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는 행복한 삶이란 긍정적인 감정들이 물 흐르듯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감정을 거부한다.
연습할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쥐가 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건 분명히 심리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그 순간, 그리고 다른 많은 상황에서 매번 승리의 문턱에서 아래로 끌어내린 것은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세계 챔피언을 향해 가는 길에 실패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패없이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완벽주의자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불합리한 기대를 한다.
희망 사항을 믿고 현실에서 멀어진다.
완벽주의자의 가장 큰 특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완벽주의자는 두려움에 의해 움직인다. 무엇보다 넘어지거나 이탈하거나 비틀거리거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사각형을 둥근 구멍에 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실패가 불가피한 현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상에 끼워 맞추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가 그러한 노력이 부질없다는 사실에 직면하면 도전을 꺼리거나 조금이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보이면 달아나 버린다.
최적주의자에게 실패는 피드백을 얻는 기회다.
최적주의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
삶을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사람은 최종 목적을 향한 지름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비참한 실패라고 인식한다.
완벽주의자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접근방식 때문에 모든 비판을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공격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종종 비판에 대해 극도로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결국 비판에서 배울 점이 있는지 평가하지 못한다.
철학자 미니어 몰도비아누가 " 우리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우리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한말은 완벽주의자에게 완벽하게 해당한다.
완벽주의자는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실제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학습을 위한 대가- 결점, 부족함,
실수를 인정하는 것-는 치르지 않으려고 한다.
완벽주의자를 방어적으로 만드는 두 가지 특별한 심리 기제가 있는데, 첫째는 자기 향상이고, 둘째는 자기 확신이다.
자기 향상이란 우리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자기 확신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을 올바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두가지 기제는 종종 충돌한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동시에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이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열등감으로 인해 스스로 무가치하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무가치하게 보이기를 원한다. 자기 향상과 자기 확인은 강력한 내면의 욕망이고
그 두가지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이 이기는지는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완벽주의자의 경우에는 자기 확신과 자기 향상이 만나 극도로 방어적이 된다.
세상에는 많은 잘못이 있고 상황에 따라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적절할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은 순진한 낙천주의자이며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다.
최적주의자는 실수했을 때 책임을 지고 실패에서 배운다.
실수와 실패는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실패에 대해 훨씬 관대하고 실패한 자신을 용서한다.
완벽주의자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그 길은 직선으로 뻗어 있으며 요지부동이다.
또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은 단정적이고 엄격하다.
의사 결정과정에는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감정은 종종 예측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해야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
미래는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적이다. 뜻밖의 사건 또는 자연 발생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은 위험하다.
특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서는 모든 변수에 확실하게 대비를 해놓지 않는 한 놀고 즐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완벽주의자의 경직성은 통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완벽주의자는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려고 한다. 자신이 손을 놓으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지 직접 해야한다.
통제를 거두는데 대한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도전하고 실패를 감수하면서 맞서 싸우는 경험 자체가 자신감을 키워준다.
역설적으로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자신감은 실패할 때 오히려 강화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항상 두려워했던 그 괴물-실패-이 생각했던 것만큼 무시무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정체를 드러냈을 때 더 이상 무섭지 않았던 것처럼 실패는 막상 마주하면 오히려 위협적이지 않다.
많은 결과들이 완벽주의 때문에 미루는 습관과 무기력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완벽주의자가 어떤 일을 잠시 혹은 영원히 뒤로 미루는 이유는 게으름을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오로지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완벽주의자가 일 자체를 피하는 것으로 실패를 피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결국 성공 가능성까지 배제하게 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숨겨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허락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중에야 나는 슬퍼해도 괜찮다는 것, 의기소침하거나 두렵거나 외롭거나 불안하게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심리 돌파구가 되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건강한 것이라는 단순한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전진과 후퇴, 승리와 실패를 반복하며 가는 오랜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웬즈라프와 웨그너는 "떠오르는 어떤 생각을 억누르거나 피하기보다 생각나는 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
불안과 우울증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내가 강의를 시작했을 무렵 가장 여려웠던 점은 대중 연설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내성적이고 완벽주의인 나는 강의를 할 때 심장이 뛰는 소리가 청중에게 들릴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극도로 긴장하니 준비한 이야기조차 자꾸 잊어버렸고,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나는 처음에 그 혼란스러운 감정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그 감정을 제어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애쓰면 애쓸수록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불안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이 수그러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목적을 갖고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효과가 없다.
예를들어, 뭔가를 더 잘하기 위해 어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는 거짓 수용이라고 부른다.
거짓 수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강의하기 위해 불안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바람이나 희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를 들어 화가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러고 나서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완벽주의자와 최적주의자를 구분하는 차이의 핵심이다.
선과 악, 즐거움과 고통까지 현실을 완전하게 받아들이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풍요로워진다.
