렵게 한다. 부모는 종종 그들이 자녀들보다 인생 경험이 많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모든 것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자녀들을 가르치려 든다. 과거를 들먹이며, 자녀들의 생각과 충고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 자신들의 견해가 옳다고 확신하다. "너도 한번 늙어봐, 생각이 달라질걸!" 그렇다면 자식들은 또 그렇게 호락호락 가르침을 받고자 할까?

 

모든 사람은 자신이 나이가 든 다음에야 비로소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 또는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에 대면하게 된다.

 

장례식에 갈 일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 나 자신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을 떠날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질문은 부부에게도, 그리고 그 부부의 자녀에게도 필요하다.

 

죽음은 또한 가족의 틀을 새롭게 짠다. 형제 중 맏이는 이제 상징적으로 모든 의무와 권리를 가진 가족의 우두머리가 된다.

모든 형제가 이런 새로운 기회를 의식하고 관계개선에 얼마나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이제 장례나 기념일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만나고 일부러 행사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 형제 관계에 중요해진다.

 

동년배와의 관계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줄어들다가 결국 질병이나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늙어 가면서 증가하는 신체적 제역과 장애로 인해 여행하고, 만나고, 뭔가를 같이할 기회가 자꾸 감소한다.

나이 든 사람들 중 다수는 다시 한 번 다른 장소로 이사한다. 그래서 여든이 넘은 노인들은 친구나 친척들이 자꾸 줄어간다고 탄식하는 경우가 많다.

 충주호 옥순대교

 

 

 

 

 

이 책은 죽어라 일하는데 점점 가난해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당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하며, 한 끼 밥값도 안되는 돈을 월급으로 받는다.

그렇다고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의 농부, 광부, 어부, 공장 노동자들과 생각보다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들과 우리를 이어주는 대기업 덕분이다.

식품, 의류, 전자, 제약, 자동차 등 각 분야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들은 이들에게서 사들인 원료로 상품을 만들어 우리에게 판매한다.

대기업이 우리와 그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기업과 가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오늘도 그들이 만든 물건을 구입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감압 정지는 심해 다이버들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하는 안전 수칙이다. 공기통에는 질소와 산소가 섞여 있다.

이 두가지 기체가 폐를 통해 혈액으로 흡수된다. 산소는 잠수를 하는 동안 소진되지만, 질소는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폐로 돌아가 이산화탄소와 함께 배출된다.

수심 30미터까지 내려갔을 때 우리가 마시는 공기는 어마어마하게 압축되어 있다. 문제는 질소가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폐로 가기까지 1~2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질소가 미처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물위로 올라가면 남아있는 질소가 팽창하면서 동맥에 작은 기포를 만든다.

이것이 혈관을 막아 감압병(잠수병)의 원인이 된다. 불구가 되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콜레부스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젊은이가 4000명이 넘었다.

그나마 콜레부스는 운이 좋은 편이다. 다이빙 때문에 매년 50명이 목숨을 잃는다.

 

2010년 봄, 폭스콘이 국제적인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 달 사이에 이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 16명이 투신자살했다.

몇 명은 근무 중에 공장 창문에서 뛰어 내렸고, 다른 이들은 자신의 침실에서 뛰어내렸다.

공장 밖에 서 있는 동안 나를 단번에 놀라게 한 것은 노동자들의 나이였다.

대개가 10대 후반으로, 서양 같으면 이제 대학에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할 나이였다.................

서양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낯설지 모르겠지만 폭스콘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애플, 노키아, 델, HP,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니텐도 등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의 제품이다.

 

애플의 수익률이 27퍼센트인 데 비해 폭스콘의 이익률은 단 4퍼센트에 그친다.

공급망에서 절약한 거액을 소매상인 서양 기업이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폭스콘의 공장 한 곳에서만 40만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공장의 규모도 엄청나서 한 공장에서 다른 공장으로 이동하는 데 자동차로 30분이 넘게 걸린다.

 

공산주의 꼬리표는 아직 달고 있지만 중국은 극심한 개인주의 사회다.

그러고 보면 노동 조건과 관련해 자국이 덜 공산주의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에 더해 노동자보다 경영주의 이익을 더 지지하는 정부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이니다.

사장들이 영향력있는 정치인들에게 수표 하나만 써 주면 모든 귀찮은 일이 손쉽게 해결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중국은 정부가 진정 원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이루고마는 나라다. 그래서 이런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노동자들은 대응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압박이 거세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장이 휴식을 허락해 주는 경우는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울 때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원래 여기 사람들은 담배를 안 피웠는데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부터 피우게 됐어요. 담배를 피워야 더 많이 쉴 수 있으니까요."

갓 심은 고무나무가 다 자라려면 7년이 걸리는데, 그때가 되어야 라텍스를 채취해 자동차 타이어나 운동화를 만들 수 있다.

당시 루이펑의 고무농장도 라텍스를 채취할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1만헥타르에 달하는 전체 농장이 생산력을 갖춰 전면 가동되려면 5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중국 정치인들은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중국관료들은 중국의 발전 단계를 미루어 볼 때 아직은 이런 윤리적 측면을 우선시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윤리 문제는 풍족한 서양 국가나 감당할 수 있는 사치이다. 서양인들은 제국주의로 약탈한 자원을 이미 누릴 대로 누렸다.그런데 중국은 왜 안된다는 것인가?'

그들은 제국 건설에 따른 인류의 희생을 반복하려 하고 있다.

중국만 탓할 일은 아니다. 선진국 주요 기업들도 공모자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생산하는 중국의 작업환경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코너, 나 무서워요."

"나도 무서워요"

난 다시 웃었다. 물론 나도 무섭다. 내가 소리치는 것이 내 귀에도 들렸다.

"이 망할 책 쓰려다가 내가 죽겠어요."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그 당시 계속 켜져 있던 녹음기로 이 소리를 듣게 되었다.

공포에 질린 내 목소리를 들으니, 그 컴컴하고 비좁고 위험한 터널을 희미한 횃불 하나에 의지한 채 더 깊숙이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곳까지 들어간 이유였다.

그것은 내앞에서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던 보니페이스 같은 사람이 습관처럼 느껴야 했던 것이지만, 생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건 채 땅속 깊숙이,

이 축축하고 더러운 사형장으로 매일같이 나아가면서 아마 더는 느끼지 않게 되었을 감정이었다.

 

갑자기 또 다른 공포가 몰려왔다. 바위가 벽에서 떨어져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몹시 불편해졌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곡괭이로 내려칠  때의 요란한 소리 때문에 어지럽고 거북했다. 여기에서 일하려면 이런 공포에 둔감해져야 한다.

이곳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죽음의 공포를 한쪽 구석에 제쳐 둔 채 이곳에서 곡괭이질을 한다.

그들은 이 일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삶은 가혹하다. 그들이 꾸려갈 수 있는 유일한 생계는 정글의 창자 깊숙한 곳에 존재했다.

폭풍이 경고없이 불어닥쳐 순식간에 물을 쏟아내고 산사태를 일으켜 이들을 산 채로 묻어 버릴 수 있는 이곳에.

나는 보니페이스가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바위를 깍아 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서둘러 나왔다.

 

"내다 팔 작물을 가지고 시장으로 가다 보면 탈레반, 경찰, 도적들이 우리를 세웁니다. 통행료를 내라는 거죠.

그러면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양귀비를 기르는 게 더 낫죠. 양귀비는 살 사람이 직접 찾아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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