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미래 세계.

기술의 흐름은 상상이 현실로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비주'는 프랑스식 인사법으로 서로 빰을 맞닿듯 가까이 붙이고 입술로만 쭉 소리를 내는데,

이때 양쪽 빰을 번갈아서 한다.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마음을 다테마에라고 하고 자신의 속내를 혼네라고 하는데,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심지어 연인, 부부, 가족 간에도 다테마에가 존재한다.

 

관계에서의 느슨한 연대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시대다.

지금까지는 대면과 접촉이 중심이자 주류이고 비대면, 비첩촉이 보조와 보완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초연결 사회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센서 기술 등의 진화로 사람과 사물 등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를 만한다. 사물 인터넷, 인공 지능, 빅데이터, 증강 현실, 자율 주행 자동차, 스마트 시티 등 미래 유망하다는 비즈니스도 모두 초연결 사회의 산물이다. 전 세계의 절반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고, 한국에선 스마트폰 가입자 수가 5000만 명을 넘었다...

우린 연결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초연결 시대에 단절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과의 연결에서 오는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 감정 소모, 피로에 대한 거부다. 하루 종일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다... 불편한 소통대신 편한 단절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게 서비스가 아니라 아예 말 걸지 않는 게 서비스가 된 건 관계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다.

 

조지아 공대는 Udacity 플랫폼을 통해 2013년부터 3학기 기준 4만 5000달러의 정규 컴퓨터과학 석사 과정을 무크를 통해 7000달러에 제공했다. 조지아공대 학생과 동일한 내용으로 공부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고, 학위도 동일하다.

 

새벽배송의 가장 큰 장점은 장 보러 가는 번거로움을 없앤 편의성이 아니라, 사람과 접촉할 필요가 없다는 비대면이다.

자고 일어나 문 앞에 놓여진 물건을 갖고 들어오면 그만이다. 새벽배송 시장의 성장은 대형마트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혼합현실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융합해서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시키는 기술이다. 가령 디자이너나 엔지니어가 향후 개발되는 차량의 실제 모델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차량을 실제 주행하는 것처럼 경험하며 평가할 수 있다.

 

가장 대중화, 보편화된 것이 가상현실이다. 이는 가짜만으로 이뤄진 공간이다.

그 다음이 진짜 공간과 가자 공간이 결합해 진짜 공간을 확장시키는 증강현실(AR)이고 그 다음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융합한 혼합현실(MR, Mixed or Merged Reality)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혼합 현실에 네트워크를 결합해 원격의 서로 다른 사용자들이 현실공간감을 함께 느끼며 친밀하게 협업하는 공존현실(CR, Coexistent Reality)이다. 공존현실이 완전히 구현되는 상화이 되면, 우리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지워진 확장된 공간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고, 어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IT는 이제 더이상 특정한 산업 분야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자동차도 IT의 영역이 되며 모빌리티, 카셰어링, 자율주행 자동차 등으로 진화했고, 건설도 IT의 영역이 되며 스마트 시티, 홈네트워크 등으로 진화했고, 금융도 IT이 영역이 되면서 핀테크, 블록체인, 캐시리스, 로보 어드바이저 등으로 진화했고 유통도 IT의 영역이 되면서 O2O 옴니채널, 모바일 커머스, 라이브 커머스, VR 쇼핑 등으로 진화했다.

 

5도 촌도 확산된다. 5도 2촌은 일주일이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 산다는 의미다. 주 5일 근무가 보편화된 시대이다 보니 5도 2촌은 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이선 삶의 태도에 대한 확실한 변화다. 도시에서의 삶은 돈 벌고 직업활동을 영위하기엔 더 효과적이다. 편리함도 도시가 우위다. 도시의 삶을 줄이고 시골에서이 삶을 늘린다는 것은 그간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심어준 돈 잘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삶을 위해선 손해일 수 있다.

