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기는 이 책으로 대신한다 -마오쩌뚱-
이책은 에드거 스노가 1936년 6월 부터 1936년 10월까지 4개월에 걸친 중국내의 여행을 통해 기록한 책이다.
우리에게 낯설은 1930년대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성장하여 중국 전체의 기반으로 성장해 나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성장 과정의 기본이 된 군대 홍군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다.
중국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승리는 곧 삶이요, 패배는 곧 죽음이다 -펑더화이-
한 남자가, 그것도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열심히 일만 했지 남에게 큰 해를 끼친 적이라고는 없는 정직하고 훌륭한 남자가
한 달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의 모습을 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모습이였다.
생명을 잃어가는 그의 살은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처지고, 그의 몸에 있는 뼈라는 뼈는 남김없이 드러났다.
나는 싸라치의 거리에서 막 목숨이 끊어진 시체를 보았으며, 촌락의 얕은 웅덩이에 기근과 질병의 희생자들이 죽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마을들 대부분에서
아직도 부자와 쌀 매점상인, 그리고 고리대금업자와 지주들이 무장병력의 보호를 받으며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도시에는 관리들이 기생들과 어우러져 노래하고 희롱하는 가운데 식량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한 지도 벌써 여러 날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상하이'의 공장들에서 나이 어린 소년.소녀 노예 노동자들이 서서 또는 앉아서 하루 12시간에서 13시간을 일하다가 기진맥진해
그들의 잠자리인 기계 바로 밑의 더러운 솜이불에 쓰러져 잠이 드는 장면을 보았고, 지금도 그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4년에서 5년 동안의 실질적인 시한부 노예로 팔려와, 그 기간에는 특별한 허락이 없으면
낮이든 밤이든 높은 담에 감시가 엄중한 공장 구내를 벅어나지 못했던 제사공장의 어린 소녀들과 면방직공장의 창백한 젊은 여성들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1935년 한 해 동안에 상하이의 거리와 강과 운하에서
적빈자, 아사자, 또는 양육할 수 없어 강에 버린 그들의 어린 아기의 시체를 2만 9천구 이상이나 치워야했다는 사실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엄격한 군사적 의미에서 볼 때 모든 홍군 전사들을 '비정규군'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홍군 자신은 전방부대, 독립부대, 우격대, 농민보위대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나는 곧 홍군 병사들이 대부분 그들의 가정과 그들의 땅과 그들의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다.
양상쿤의 통계를 보면 일반 병사들의 평균 연령은 19살이었다.
홍군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7~8년, 심지어는 10년 이상의 전투 경력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10대 중반인 소년병들이 대단히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평균 연령이 이처럼 낮아졌다.
게다가 수많은 전투를 치른 '고참 볼셰비키들'도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소년 전위대로서 홍군에 가담했거나, 15~16살에 입대한 사람들이었다..... 홍군 병사의 60~70퍼센트가 읽고 쓸 줄 알았다.
한 가지 사실이 나에게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도대체 홍군은 먹고 입는 것과 장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이 전적으로 약탈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었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어떤 한 지역을 점령하자마자 즉시 그들 자신의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건설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이 적의 봉쇄에도 그들 스스로 근거를 지탱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돈으로도 중국의 프롤레타리아 군대가 유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홍군 유격전의 원칙들
1.유격대는 어떤 경우에도 패하는 전투를 하지 말아야 한다.
2.기습이야말로 잘 지도 받은 유격대의 주요한 공격전술이다.
3.교전을 도발하거나 받아들이기 전에 공격과 후퇴, 특히 후퇴의 계획을 신중하고 자세하게 세워야 한다.
4.유격전의 전개에서 최대의 관심은, 지주 및 호신들의 최초이자 최후이며 가장 완강한 저항선, 즉 민단에 쏟아야 한다.
5.적군 부대와의 일반적인 교전이라면 유격대가 수에서 적을 능가해야 한다.
6.실전에 임하는 유격대의 전열은 최대의 탄력성을 유지해야 한다.
7.교란, 유인, 견제, 복병, 양공, 도발 등 여러가지 전술을 체득해야 한다.
