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갔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시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이 글귀가 가슴에 절절이 스며든다.

내 나이 40대 중반에 이런 느낌을 느끼니

80대에는 이 글귀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세월의 깊이만큼 연세드신 분들의 깊이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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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약한 존재가 아니며 결코 그랬던 적도 없다. 단지 잠시 방향을 잃거나 무언가에 현혹되거나 낙담하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은 자신감있는 태도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 노먼 커즌스-

 

커다란 슬픔의 집 한가운데 앉아 있는 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평화로운 정원에 앉아 있게 된다 -하피즈-

 

자각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지닌다.  - 프리츠 펄스-

 

새로운 상황, 특히 시련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

전에 취하지 않았던 다른 방식, 상상력과 도전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겁을 먹고 위축되고 상황에 압도당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디폴트 행동에 의지한다.

늘 의지하던 익숙한 방법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디폴트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대응하는 특정한 메카니즘이자 습관적인 행동방식이다.

 

이처럼 삶이라는 오선지위에 처음 그려진 음표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심리에 두고두고 울림을 만들어낸다.

 

삶의 초반에 그려진 음표가 만들어내는 울림이 되풀이되어

"그래. 내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이런가 봐."하는  생각에 빠지면서 삶에 특정한 테마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살면서 생긴 굵직한 사건이나 트라우마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는 모종의 보상심리에서 기인한 행동 또는 디폴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그 테마와 관련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이미 자리잡기 시작한 행동방식을 또 다시 취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우리 삶에 드리운 테마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삶의 심리적 테마와 감정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길은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고 정서적 치유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 과정은 대개 다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당신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심리적 테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2.과거에 받았던 상처나 간직해온 아픔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것을 종이에 적어 보거나 당신의 말을 경청해 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라.

3.그것을 감추거나 이겨내기 위해서 생겨난 디폴트 행동이 무엇인지, 습관적으로 어떤 행동을 반복했는지 생각해보라.

4.감정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라.

  당신의 슬픔과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올 때까지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하라.

 

삶은 당신이 디폴트에만 의지하며 주저앉아 있기를 원치 않는다.

삶은 당신이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또한 당신이 괴로움을 마음껏 느끼고 받아들이기를, 그 다음에 그것을 놓아버리기를, 그리고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가듭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명심하라.

먼저 자신의 디폴트를 깨닫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시련속에서 그 재능을 꺼내서 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신을 재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일 또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이 내게 요구하는 것에 응답하는 일에는 에너지와 상상력,용기가 필요하다.

삶이 내게 완전히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위기와 시련은 삶에 남아 있는 디폴트의 흔적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다.

뿐만 아니라 삶이 당신에게 성장하고 발전하라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보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라고

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하다.

 

디폴트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당신 삶의 비뚤어진 궤도는 천천히 수정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진짜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 삶과 행동방식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사각지대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당신이 미처 모르는 사이에 당신 삶을 조종해 온

괴물을 인식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목발에 몸을 의지하고 싶어한다. -쥘 짐머-

 

인생이란 자아를 최대한 발현하는 과정,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 삶이라는 지도위에 나 있는 당신만의 길을 발견하고

당신이 이뤄야 할 목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시도하고 경험하는 시간이다.

삶은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정서와 영혼을 끊임없이 확정시키라고 재촉한다.

삶 그 자체가 지닌 에너지와 생명력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라고 끊임없이 졸라대고 재촉한다.

 

괴로움과 고통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에는 자신이 확대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느끼기 어렵다.

이런 느낌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시도와 행동이 발전은커녕 자꾸만 적어지고 축소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더 시시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가는 기분, 가진 것을 자꾸 잃어버리는 기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자꾸 적어지는 그런 기분 말이다.

그것이 어떤 좋은 물건이든, 지위든, 돈이든, 시간이든.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부터 당신의 삶에는 희망이 자라기 시작한다.

희망은 언제나 변화와 가능성이라는 토양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카페오레와 크루아상을 벗삼아 미친듯이 글을 썼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며 대게 안정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변화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시련을 겪고 있을 때 거기에 함몰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당신은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종착지에 이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 앞으로 나가는 당신을 방해하는 것, 당신이 너무 집착하고 있어서 시야를 흐리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놓아주어라. 마음에서 떠나 보내라.

그것은 결혼생활일 수도 있고 친구나 직장, 경력, 살던 집, 자기 이미지, 습관적인 행동, 당신의 과거나 잘못된 미래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무엇, 늘 해온던 방식, 이미 그려놓은 잘못된 미래상을 버리는 일은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스스로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 늘 해오던 방식에 의존하고 싶어한다.

우리 내면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자신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재평가 해야만 한다.

