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키워주는 좋은 글이 많다.
오늘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자세로 평생을 정진하자
부처님이란 말뜻이 '깨달은 이"를 가리킨다.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부처님이 되는 길이다.
네 가지 높은 깨달음이란 고에 대한 깨달음, 고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깨달음, 고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고가 사라지는 길에 대한 깨달음이다.
진리를 체득, 곧 몸에 익힌다는 것도 결국은 그러한 벗어남, 곧 해탈을 위한 조건인 것이다.
우리 수행의 목적은 바로 이런 원인, 모든 것이 무명과 갈애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고, 자아에 근거해서 우리가 집착하는 가지가지의 모습들이 본래 무상하고, 공이고, 마음인 줄을 아는 것, 이를 깊이 자각하고 자기 자신과 우리 인간에 대해서 무한 자비심을 갖자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방법이 내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마음 가짐과 그 노력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바로 불타 석가모니가 집성제를 설명하는 이유다.
열반은 우리 삶의 현실을 떠나 멀리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탐진치의 소멸이 바로 부처님의 열반이다.
정진할 때 너무 조급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느리면 게을러진다.
그러므로 알밪게 하여 집착하거나 방일하지 말라
팔정도는 고통의 원인을 없애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 그것이다.
정견은 편견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정사유는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다.
정어는 바른 말이다.
정업은 바른 행동이다.
정명은 바른 일이다.
정정진은 깨달음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정념은 바른 마음 챙김이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 짓을 하는지 항상 알고 있어야 한다.
정정은 고요하게 머무는 것이다. 정정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가까운 사람과는 언젠가 이별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서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세월을 따라 변해 간다.
아난다야, 너희들은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지 남을 의지처로 삼아서는 안 되느니라...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라.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끝없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그렇게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집착하면 괴로움을 겪게 된다.
괴로움은 어둠과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바른 수행으로 지혜를 완성하여 진리를 보면 어둠이 밝아지고 집착은 사라진다.
집착이 사라지면 괴로움도 사라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전부터 인도의 종교학자나 사상가들은 그들이 지닌 종교와 사상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이 지닌 여러 종교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첫째는 희생이다. 희생이란 예배, 고행 등으로 이루어진 종교를 말한다.
이것은 의례의 도다. 바라문교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절대적 귀의, 곧 자기 던짐에 의한 신앙으로 이루어진 종교다.
이것은 신앙의 도다. 기독교와 회교가 이 범주에 속한다.
셋째는 종교의 지적 요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교다.
이것은 지혜의 도다. 불교는 지혜의 길이다.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와 인생에 대한 지적 작업은 주로 관찰과 분석이었다.
투철한 관찰자로서 사실대로 보았고, 치밀한 분석으로 대상을 여러가지 요소로 나누어 보았던 것이다.
무엇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오는가? 그렇다.
생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오는구나.
과거를 따르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 버린 것은 이미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이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혀라.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대왕의 무리와 싸움이 없는 날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가리켜
한밤의 현자라 하고
마음 고요한 성자라 한다. <중부경전> 일야 현자
도를 얻으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한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견고한 것도 없으며 결국 모두 흩어지고 만다.
마음가는 대로 한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도를 얻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귀신이나 축생 또는 지옥도 만든다.
모든 것은 다 마음에 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따라 온갖 법이 일어난다.
어떤 것이 마음을 로 관찰하는 법인가?
온몸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알아 마음을 다른 대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다음으로 이 몸을 관찰하되, 몸이 어디 갈 때에는 가는 줄 알고 머물 때에는 머문 줄 알며, 누울 때에는 앉고 누웠다는 상태를 바로 보아 생각이 그 몸의 동작 밖에 흩어지지 않게 하라. 어떤 사물에도 집착하지 말고 다만 이 몸 관찰하는 데에 머물게 하라. 이렇게 이 몸의 굴신과 동작의 상태를 사실대로 관찰하여 한 생각도 흩어지지 않게되면, 몸에 대한 형상이 눈앞에 드러나 바른 지혜가 나타나며, 이 세상 어떤 환경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숲속에 버려진 시체가 하루 이틀 지나면 부어터지고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이 몸도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 모양이 눈앞에 역력하면 모든 허망한 경계에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생로병사와 근심걱정은 있다.
나는 세상이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것 외에는 모두 하잘것없다고 본다면,
그것은'대단한 장애'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그가 보고 배우고 사색한 것에 구애받아서는 안된다.
지혜에 대해서도, 또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이미 가지고 있던 견해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지혜에도 특별히 의존하지 않는다.
삶에는 언제나 '왜'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리고 '어떻게?'라는 방법론이 문제가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하려면 '왜 사는가'를 알아야 한다.
왜 사는가를 묻지 않고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답할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왜 사는가'라는 의문에는 인색하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과 갈등은 여기서부터 쏟아져 나온다.
원인에 대한 고찰 없이 문제의 해결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끝없이 고민하지만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의 제기, 이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탐구를 시작하는 신호의 등불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변모하려면, 곧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첫째는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자기 존재를 자각하려면 고립의 의미가 아니라 고독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현재인들은 고독한 체는 하면서도 진정한 고독을 모른다.
많은 대중가요의 가사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고독을 오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고독은 흔히 말하듯이 보랏빛 노을이 아니다. 당당한 인간 실존의 현상이다.
우리의 일상을 보자. 서로 닮으려고만 한다.
주택 단지의 집들처럼, 아파트 단지의 창문처럼 꼭 같아지려고만 한다.....
이런 일들로 해서 개성과 특성의 뜰이 시들어 간다. 현대인들은 자기 언어가 없다.
자기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이 뱉어 버린 말을 열심히 주워서 쓴다. 골 빈 속물이 되어 간다.
진정한 고독은 우리 영혼 한가운데 열려 있는 심연 곧 깊은 못 같은 것이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실존이요, 본래적인 자기 모습이다.
이런 고독을 체험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 범속한 일상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오기가 있어야 하고 불의 앞에서 항거할 줄 알아야 한다.
둘,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많이 의존한다. 침묵의 바다에 들어가 봐야 발가벗은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이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인간의 의미를 탐구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자세는 의미를 지향하는 의지, 곧 로고테라피에 있다. 이것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저마다,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 귀에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의 이유를 꺼낼 수 있다.
사람이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은 병들거나 늙거나 죽을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은 순간마다 꽃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꽃은 묵묵히 피고 묵묵히 진다.
다시 가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 모든 것을 내맡긴다.
그것은, 한 송이 꽃의 소리요
한 가지 꽃의 모습,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기쁨이
후회없이 거기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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