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책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원인론을 맹신하면서 사는 한,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사람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생활 방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내가 아는 젊은 친구 중에 소설가를 꿈꾸면서도 도무지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이가 있네.

그의 말에 따르면, 일하느라 바빠서 소설 쓸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니 원고를 완성하지 못해서 문학상에 응모할 여력도 없다는 거야.

과연 그럴까? 사실은 응모하지 않음으로써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거라네.

남의 평가를 받고 싶지도 않고, 더욱이 졸작을 써서 냈다가 낙선하게 되는 현실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거지.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다. 환경만 허락되다면 쓸 수 있다.

나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살고 싶은 걸세.

아마 그는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면 "이제는 젊지 않으니까" 혹은 "가정이 있어서"라는 다른 핑계를 대기 시작하겠지.

지금의 생활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그러거야. 시도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자네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

아들러는 말했네. "고민을 없애려면 우주 공간에서 그저 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지.

 

우리는 고독을 느끼는데도 타인을 필요로 한다네.

즉 인간은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비로소 '개인'이 되는 걸세....

비록 무인도에 살지라도 머나먼 바다 저편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지.

혼자 있는 밤일지라도 누군가가 새근새근 자는 소리에 기를 기울인다네.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는 한 고독이 닥치게 되어있어....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단언했으니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하네.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타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우월성 추구'란 자신의 발을 한 발 앞으로 내딛으려는 의지를 말하는 거지, 남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경쟁하는 의사가 아닐세.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라네.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하게.

그리고 과제를 분리하게. 어디가지가 내 과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과제인가. 냉정하게 선을 긋는 걸세.

그리고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이고도 대인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아들러 심리학만의 획기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지.

 

"곤경에 직면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곤경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타인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내게 어떤 역할을 바라는지 판단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이 되고 싶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런 구체적인 그림이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누구나 명확한 꿈이나 목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자네가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자네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일세.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이라는 순서로 설명했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 즉 '자기 수용'을 한다. -> 그러면 배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자신뢰'를 할 수 있다.

-> 타인을 무조건 신뢰하고 그 사람들을 내 친구라고 여기게 되면 '타자 공헌'을 할 수 있다. -> 타인에게 공헌함으로써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실감하게 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자기수용'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수용을 하면 ....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불행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거라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밖에 없어.

우리의 삶이란 찰나 안에서만 존재한다네.

이걸 알지 못하는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선'의 인생을 강요하지.

 

그래. 춤을 출 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춤을 추면서 어디론가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지.

그래도 춤춘 결과 어딘가에 도달은 하겠지. 춤추는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아.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란 없다"라고 답하고는,

이어서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네.

인생에 있어 의미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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