8.유격대는 가장 약하면서도 치명적인 지점을 집중 공격할 분이지 절대로 적의 주력부대와 대결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9.적이 우격대의 주력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10.유격대는 우월한 기동성 외에도, 현지의 대중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우월한 정보수집 능력 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 해가 다 가기 전 한 전투에서 우리는 백군으로부터 이들 지역의 일부를 탈환했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비옥했던 땅들은 반은 사막으로 변해 있었다.
다만 몇몇 노인들과 여자들만 남아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를 전율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런 범죄 행위가 중국인에 의해 중국인에게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시안에서 일오난 쿠데타는, 그 동기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절한 타이밍과 눈부신 실행 과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반란 계획은 이미 손을 쓸수 없을 지경에 이를 때까지 장제스 진영에 한 마디도 누설되지 않았다.
12월12일 아침 6시까지는 모든 일이 끝났다.............
총통을 체포하는 데에는 피를 조금 봐야만 했다. 장제스는 .....
이들은 이내 총통의 몸종을 찾아냈고, 얼마 안되어 총통을 발견했다.
그는 잠옷 위에 헐렁한 긴 겉옷만을 걸치고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에다가, 황급하게 산 위로 도주하다 양손에 상처를 입은채,
혹한에 덜덜 떨면서 틀니조차 빠뜨린 모습으로 큰 바위 옆 옴푹 들어간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반란군 측이 제시한 8개 항목의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다.
1.난징 정부를 개편하고 모든 정파를 참여시켜 구국의 공동책임을 분담케 할 것.
2.내전을 즉각 전며 중지하고, '무력항일 정책을 채택'할 것.
3.상하이의 애국운동 지도자들(7명)을 석방할 것.
4.모든 정치범을 사면할 것.
5.인민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것.
6.애국적 단체를 조직할 인민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것.
7.쑨원 박사의 유지를 이행할 것.
8.전국구국회의를 즉각 소집할 것.
대대적으로 정복해 승리했는가 하면, 엄청난 손실과 패퇴도 기록되었다.
그러나 양자 간의 결투 모습은 중국 연극 무대에서 벌이는 두 무사의 싸움과 흡사했다.
이들은 소름 끼치는 기합소리를 내지르면서 칼로 맹렬하게 허공을 베지만 정작 서로의 몸을 건드리는 법은 없었다.
마침내 패자가 잠시 동안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한 후 다시 몸을 일으켜, 살아있는 시체로서 당당하게 제 발로 무대에서 물러난다.
난징에서 벌어진 흥미진진한 가짜 놀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두가 '승리'를 거두고 오로지 역사만이 기만당하고 희생되었다.
레닌은 그러한 시기에 " 필요한 것은 공산주의 이념에 최대한 철저하게 충실하면서
동시에 타협이나 '방침 전환', 협정 체결, 우회, 후퇴, 등 필요한 온갖 형태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라고 쓴 바 있었다.
역사상 어떠한 독재정당도 감내하기 어려운 가장 강력한 압력을 받지 않고는 그들이 장악한 권력을 양도하지 않았는데,
이런 점에서는 국민당도 예외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이제 기대할 수 있게 된 '민주주의적' 조치의 성취도 10년간에 걸친 무력항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저항이 없었다면, 어떠한 '민주주의'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이제 중국에서 목격하게 될 국가권력의 중앙집중화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정치가 성장한다는 것은 근대국가 자체의 성숙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된 여러 가지 모순,
즉 기본적인 계급대립을 조정하기 위한 권한과 기구의 필요성이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운동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다른 누구보다 앞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1928년, 작은 무리의 젊은이들이 멀리 떨어진 외로운 징강 산에 적기를 꼽고 운동을 시작한 이래, 이 운동은 급기야 십자군 원정으로 발전해 갔다.
그리하여 드디어 1944년 여름에 이르러 이 십자군 원정대는 전국을 뒤엎는 대대적인 운동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따라서 이제는 중국의 운명을 중재하는 어느 누구도 거대한 인민대중을 대변하는 이들의 주장을 더 이상 이면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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