자신이 아직도 그 옛날의 '퀸카'라고 믿으며 거리를 떠도는 알코올중독 노숙자 여인 또는 지금은 그저 대학원의 수많은 평범한 학생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학부를 수석 졸업했다는 과거 경력에 집착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덜어내면 더 많은 것을 얻을 기회가 찾아온다.

비우면 더 많은 것을 채울 공간이 생겨난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할수록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착은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지만 놓아주는 것은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집착은 오로지 과거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놓아주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붙들고 있던 것을 놓을 때, 우리는 자신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시닥할 수 있다.

그럴 때 신성한 힘이 우리 삶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다.

 

역경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다.  -체사레 파베세-

 

혼란과 괴로움의 한간운데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때문인 것처럼 느끼기 쉽다.

그러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상황에 압도되어 있기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 뿐이다.

 

갑자기 내 자신이 바보같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마치 발밑에 있던 단단한 안전장치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힘든 건 내가 처해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진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 모든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 그런데도 근사한 글 한 줄,

아무것도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 시절의 작문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 교수님은 혹독하고 잔인한 비평으로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물론 나도 포함해서)의 재능을 가차없이 깍아내리셨다.

당시 나는 그 교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말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여섯살이나 일곱 살 때 좋아하던 무언가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무언가를 위한 사전 염습도 아니며 장난같은 헤프닝도 아니다.

그 일은 이제 당신의, 당신 삶의 스토리 일부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련을 위한 자리를 삶의 한 공간에 마련한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닫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이카는 처음엔 비중이 적은 조연을 맡았지만 곧 연극반에서 공연하기로 결정한 '브리가둔'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깜짝놀란 마이카는 주연을 맡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는 방과 후에 할 일이 많다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자신은 누군가의 대역 정도만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마이카의 노래 실력에 반한

연극반 선생님은 그가 꼭 주연을 맡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선생님은 마이카의 '숨겨진 재능'을 끌어내 계발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며 그를 설득하려 애썼다.

목소리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마이카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뮤지컬 연습시간에 일부러 빠지고, 공동 주연을 맡은 친구한테 싸움을 걸어 분란을 일으키고, 친구들과 잔뜩 술을 마시고 취한 채

연극반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선생님이 마침내 마이카의 '노골적인 반항 행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그를 불렀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마이카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누나가 자기한테 했던 말이 커다란 충격과 상처였기 때문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선생님의 격려 속에서 뮤지컬의 주연 역할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마이카는 이 공연으로 모든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다. 단 한사람, 그의 누나만 빼고 말이다.

마이카의 누나는 그의 뮤지컬 공연이 있던 주에 캠핑 여행을 떠나버렸다.

 

이 일은 나도 때로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어.

나는 언제나 강해 보이려고만 애썼어. 내게도 약한 모습 두려워하는 모습이 있는데도 말이야.

 

당신에게 벽난로같은 무언가가 없다면 하나쯤 만들어야 한다.

찾아가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당신만의 벽난로가 될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어디라도 상관없다. 당신이 그곳에서 소속감과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동네에 있는 친근한 커피숍, 바닷가의 특정한 장소, 늘 앉아서 기다리는 벤치도 좋다.

햇볕을 듬뿍 받으며 자연의 향기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도 괜찮다.

요가 클래스, 도서관의 조용한 방이나 당신의 서재, 실직자의 구직활동을 도와주는 단체도 괜찮다.

 

삶의 힘든 시기를 혼자서 보내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Waltzing with Bears"라는 이 책의 원 재목이 은유하는 것이 바로 " 리스크를 잘 다독거리면서 관리하는 능숙한 프로젝트 관리자의 모습"이다.

 

프로젝트는 제한된 비용으로 주어진 시간안에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며 무한한 시간과 자원이 주어지지 않기에 예산을 초과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 책은 다섯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파트1 : 왜 굳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가?

파트2 : 어떤 경우에 그것을 해서는 안되는가?

           (여기서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 리스크를 도입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잠재적 폐해에 대해 설명한다)

파트 3 : 어떻게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가?

파트 4 : 조직은 리스크를 어느 정도까지 감수할 의지가 있는가?

파트 5 :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이행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회원들을 뜨겁게 달군 " 믿음의 윤리"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을까?

이 논문에서 클리포드는 한 개인이 선택한 믿음이 다른 이들의 윤리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클리포드 말에 따르면, 어떤 믿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책임 여부는 믿음을 가진 자가 그 믿음에 대해

"믿을 권리"를 가졌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행동이 일단 이루어지면 그것의 옳고 그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우연으로 인해 그 행동이 선 또는 악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가 무죄인 것이 아니라, 단지 죄가 드러나지 않은 것 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믿음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믿음의 근원과 관련 있고, 무엇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연관되며,

사실 혹은 오류로 밝혀졌는가보다는 앞에 놓인 그런 증거들을 믿을 권리가 있었는지에 관련된다.

