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의 깊은 사고가 느껴지는 책이다.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서는, 나는 누군가와 진실로 가까울 자신이 없다.
아무에게서도 미움받지 않는 사람은 위험하다...
한명의 사람이 누구를 대하든 매끄럽다면, 그 사람은 흡사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거니까...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자.'
함께 있기만 해도 나를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순간 비로소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또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구나'하는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감정의 서랍은 냉장고와 달라서 열고 닫을수록 풍성해진다.
비록 나의 경험치가 아닌 일임에도, 진심으로 내 마음속의 서랍을 열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객관적' 시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의 좋은 면에 투영시켜 좀 더 나은 세상을 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미안하다'는 말은 말꼬리가 길수록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은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심어두는거라는 깨달음을 준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이며.
누가 굳이 뭐라하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혐오의 순간을 겪는다.
못나고 부족한 것들이 크게만 보이는, 멘탈 면역력이 바닥을 치는 어느 밤,
악플 잠복균은 온몸에 두드러기처럼 올라온다...
내가 친 바닥의 차가운 느낌은 선명히 떠오른다.
그래서 악플은 '표현의 자유'라는 알량한 말로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약해진 순간,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태에 숨통을 조여오기에.
배려라는 것은 어쩌면 피냄새를 맡을 줄 아는 감각이다.
마음 여기저기에 움츠러든 자국이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소리없이 반긴다...
이를테면 왁자지껄한 회식자리나 MT같은 곳에서 겉도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조용히 다가가 앉는 풍경,
또는 발표를 망쳐서 붉어진 얼굴의 동료에게 가볍게 농담을 던지거나 기운을 북돋아주는 일.
나의 관점을 의심하면 또 다른 관점으로 어딴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확실히 나의 체계를 확장하거나 견고히 해주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오히려 눈물을 참는 게 아니라 흘려야 할 때 흘려주는 거다'라고 이야기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스트레스 관리가 되기 때문인 거 같아요...
행위는 정신을 지배하기에 눈물을 참는 게 습관이 되면
나 스스로 '나는 지금 힘든 게 아니다'라고 속이는 것도 가능해 진다.
'가슴에 묻는다', '가슴에 품는다', 모두 마음의 풍경이지만
묻고 가는 것은 주로 아픔이고 품고 가는 것은 연정의 속성을 띈다.
나는 묻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모습이,
품는 것은 무언가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묻는 것은 생명력이 사그라들길 바랄 수 있고, 품는 것은 무럭무럭 자라나길 원할 수 있다.
용기는 분노처럼 '오르는' 감정이지만, 분노가 주로 외부 자극에 뿌리를 둔다면
용기는 내 안에 쌓인 결심들이 모여 탄생한다.
둘 다 적금처럼 차곡차곡 부어진 감정들이 만들어내지만,
용기는 끝끝내 그 머리채를 끌고 나오는 주인이 '나'라는 데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분노는 우리가 머리채를 '잡히는' 감정이지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두 감정은 목적지 또한 다르다...
재밌는 건, 어떤 용기는 분노에서 비롯된다는 거다.
결국 무엇이 쌓여 터지는 감정이냐에 따라 좋고 나쁜게 결정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어찌 되었든 혼자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속에 살고 있기에, 가끔 착각을 한다.
각자 혼자인 채로 무리지어 살아갈 뿐인데, 마치 둘 또는 무리인 채로가 기본값이라고.
그러다 나를 너무 모르는 측근을, 또는 나만 동떨어진 무리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문득, 외롭다...
나에게 외로움은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오롯이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무대의 주인공이었다가 내려왔을 때 비로소 내가 무대위에서 소란스러웠음을 알 수 있듯이,
외로움은 무대 위도 객석도 아닌, 무대 뒤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은 어디선가 날아온 꽃씨처럼 소리소문 없이 피어날 때 비로소 꿈이다.
어쩌면 어릴 때 반복적으로 받은 질문 탓에 우리는, 꿈을 목표와 혼동하는지도 모른다.
목표가 지침으로 존재한다면, 꿈은 장면으로 존재한다....
꿈은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취향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끌려 탄생한 꿈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어 작은 목표들을 만들어준다.
마음이 하는 모든 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이끌듯 꿈도 그렇다.
꿈은 목표와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지 않아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난느 그저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열광하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니까.
참 아이러니하다.
오직 현재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우리인데 정작 생각은 미래나 과거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겪어온 것들(과거)로 인해 생긴 두려움으로 피어오르는 다가올 일(미래)에 대한 걱정.
나는 세상은 방구석에서 뭐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모든 걸 바치는 덕후들과
무리에서 늘 뛰어가며 소리쳐준 나대는 이들로 인해 변해왔다고 믿는 사람이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나'임에 틀림없지만, 세포분열을 하듯 수많은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역할'로도 존재한다.
이 역할은 꼭 의무감이 아닌 무의식으로도 생겨나는데,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면 그때의 모습으로,
직장 동료 모임에선 그 무리에 맞는 모습으로 있게 되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심지어 꼭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누구의 앞이냐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 힘들다.
이 모습을 스스로 인지하지 않으면, 문득 억울하고 외로운 밤이 찾아온다...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초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무모한 자들은 뼈아픈 실패를 겪지 않았거나, 그 실패들이 남긴 데이터를 망각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겁이 많은 자들은 지켜야 하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다.
또 자신과 얽힌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일에 대한 신중함이 있는 자들이다...
삶에 있어 충동보다는 지구력으로 대처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나는 겁이 많은 편이야'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더욱 호감이다
'겁이 없음'을 매력적인 무기로 휘두르지 않는 그들은, 결과적으로 늘 강했다.
'살아남는다'는 말은 단순히 존재감없이 그러저럭 발을 걸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살아 남아보며 깨달았다.
나를 살아남게 해준 순간들이 있다.
좋은 가사를 써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고놔하는 순간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기사가 잘 나오지 않을 때, 슬럼프가 찾아올 때, 밀려 나가지 않으려 버틸 때 등의 초라한 시간들이
내가 살아남을지 아닐지를 결정해주었다...
기억하자. 오래 살아남는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란 걸.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단 걸.
영감뿐이랴.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은 의지, 힘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근성,
새로운 기회가 오기까지 잠복하고 버티는 힘..... 모두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
인간은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동시에, 그 안정이 오면 회의감을 느낀다...
물론 육체적인 피로도 때문에 이 쳇바퀴가 문득문득 숨이 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건 언젠가 깨달은 이 생각이다.
'나는 이 쳇바퀴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았다.'..
자존심이 꺽이지 않으려 버티는 막대기 같은 거라면, 자존감은 꺽이고 말고부터 자유로운 유연한 무엇이다.
지존심은 지켜지고 말고의 주체가 외부에 있지만 자존감은 철저히 내부에 존재한다.
그래서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를 기특히 여기는 순간은 자존감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다...
허나 선행이 누군가의 칭찬과 거래되는 순간 자존감 통장에는 쌓일 것이 없다.
나의 대견함을 '알아주는' 주체를 타인에게 넘겨버릇하는 게 위험한 이유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 바로소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더라고요.
결국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하늘에서 떨어진 능력이 아닌 열정과 끈기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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