 

사람가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가 가지는 장점은 일부 취하되, 그런 연결이 주는 부담스러움이나 복잡함은 덜어내겠다는 태도가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냈다.

 

내 세탁물을 가져가는 사람이 누군지, 누가 갖다줬는지 마주칠 일도 없다. 담당자가 누구라고 메시지는 오지만, 얼굴을 본 일이 없으니 마치 가상의 존재같은 느낌도 든다.... 타인과의 관계 스트레스가 언컨택트의 욕망을 키운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스쳐 지나가는 존재다. 가족은 점점 줄어들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고, 인맥도 점점 달라진다.... 서비스를 는 데 있어서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건 불편하다. 감사의 감정과 달리 미안함은 오히려 서비스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언컨택트 기술과 서비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을 불편과 소외를 뜻하는 언컨텍트 디바이드는 엄밀히 말하면 디지텅 디바이드의 한 요소다. 왜냐하면 언컨택트로 전환된 서비스들은 모두 IT 기술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진화가 언컨택트를 전방위로 가능하게 해준 것이기 대문에, 디지털 디바이드를 겪는 사람이 언컨택트 디바이드도 겼을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접촉과 대면이 줄어드는 것이지, 온라인과의 연결, 교류, 데이터의 연결은 훨씬 많아지는 것이 언컨택트 사회다.

 

CES 2020에서 LG전자는 캐나다 인공지능 솔루션 기업 엘레멘트 AI와 함께 개발한 인공지능 발전 단계를 소개했다.

1단계는 효율화로, 인공지능이 지정된 명령이나 조건에 따라 제품을 동작시킨다. 2단계는 개인화로,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해 패턴을 찾고 사용자를 구분한다. 3단계는 추론으로, 려러 접점의 데이터를 분석해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4단계는 탐구로, 인공지능 스스로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 더 나은 솔루션을 제안한다.

 

부자는 격리되어 있는 중에도 돈이 돈을 벌어줄 수도 있고, 이미 있는 돈으로도 충분하다. 부자는 자신의 건강 하나만 신경 쓰고 격리를 받아 들이면 되지만, 서민에겐 가혹한 현실의 문제가 생긴다. 전염병 앞에서 부의 양극화는 더 크게 느껴진다.... 디스토피아의 대표적 소설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32, 조지오웰의 [1984], 1948이고, 수많은 SF영화에서 볼 수 있는 디스토피아 배경도 이 두 소설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 볼 수 있다.

언어 혼란이 가중되는 사회에서 중심을 잡기위해 필요한 책이다.

 

협잡: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 느낌 또는 태도에 대해

       특히 허세를 부리는 말 또는 행동을 통해 기만적으로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것으로 거짓말에는 미치지 못함

 

불 세션에서 각 토론자는 자신이 표현하거나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진심이라거나 명백히 사실이라고 믿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일반적 양해에 의존하고 있다. 불 세션에서 대화의 목적은 신념을 가지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들이 가진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통상적인 가정들은 유예된다. 불 세션에서 행해지는 발언들은 이러한 연결이 유지되고 있는 체하는 가식이 없다는 점에서 개소리와는 다르다. 불 세션의 발언들은 진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제약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느 정도 개소리와 비슷하다.... 실제로 불 세션이라는 용어는 아마도 개소리 타임을 건전한 말투로 바꾼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허세 부리기는 좀 더 특수하게는 거짓이 아니라 속임수의 문제다. 이것은 허세 부리기가 개소리에 가깝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개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짜라는 데 있다.

 

그가 반드시 우리를 기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의 기획 의도이다. 개소리쟁이에게 유일하게 없어서는 안될 독특한 특징은,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개소리쟁이와 거짓말쟁이는 자기들이 마치 진리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거짓되게 연출한다.