 

믿을 권리가 있는 것만을 믿어야 하는 일이 리스크 관리다.

불확실성의 요소들로 복잡하게 얽힌 모든 작업에 대해서 클리포드가 말한 믿음의 윤리를 적용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태도이다.

이를 통해(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서 과거 여러분의 일을 저해하던 거짓과 자신에 대한 기만과 같은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 아침 이전에 여섯 개나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믿는 것에 대신할 대안이 될 것이다.

 

성인다움을 나타내는 특징 중의 하나가 사소한 것부터 매우 중대한 부분까지 인생의 불쾌한 면에 기꺼이 대면할 수 있는 의지를 가졌다는 것이다.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나쁜 일(리스크)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대책을 세워 나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성숙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리스크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문제이며, 문제는 이미 현실화된 리스크이다.

발생하기 전까지 리스크는 추상적이다.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리스크 관리는 리스크가 아직 추상적인 상태에서, 문제로 되기 전에 대응책을 생각해내는 과정이다.

리스크 관리의 반대 개념은 위기 관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이미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리스크가 갑자기 문제로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추상적이고 단순한 가능성이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때가 바로 리스크 전이의 순간이다.

 

적과 마주쳤을 때 계획은 필요 없다.

 

사실 낙관주의(거짓)가 판치는 곳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희망 납기일을 준수할 확률이 단지 10%라고 주장한다면 "사장님 제게 일을 주십시요. 납기일을 맞추겠습니다.

보장합니다."라고 하면서 달려들 늑대같은 경쟁자들 싸움에 당신을 던져 놓는 꼴이다.

 

소프트웨어 관리자들은 대부분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예측을 하지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을

예측하는 데는 매우 취약하다.

 

모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공통적인 리스크

1.원래 일정의 결함

2.요구 사항의 확대(시간에 따라 요구 사항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3.인원의 교체

4.설계 명세 붕괴

5.낮은 수행 능력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판명될 일들을 포함시키려 하기보다는 필요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는 일들을 제외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소프트웨어 규모를 실제보다 크게 산정할 가능성은 작게 산정할 가능성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모든 회사에서 리스크를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1.부정적인 사고를 하지 마라

2.그에 대한 답이 없다면 문제를 제기하지 마라.

3.증명할 수 없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이야기하지 마라.

4.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지 마라.

5.책임지고 즉시 해결할 일이 아니라면 문제를 입 밖에 내지 마라.

 

나는 브리지 게임의 초보자인데, 형이 게임을 할 때 손에 높은 카드를 많이 들고서도

처음에 낮은 카드부터 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었다.

형은 " 톰, 항상 네가 자신 없는 것을 먼저 해라.

물론 네가 처음의 예닐곱 턴을 이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다음은 어쩌지? 모든 트럼프가 나가고 나서, 만약 한번 지기 시작하면 상대편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겠지.

상대가 원하는 대로 게임이 진행되면서 이제 남은 카드는 다 쓸모없게 되어 버릴 수 있는거야."

 

프로젝트에서도 자신 없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주도권을 잃게 되고 사건들이 터지면서 일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일찌감치 그렇게 함으로써, 힘을 축적하게 되고 재기하여 주도권을 다시 되찾을 있다.

 

프로젝트를 충분히 일찍 시작하려면 항상 뱃심이 요구된다.

성숙되지 않은 시장에서는 언제나 누군가가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화되지 않은 도박에 돈을 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많은 관리자 들이 훨씬 더 의미있는 리스크, 즉 일찍 시작하는 것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에 많은 프로젝트에서

납기 지연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한스씨. 당신은 이 프로젝트를 너무 늦게 시작한 겁니다.

만약 당신이 18개월 전에 시작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을테고, 앞으로 남은 달 동안

추가 이익 수백만 달러를 얻을 수 있었을겁니다." 나는 그가 스스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두었다.

 

진실 안에서 인간은 이단아일 수도 있다.

만약 그의 목사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혹은 의회에서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다른 이유도 모른체

그것을 믿는다면 그의 믿음이 사실일지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진실이 그에게는 이단이다.

 

진실보다는 기독교를 사랑하는 것으로 믿음을 시작한 사람은 기독교보다 그 자신의 종파나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모두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교리의 증거에 대한 질문은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다가, 마침내는 해결된 것으로 간주된다.

의구심을 교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던져진 질문에 대해 정직하게 대답을 하든지, 혹은 질문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이 " 그러나 나는 바쁜 사람이다. 어떤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판단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고,

심지어 반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긴 과정의 검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그것을 믿을 시간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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