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아버지가 죽은 병사가 갖고 있었을 인간다움의 증거와 씨름하는 흔적에 마음을 빼앗겼다.

거기 드러난 정서는 최고의 반전 시로 꼽히는 윌프레드 오언의 [이상한 만남]의 정서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람한 팔뚝과 떡 벌어진 체격으로 적군의 신체적 힘을 우리의 신체적 힘으로 찍어 누르는 젊고 멋진 남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기계 뒤에서 싸운다. 젊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이것은 검투사들의 결투가 아니다.

기관총을 쏘는 허약한 사람들이 맨손의 슈퍼맨보다 더 치명적이다.

우리는 맨 몸 격투의 흥분과 희열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류가 파괴를 위해 고안해낸 가장 지독한 장비를 갖고 싸운다.

뜨거운 납덩이나 차가운 쇠와 충돌하면 사람의 몸은 종이장과 같다."

 

일본 사람들은 시끄럽게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들에서 쾌락을 찾는다.

허황된 꿈이라도 그 꿈을 놓지 않는 어쩔 수 없는 로맨티스트들이다.

'현실'은 추하고 형편없고 누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왜 그런 것들이 쾌락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어야 하는가?

 

만사를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가장 노골적인 모순 앞에서도 야단스럽게 굴지 말도록 사회화되어왔다면,

엄마의 포옹같은 것이 간혹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돈을 내고 하는 포옹은 포옹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돈을 낼 수도 있다.

포옹만큼 관능적이지 않더라도 이런 일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일본에서의 생활이 그토록 쾌적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들의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서양에서는 가치있는 일이라면 잘해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일본에서는 할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도 잘해내야 한다...

누군가에게 차 한잔과 디저트를 대접하면 진수성찬을 대접했다는 감사를 받는다.

반대로 성대한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갔는데 너무 차린게 없어서 부끄럽다는 인사를 받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형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이고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형식에 자발적인 감성이 가득한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모두가 그런 기대에 부응해 행동하고 있고, 그게 또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가장 공허하고 형식적인 행위들이 오히려 의미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모순을 애써 부정하려는 이런 태도에는

치명적인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점은 흔히 간과된다.

그런 태도가 일본을 매력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드는 원천일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또한 일본 근대사의 비극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대중을 착취하기 좋은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매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성숙함이라 여기고, 어쩌면 가치 없는 목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을 대중이 내면화하는 것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이런 유동적 가치관의 영향이 사회 지도층 레벨로 가면,

권력자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과 그 동기에 대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이중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그 안에서 개인은 스스로의 본분을 다해가며 최선을 다해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식은 여전히 만연해 있다.

일본인들이 이런 의식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피해자 의식이다....

수백만의 일본 국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 짓고는 "시카타가 나이(할 수 없군)"라고 한마디 하고는 말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1850년 그의 추악하고도 매우 영향력 있던 [음악 속의 유대주의]라는 소논문에서,

위대한 예술은 단일한 문화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사람들만 창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이지 시대에 대한 가장 깊은 고찰은 20세기 초

가장 위대한 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1914년 걸작 [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이 유독 독특했던 것은 나라의 지배구조에 대해 하나도 아닌 두 가지 다른 허구가 병존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허구는 천황제이고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허구는 입헌정치와 법치주의다.

 

더 힘센 존재를 달래고 조종하는 기술은, 유치원 교실에서 시작해서 정부나 기업의 꼭대기에 오르는 데까지,

일본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힘 있는 자리에서 일본 사람을 상대해본 외국인이라면

일본인들이 얼마나 상대방의 기분을 능숙하게 맞춰주는지 경험해봤을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아이가 이러한 유혹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아기 때부터

본능적으로 가르친다.

 

이들에게 일본은 자기 연민에 빠진 채 아사아 사람들 전체에게 커다란 고통을 일으킨 원인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나라다.

이들은 일본의 권력층이 우익의 과거사 왜곡을 끊임없이 묵인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 공산당도 일본 제국 못지않게 손에 피를 많이 묻혔지만, 일본이 중국과 한국의 울분을 사는 이유는

일본 정부가 다음과 같은 분명한 입장 표명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과거에 이런 일이 일어났고, 2)그것은 대부분 일본의 잘못이다.

3)일본은 그런 일일 절대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이고,

4)그 보장을 위해 되돌릴 수 없는 제도적인 조치를 취했으니 우리를 믿어도 좋다.

 

가계의 저축을 금융기관에 맡기도록 강력하게 몰아가고,

금융기관에는 정부가 발행한 금융상품(채권)을 사도록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카럴 판볼페런이 '현실의 관리'라고 이름붙인 현상이었다.

현실의 관리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일본인들이 모순을 알아차리지 않기로 의도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한 듯 보이는데서 종종 드러난다...

하지만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회사의 불은 그대로 켜져 있고 평소라면 모두 저녁 9시가지, 바쁜 때라면 자정이나 그 너머까지 일한다.

밤 10시가 넘으면 빌딩의 작은 옆문으로 사람들의 물결이 빠져나간다.

 

사상과 정보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힘이 작용했다.

세상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 현실을 부정하는 내용을 쓰거나 말한다고 해서 잡혀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결국은 소외되기 마련이었다. 뉴스의 배포는 기자클럽을 콩해 통제되었다.

기자클럽은 정치인, 정부 부터, 경찰과 같은 주요 정보원을 취재하는 기자들로 구성된 카르텔이다....

주요 일간지에 실리는 중대한 경제, 정치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 복사기로 복사한 것처럼 다 똑같은 것은 그 때문이다.

미디어가 특정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해 갑자기 하이에나 떼로 돌변해서 달려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들은 해당 인물을 모두의 먹잇감으로 삼아도 된다는 신호가 올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검찰청에 출입하는 기자 클럽에 검찰이 정보를 흘리는 것이 보통 그 신호다.

 

제정신을 얼마쯤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순과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점점 더 필수 덕목이 되어가는 나라는 더 이상 일본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적나라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과 더불어 일본 문화가 완벽하게 구현한 악몽과도 같은 시각적 묘사는

전 세계 모든 사람, 특히 젊은이들에게 선명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를 통해 또한 일본이 얼마나 변화해오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산초메노유히], 이 드라마를 보노라면 일본 특유의 적나라한 감정 표현을 통해 등장 인물들이 서로에게 쏟는 애정과

사랑이, 지금의 현실에서는 심각하게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재난이 닥치면 그간 부패해온 정치체제에 잠깐일지라도 가차없는 조명을 비추어 그 민낯이 드러난다.

체르노빌 원전 사건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8년의 금융위기와 같은 재난 상황으로 인해 지도층의 담합과 부정행위와

무능함이 대중에게 그대로 드러나면, 그동안 공익에 들어가는 세금으로 자신의 살을 찌우던 무리가 놀라 달아나기 마련이다. 더러운 아파트에 갑자기 불이 켜지면 바퀴벌레 무리가 숨을 곳을 찾아 달아나는 것과 같다.

 

판볼페런 [일본 권력의 수수께끼]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마쿠라노소시]와 [겐지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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