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으로써 슬펐던 과정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관객의 경우다.

슬픔을 겪은 주인공은 종말의 행복보다도 불행했던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아쉬워하게 마련이다.

그 차이는 불행을 체험한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위치의 차이이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체제나 정부는 반드시 비판에 견딜 수 없는 체제와 정부이다.

 

권력자란 자기의 부정과 과오를 은폐할 수만 있다면 그 목적을 위해서는 언제나 국민의 자유를 부정하려 한다.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집권세력이 내세우는 국가이성은 처음부터 이성적 토대를 그 분야에서 배제해버리려는 원리이다.

바로 이처럼 간단한 이유에서 그것은 자유와 어울릴 수 없다.

국가이성은 진리도 정의도 전제하지 않으며 오직 항복만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자체가 '적극적 개념'이며 창조적 상상력이다.

반공주의란 부정의 개념이며 그것 자체로서 소모적이며 파괴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인식은 관념을, 관념은 개념을, 그리고 그 개념을 담은 용어가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상대방에게 관념표상의 작용을 일으켜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사상을 표현.전달하려는 용어가 그 사상의 내용이나 성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면 전달된 뜻이 더욱 왜곡.변형되거나 혼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그러진 유리를 통해 보는 사상은 일그러질 것이고 그것으로 형성된 개념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스트롱맨 폴리시'란 "외국의 명령과 지배를 수락할 정도로 충분히 약하되 국내의 민중에 대해서는 명령과 지배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자"를 골라

그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 약소국에 대한 지배를 지속하는 방법이다.

 

노령은 관념과 실천화의 침체와 퇴화를 뜻한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 모택동 자신이며 젊은 대중의 지도력 참여의 문을 구조.제도적으로 꾸준히 개방한 것이 그 자신이다.

 

너무도 위대한 혁명지도자의 뒤에는 집단지도체제라는 과도기가 불가피해진다.

그것은 선배지도자의 권위가 너무도 압도적이였다는 본인의 불본의 과실과, 자기에 비길 후계자를 적극 키우지 않은 적극적 책임의 결과이다.

 

오히려 전능하신 신이 창조한 것이라면 어째서 이토록 불완전하고 제약많고 약점투성이인가를 원망하게 되지만,

차라리 아메바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용케도 이만큼이나 진화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인간은 무한히 진화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정치화한 현대의 교리는 무엇이든 여태까지 지켜온 사고나 가치나 체제나 질서의 변화는 그 사회의 기틀을 위태롭게 한다는 보수적 정치교리로 경화되어 있다.

그것은 곧 국가의 안녕과 안정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국가이익' 신학으로 정치화한다.

 

그러기에 자기가 믿는 신앙과 대립하거나 그 신앙에 질문을 던지는 체제나 제도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허위.사기.음모.부정.불의는 용서받는다는 식이다.

실제로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이 비밀문서로서 밝혀진 베트남 전쟁이다.

 

베트남사태는 크게 나누어 4단계의 정세발전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1,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부터 제2차대전 종전까지 근 100년에 걸친 베트남인민의 식민지민족 항불해방투쟁

2.전 베트남민주공화구 수립(1955/10월)부터 전후 베트남 민족 해방 항불전쟁의 승리를 고한 인도지나휴전협정 성립(1954/7월)까지의 투쟁

3.남베트남공화국 수립(1955/10월)과 그것으로 베트남의 통일을 위한 제네바 협정의 총선거 실시 협약이 사실상 일방적으로 폐지되고

  베트남의 반영구적 분단이 고정된 상태

4.그 이후 남베트남에 내란이 일어나고 미국과 북베트남이 개입함으로써 미국과의 전쟁으로 변모, 확대된 현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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