 

누군가 자신이 진실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소리를 지어내는 데는 그러한 신념이 필요없다. 따라서 거짓을 하는 사람은 진리에 대해 반응한다. 그리고 그는 그만큼 진리를 존중하는 셈이다. 정직한 사람이 말할 때, 그는 오직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바를 말한다. 거짓말쟁이는 이에 상응하게 자신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렇지만 개소리쟁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효다. 그는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정직한 사람의 눈과 거짓말쟁이의 눈은 사실을 향해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개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사실들이 그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를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마구 주장하는 개소리 행위에 과도하게 탐닉하다 보면, 사태의 진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상적인 습관은 악화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그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어떤 진술이 참이고 어떤 진술이 거짓인지를 규명할 가능서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두 가지 대안만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진실을 말하려는 노력과 기만하려는 노력 모두를 그만두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어떠한 주장도 내세우기를 삼간다는 뜻이다. 두 번째 대안은 상황이 어떠한지를 기술하려는 주장, 그러나 개소리밖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주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나 의무들이 화자가 가진 그 주제와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넘어설 때마다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진다. 이 불일치는 특히 공인의 삶에서 일반적이다. 공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어느 정도 무지한 사안들에 대해 말하도록 강요받는다.

 

회의주의자는 우리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를 인식할 가능성을 부인한다.

 

우리의 본성은 사실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가 없다. 다른 사물들에 비해 악명 높을 정도로 덜 안정적이고 덜 본래적이다. 그리고 사실이 이런 한, 진정성 그 자체가 개소리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말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진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보여주는 데 반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든 거짓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 한마디로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다.

 

무엇이 진리인 줄 모르는 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완벽하게 꾸며내지 못한 거짓말은 금세 들통나기 때문이다. 반면 개소리는 그 말의 뜻에서부터 '엉터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굳이 공들여 만들 필요가 없다. 단지 약간의 뻔뻔함만 있으면 된다.

 

개소리는 실패하더라도 관용된다.

개소리에 대해서 정색하고 달려들면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역공을 받는다....

어차피 개소리쟁이와 그 지지자들은 참과 거짓이라는 진리값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논리적 공간에서 언어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보수 정권도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과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같은 일종의 권력형 개소리들을 생산한 바 있다.

 

좋은 글을 읽고 깨달음도 챙기는 좋은 책이다.

 

이제 내 인생의 답을 스스로가 알아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나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활동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절하고, 풍요롭게 표현하는 것,

더 나은 일상과 인생을 열어주는 작지만 위대한 비밀이다.

 

만약 당신이 우울에 처했다면 다음의 두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는 물리적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체력과 정신력은 같은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만약 나의 멘탈이 약해져 있다면 그땐 다른 무엇보다 피지컬을 회복해야 할 때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가볍게 걸으며 몸의 근육을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우울에서 벗어났을 때 나쁜 행동을 실행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

 

불편함을 없애려면 나쁜 것을 제거해야 한다.

상실감을 없애려면 좋아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

 

함께 추억할 과거가 있는 관계는 안전하고 단단하다.

아무리 큰 분노의 상황이 몰려와도 좋은 기억이 있다면 넘어설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불행하다고 해도, 행복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은 이겨낼 힘을 갖는다.

우리 주변의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우리들은 모일 때마다 그렇게 시답지 않은 옛날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행복한 지금은 훗날 괜찮은 과거가 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행복한가?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거나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 착각하고 있다면 한번 멈춰 서 보자.

 

불안은 언제 확장되는가? 바로 불확실하고 모호할 때다.

불확실할수록 불안은 커진다. 반대로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면 불안은 감소한다...

불안은 인간이 나태해지려는 찰나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성취지향적인 사람들은 변화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는 곧 또 다른 성취할 거리이기 때문에 불안해 하지 않는다.

 

리더가 절대 표현해서는 안되는 부정적 감정은 바로 '불안'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리더를 함께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선장이 모는 배는 위험하다.

