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내부의 분열과 혼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제3제국 시절에 찍힌, 유명한 흑백 사진이 하나 있다....
자세히 보면 혼자 다른 포즈를 취한 남성이 서 있다.
점잖은 표정이지만 복종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온통 나치의 망령에 홀려 있다.
모두가 손바닥을 쫙 편 채 허공에 팔을 뻗고 있지만, 그는 홀로 팔짱을 끼고 있다.
그만이 경례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시류에 맞서는 유일한 사람이다.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그 사진에서 역사의 옳은 편에 선 사람은 그 한 사람뿐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잘못된 편에 섰다.
그것이 역사의 비극이자 운명이며, 역사가 내린 명백한 평가다.
그 순간 그 사실을 직시한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아우구스트 란트메서다.
당시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광기가 몰고 올 죽음의 가능성이 그정도일 줄은 란트메서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 광기를 거부할 수 있었다....
우리도 불의에 맞서 버림받은 무리를 두둔하는, 고난의 길을 택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불편과 조롱을 견디고, 이웃과 동료와 친구들의 냉소를 참아가며 말이다.
그러나 알고 지내는 모든 이로부터 미움받고, 배척받고, 추방당할 각오까지 되어 있지 않다면,
모두가 그 란트메서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할 듯하다.
시대를 막론한 란트메서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인류의 역사에서 카스트 체제는 크게 3개가 있다.
사람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 비극으로 치닫다 진압된 나치 독일의 카스트제.
좀처럼 사라질 기색없이 수백 년을 이어온 인도의 카스트 체제.
마지막으로 드러나거나 언급되지는 않지만 형체를 바꿔가며 존재해 온, 인종에 기반을 둔 미국의 카스트 피라미드.
카스트는 정치와 정책뿐만 아니라 개인의 상호관계를 규정하고 그 방향을 정해주는,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온 피라미드다.
<매트릭스>
자신이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현실처럼 보이는 것에 예속되어 죽은 상태나 다름없는 삶을 산다. 그들은 포로다. 그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겉으로는 안전해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아무런 의식이 없는 묵종이며,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무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포로를 잡아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기 자신이 포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속박에 저항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모르는 사이에 작동되고, 임무에 완벽하게 조율되어 존재의 무인 조종 장치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다들 자기 할일을 하는 거야." 그녀가 그에게 말한다.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을 하면 그 일이 보이지 않아.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지."...
카스트는 인형술사의 줄과도 같아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살며 지시를 내린다.
카스트는 지배틍의 지시를 정신에 주입하는 정맥주사이며, 정상이라는 겉모습으로 가장해 숨는다.
정의처럼 보이는 불의다.
사회라는 기계를 계속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잔혹 행위다. 카스트라는 매트릭스다.
카스트의 목적은 권력을 축적하고 움켜 쥔 사람들의 우월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인종이라는 발상은 사실 착취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열등한 카스트로 간주한 부류에 대한 특권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만든, 의도가 담긴 창작품이었다."
색은 팩트다. 인종은 사회적 개념이다.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겉모습만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추측한다.
우리는 생명이 없는 물체마저 절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줄기차게 들어온 만큼이나,
숨 쉬는 복잡한 존재를 서둘러 평가한다.
모든 것이 인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어떤 안도감에 의지한다.
살면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적어도 맨 밑바닥 신세는 아니라는 안도감이다.
최하층 사람들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한, 내 정체성과 미래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용서라는 행위는 지배자가 피지배자와 일방적으로 맺은 계약에 감춰진 조항 같다.
"우리 흑인들은 용서한다. 살아야 하니까."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의 경우 카스트는 종종 그들과 함께 이주한다...
"이 이름들을 가진 사람들은 말이죠. 인도에서 나는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해요.
그들의 눈도 똑바로 볼 수 없고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 사람들은 우리의 주인이었습니다. 내 할아버지는 그들의 할아버지의 일꾼이었죠....
"무심코 그 선을 넘을까 두려운, 트라우마가 있어요.
여기 온지 3년이 되어가네요. 하지만 아직 그들과 얘기할 자신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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