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건방질 자격이 있소. 당신을 꺽었으니까.
누구의 검도 아닌 내 검으로 안 그렇소?"
"그 광오한 자신감, 언젠가 억센 올가미가 되어 네 발목을 잡아뜰어 내릴거다.
강호에서 건방질 자격같은 건 없다는 뜻이지.
한낮 더러운 음모 앞에서, 혹은 또 다른 강자 앞에서.
건방진 칼은 반드시 부러질 거다. 언제 건방졌나는 듯이".
"경험담이오?"
"난 수없이 부러진 칼 중 하나일 뿐이야. 강호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수많은 강자가 등장했고 다시 그것을 꺽는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고, 강호는 늘 그렇게 바쁘게 돌아간다.
결코 쉬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건방질 새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어째 우리 사부 말씀과는 궤가 좀 다르군."
"사부가 그러더이다. 건방질 수 있을 때 한껏 건방져지라고 말이오.
이 더러운 강호, 언제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데 그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겠냐고 하더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
"나 역시 사부쪽 의견이 훨씬 더 마음에 드오.
어차피 한 세월 잠깐 맛보는 자신감이라면, 언제 밀려날까 전전 긍긍하기보다야 즐기는 편이 낫지 않겠소?"
"거기에 한 마디가 더 붙었소."
"언젠가 밀려나도 결코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말이오.
그건 더러운 강호의 잘못일 뿐, 일개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강호의 ..... 잘못?"
"뭐, 원래 그런 양반이었소.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강호 탓.
매일같이 더러운 강호가 해 준 게 뭐 있냐며 불평만 늘어놓던 양반이었으니까. 근데 말이오."
"난 그것도 마음에 들더이다. 그렇잖소? 한낮 인간이 강호를 이길 수 는 없는 법이니까.
일인자든, 최하층이든, 다들 파도에 떠밀려 사는 게 아니겠소?
안 그래도 못 이기는 강호, 풍파에 떠밀렸다고 스스로를 탓하는 건 어쩐지 억울하단 말이외다.
차라리 강호를 탓하고 말지."
"천형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대충 들어 알고 있소. 얄팍한 위로 따위는 하지 않겠소.
천 형이 느꼈을 참혹한 심정. 난 상상조차 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천 형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 모든 건 강호의 잘못이라는 거요."
"난 한낮 강호 물결에 떠밀리는 건 싫소.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온전한 나로 남고 싶소. 그게 강호에 발들이며 맺은 나의 결심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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