리더의 작은 불안은 모두에게 급속도로 전염되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말은 언제나 글보다 빠르다. 게다가 마음이 급할수록 말은 더 빨라진다.

불안이란 녀석은 스피드에 편승한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긴장하고 초조해 하는 사람을 달랠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하지 않는가.

무슨 일이든 천천히 하면 불안이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글은 말에 비해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작업이다. 행동의 스피드가 줄어들면 생각의 속도도 조절이 된다.

 

그런데 총량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인간의 감정이다.

기쁨, 슬픔, 분노, 우울 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총량이란 게 없다.

써도 써도 마르지 않고 처음 그 양이 유지가 된다.

아니 유지가 아니라 전이 되거나 확산될 정도다.

 

사실 걷다보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감정은 정돈되고 논리는 연결되며 생각은 차분해 진다....

마음이 헝클어지고 감정이 엉망일 때,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스트레스와 분노가 가슴을 짓눌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때,

그냥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어보자. 생각보다 많은 것이 좋아질 것이다.

 

정신적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무리하게 사용해서 소진해 버리면 피로감과 고단함이 높아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크게 일어난다.

그뿐인가, 감정을 조절하거나 좋은 판단을 내리거나 욕구를 절제하는 능력 또한 순간적으로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일컬어 '자아고갈'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아고갈의 위험은 단순히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신 정말 바닥을 보여 주는구나" 부부 싸움 중에 자주 나오는 대사다.

자아고갈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의 바닥이 드러난다.

본인이 갖고 있던 나쁜 습관이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며 원치 않는 상황에서 본서이 들켜버리는 게 문제다...

사람은 힘들고 지쳐있을 때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본인의 행동을 중간에 끊을 수 없다.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면 시야가 좁아진다.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10점짜리 행복을 한 달에 한 번 느끼는 사람보다

3점이나 4점짜리 행복을 일주일마다 느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자질구레한 행복의 경험을 여러 번 축적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취감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뇌 속에는 성치감이라는 감정이 크기가 아닌 빈도로 기록된다.

3점짜리, 4점짜리, 3점짜리 성취감을 자주 느끼는 게

어쩌다 한 번 10점짜리 성취감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그 사람을 만족시키며 성장에 도움을 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우리 속에서 발견할 수 없다.

오롯이 자아만이 존재하는 상황,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도 혼자 당당하게 좋아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Like가 아닐까.

 

무한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인류는 적정한 자원을 두고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 감탄을 내가 하는 감탄으로 바꿔야 한다'

남이 하는 감탄을 내가하는 감탄으로 돌리려면 일단 나에게 충실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율적으로 일해야 한다.

'자율성'이라는 요건이 강제적 필수 사항이 된 것이다. 조금 더 심하게 바꿔 말해 보겠다.

이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없는 조직은 망하는 시대가 왔다.

 

아무리 집단 속에서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적정한 시간 동안 혼자 있어야 한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을 진정시키고 다독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역을 거친 후에 다시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다.

 

사람을 도구로만 보고, 이용하려는 인간들이 있다.

문제는 이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이들은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지배력이나 정복욕이 강하다.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성공을 위해 주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필요한 순간에 친근하게 다가와 두터운 친분을 쌓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린다.

그냥 버리지 않고 다시는 재기 어려운 정도로 짓밟아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머리가 좋고 영리하며, 연극에 능하다....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른다기보다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상대를 기만하여 반사회적인 행동을 거듭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걸렸을 때는 동정심을 이용하여 그 상황을 빠져나가고자 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유리한 사회,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조금은 교활한 것이 곧 능력인 사회,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고 필요하다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회가 바로 소시오패스형 사회다.

 

성격이란 개인을 특징짓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해동양식을 말한다.

 

자기의 능력이나 가치를 빋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상대의 거짓말에 쉽게 넘어갔다고 한다.

사실 약자에게 무례한 사람만큼 사기꾼들의 좋은 먹이감도 없다.