현실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일때 우리 안에 지혜와 선이 흐른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역설적 의도"라는 기법을 제안했다.
프랭클은 불안감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말고, 더욱 불안해지고 더욱 안절부절못하도록 자신을 부추기라고 제안하다.
그러면 불안감이 몸에 자유롭게 흐르다가 저절로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불교 승려이며 학자인 마티유 리카르는 "분노를 들여다볼수록 아침 햇살에 눈이 녹듯이 눈앞에서 분노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평상시에 문제를 해결하듯이 "잘못"을 고치려고 하면 오히려 우울증이 점점 더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때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
과학 철학자 토머스 쿤은"어느 분야내에서 오래된 패러다임이 더 이상 새로 축적되는 지식을 받아들여 설명할 수 없게 되면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벽돌 탑처럼 오래된 패러다임이 무너져 내려 새로운 기초를 형성하고,
그 기초 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지식의 축적을 담아내지 못하고 무너지면 다시 한번 그 잔해위에
또 다른 패러다임이 생겨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감정이 흐르는 도관에 비유하면, 더 넓어진 기초는 더 넓어진 도관과 같다.
감정의 흐름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든 즐거운 감정이든 더 많은 양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우리가 슬픔을 경험할 때마다 기쁨에 대한 수용력이 향상한다고 말한다.
기쁨은 가면을 벗은 슬픔이다.
웃음이 샘솟는 바로 그 우물은 종종 눈물로 가득 찬다.
그도 그럴 것이
슬픔이 우리 존재를 깊이 파고들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기쁨을 담을 수 있으니.
건강한 목표를 설정하려면 한 손에는 높은 희망과 위대한 기대감을, 다른 손에는 객관적인 현실을 올려 놓고 군형을 맞추어야 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해크먼은 " 동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는 성공 가능성이 50 대 50인 지점에 있다"고 제안한다.
나다니엘 브랜든은 현실 존중을 정신 건강을 위한 기초로 여긴다.
감정, 실패, 성공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은 동일률을 인정하고 우리 감정에 적용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자기 수용은 현실주의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 느끼는 것을 느낀다.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
이루어낸 것은 이루어낸 것이다" 동일률이 일관적이고 노리적인 철헉의 기초가 되는 것처럼, 자기 수용은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의 기초가 된다.
아이나 배우자나 그 누구와 대화를 나눌 때 만일 상대방의 감정이 격해지면 일단 그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이 최선이다.
설득하거나 가르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은 잠시 보류하는 것이 좋다.
장기적인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대체로 도전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실패와 부족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와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또한 탐험하고 모험하고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격려하는 것이다.
체계나 경계가 없는 자유는 방종이며, 자유가 없는 체계나 경계는 구속이다.
새뮤얼 스마일즈는 말했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더 이상 희망하거나 욕망하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보다 무서운 저주는 없을 것이다."
건강한 발달을 위해, 성장하고 성국하기 위해, 아이들은 어느 정도 실패와 시련, 고통그러운 감정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노력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자제력을 배우고 스스로 성공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타고난 지능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성공이 자신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실패에 대해 속수무책이 된다.
오늘날은 끊임없이 인정만 받으려고 하고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도전하고 인내하며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태도가 필요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지혜는 고통의 경험에서 온다. 우리는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우리의 삶과 상황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힘든 상황이 닥칠 때 비로소 삶과 경험을 진중히 돌아보게 된다.
솔로몬이 현명한 가슴이라고 말했던, 세상을 깊이 볼 수 있는 혜안을 얻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폭풍의 눈을 마주 보아야 한다.
인격은 편안하고 조용하게 발달할 수 없다.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영혼이 강해지고 비젼이 분명해지며 꿈을 꾸게 되고 성공할 수 있다.
기쁨의 경험은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으로 연결하고 고통의 경험은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 높이 날고 있을 때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현실의 제약을 이해하고 겸손해 진다.
기쁠 때는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 보고 괴로울 때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보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듯하다.
건강한 심리는 오만함과 열등감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다. 오만 과 열등감이 어우러져서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쁨고 고통이 어우러져야 현실과 건강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
고통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지혜와 동정심을 배우게 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슬픔과 고통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때 고통이 줄어든다.
나 자신이 먼저입니다. 나를 받아들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차원 높은 동정심은 이기심이 발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혐오가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동정하기 어렵습니다.
동정심이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아무 상처도 받지 않는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비겁자다.
진정한 영웅은 스스로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들은 성공하려면 우선 실패해야 하며, 행동하려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우리는 완젹하지 못하지만 용감한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올리버 웰덴 홈스의 말로 표현하면 " 70세가 되는 것은 때로 40세가 되는 것보다 더 설레고 희망적"일 수 있다.
여름의 뉴욕 거리에는 벌거벗은 육체들이 활보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은밀한 심리상담실에서만 옷을 벗는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소심해졌거나 아니면 여전히 소심한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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