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것은 모든 것이 유에 있으나,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이 무에 있다.

색은 유에 있으나,색을 탐하는 마음은 무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땅히 지키고 보살펴야 할 것은 유가 아니라 무이다.

 

공(空)은 아무것도 없는 허(虛)이다.

하지만 무는 유가 있음에 존재하는 것이니, 존재한다는 자체로 공이 아니다.

공을 채우면 무가 되나, 그렇다고 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

 

마음에 혼탁한 것과 맑은 것이 끼어 있는데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니 우선은 무작정 버린다.

억지로 잊으며 버리니 버리는지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나 스스로 버리고 있다 생각하는 것 이것을 기(棄)라 한다.

이 기의 단계를 넘어서면 버리지 못하느 것을 포기할줄 알게 되니, 이것이 사(捨)이니라.

계속해서 버리고 또 버리다 보면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어 혼탁한 것을 골라 버리게 된다. 이것이 탁(擢)이요.

자신이 크게 아끼는 것 또한 버릴 수 있게 되면 연(捐)에 이르게 되느니라.

허나 마침내는 혼탁한 것이나 맑은 것이나, 버리는 것과 버리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것조차 번뇌라는 걸 깨닫게 되니,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되느니라. 버리려는 마음조차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떨어버리는 수란다.

 

무공이든 법(法)이든 마찬가지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얼마만큼 아느냐에 따라 성취의 고하가 나뉘는 게지.

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 여실지견하여 상대를 가늠할 수도 있는 것이고 샛길로 빠지지도 않는 거란다.

 

居無不居有, 유에 있지 않고 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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