 

진실은 언제나 맥락 속에 있다.

맥락을 놓치는 사람은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맥락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제시된 정보 뒤에 숨어 있는 것이 큰 맥락이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추측해야 하고 상대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맥락을 이해하고 싶다면 겸손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하고 친절하야 하며 경청할 필요가 있다.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주변에는 진실이 모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를 기억하고 기회가 되면 돕고 싶어한다.

사람에 대한 진실과 정확한 정보도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것이 겸손의 생태계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그것이 나의 생존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기가막히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행동의 결과를 보고 좋으면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 모방기제다.

뇌 속에는 모방기제를 담당하는 거울뉴런이라는 특정 신경세포가 있는데

이것이 활동하게 되면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기억이 만들어진다.

이타적 행동의 결과가 긍정적이라는 것을 어린이가 보면 평생을 따라하게 되고,

어른이 보더라도 인상 깊으면 강력한 학습 효과로 연결된다.

 

불안이 클수록 사람들은 인색해진다.

사람을 조심하고 타인을 경계하며 더욱 불안해 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도움을 나눠 주는 것에 절대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절대 개소리에 당하지 않는다.

행복한 이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파괴보다는 공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행복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안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다.

이들은 절대 파괴를 선택하지 않는다.

작고 소박해도 확실한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 개소리에 대항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언제나 쌍방 소통이기 때문이다.

목적없는 대화를 나눈 사람에게 더 많은 호감과 친밀감이 생겨난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다.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달려가기만 하면 안 되는 세상이다.

짧은 생애에 결론을 내려야 했던 시대에는 만족감을 못 느낄수록 생존에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명과 삶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적정한 만족감과 적정한 멈춤이 없으면 길 잃은 인생을 살게 된다.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 삶의 변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일을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신념과 가치지만,

하루하루를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은 웃음에서 나온다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버려진 낡은 교회이다.

제목처럼 연금술사는 납을 금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이 소설에서는 삶이라는 현실을 납으로 보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을 금으로 은유한다.

즉, 우리 모두는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연금술사이다.

번역에 의해서인지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간결하게 은유적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소개한다.

살면서 접하는 모든 일에서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양치기 산티아고가 양떼를 데리고 버려진 낡은 교회 앞에 다다랐을 때는 날이 저물고 있었다.

지붕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성물 보관소 자리에는 커다란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지...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우림과 툼밈이라네. 검은 것은 '예'를 뜻하고 하얀 것은 '아니오'를 뜻하지.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상점 주인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산티아고는 결정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배낭 속에는 겉옷 한 벌이 들어 있었다. 사막에서는 더이상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는 겉옷을 꺼내 그릇들을 닦기 시작했다.

 

기회가 우리를 도우려 할 때 우리도 기회를 도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은혜의 섭리라고 하기도 하고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그래, 무언가를 찾아가는 매순간이 신과 조우하는 순간인 거야.

내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모든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었어.'

 

눈앞에 엄청난 보물이 놓여 있어도,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네.

왜인 줄 아는가? 사람들이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바로 그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그는 만물의 정기 속으로 깊이 침잠해들어가, 만물의 정기란 신의 정기의 일부이며,

신의 정기가 곧 그 자신의 영혼임을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녹았던 납이 그릇 모양을 따라 둥그렇게 굳어 있는데, 그것은 더이상 납이 아니었다. 바로 금이었다.

"언제쯤이면 제가 이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산티아고는 경탄과 감동을 누르며 물었다.

"이것은 내 자아의 신화이지, 그대 자아의 신화가 아닐세.

난 그저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 했을 뿐이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그대의 보물이 있는 곳에 그대의 마음 또한 있을 것이네."

 

보름달과 사막의 순결한 흰빛으로 환히 빛나는, 신성하고 장엄한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자아의 신화를 믿게 되고, 늙은 왕, 크리스털 상인, 영국인 그리고 연금술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신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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