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나약한 존재가 아니며 결코 그랬던 적도 없다. 단지 잠시 방향을 잃거나 무언가에 현혹되거나 낙담하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은 자신감있는 태도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 노먼 커즌스-

 

커다란 슬픔의 집 한가운데 앉아 있는 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평화로운 정원에 앉아 있게 된다 -하피즈-

 

자각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지닌다.  - 프리츠 펄스-

 

새로운 상황, 특히 시련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

전에 취하지 않았던 다른 방식, 상상력과 도전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겁을 먹고 위축되고 상황에 압도당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디폴트 행동에 의지한다.

늘 의지하던 익숙한 방법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디폴트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대응하는 특정한 메카니즘이자 습관적인 행동방식이다.

 

이처럼 삶이라는 오선지위에 처음 그려진 음표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심리에 두고두고 울림을 만들어낸다.

 

삶의 초반에 그려진 음표가 만들어내는 울림이 되풀이되어

"그래. 내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이런가 봐."하는  생각에 빠지면서 삶에 특정한 테마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살면서 생긴 굵직한 사건이나 트라우마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는 모종의 보상심리에서 기인한 행동 또는 디폴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그 테마와 관련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이미 자리잡기 시작한 행동방식을 또 다시 취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우리 삶에 드리운 테마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삶의 심리적 테마와 감정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길은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고 정서적 치유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 과정은 대개 다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당신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심리적 테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2.과거에 받았던 상처나 간직해온 아픔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것을 종이에 적어 보거나 당신의 말을 경청해 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라.

3.그것을 감추거나 이겨내기 위해서 생겨난 디폴트 행동이 무엇인지, 습관적으로 어떤 행동을 반복했는지 생각해보라.

4.감정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라.

  당신의 슬픔과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올 때까지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하라.

 

삶은 당신이 디폴트에만 의지하며 주저앉아 있기를 원치 않는다.

삶은 당신이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또한 당신이 괴로움을 마음껏 느끼고 받아들이기를, 그 다음에 그것을 놓아버리기를, 그리고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가듭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명심하라.

먼저 자신의 디폴트를 깨닫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시련속에서 그 재능을 꺼내서 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신을 재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일 또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이 내게 요구하는 것에 응답하는 일에는 에너지와 상상력,용기가 필요하다.

삶이 내게 완전히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위기와 시련은 삶에 남아 있는 디폴트의 흔적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다.

뿐만 아니라 삶이 당신에게 성장하고 발전하라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보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라고

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하다.

 

디폴트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당신 삶의 비뚤어진 궤도는 천천히 수정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진짜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 삶과 행동방식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사각지대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당신이 미처 모르는 사이에 당신 삶을 조종해 온

괴물을 인식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목발에 몸을 의지하고 싶어한다. -쥘 짐머-

 

인생이란 자아를 최대한 발현하는 과정,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 삶이라는 지도위에 나 있는 당신만의 길을 발견하고

당신이 이뤄야 할 목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시도하고 경험하는 시간이다.

삶은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정서와 영혼을 끊임없이 확정시키라고 재촉한다.

삶 그 자체가 지닌 에너지와 생명력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라고 끊임없이 졸라대고 재촉한다.

 

괴로움과 고통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에는 자신이 확대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느끼기 어렵다.

이런 느낌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시도와 행동이 발전은커녕 자꾸만 적어지고 축소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더 시시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가는 기분, 가진 것을 자꾸 잃어버리는 기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자꾸 적어지는 그런 기분 말이다.

그것이 어떤 좋은 물건이든, 지위든, 돈이든, 시간이든.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부터 당신의 삶에는 희망이 자라기 시작한다.

희망은 언제나 변화와 가능성이라는 토양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카페오레와 크루아상을 벗삼아 미친듯이 글을 썼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며 대게 안정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변화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시련을 겪고 있을 때 거기에 함몰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당신은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종착지에 이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 앞으로 나가는 당신을 방해하는 것, 당신이 너무 집착하고 있어서 시야를 흐리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놓아주어라. 마음에서 떠나 보내라.

그것은 결혼생활일 수도 있고 친구나 직장, 경력, 살던 집, 자기 이미지, 습관적인 행동, 당신의 과거나 잘못된 미래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무엇, 늘 해온던 방식, 이미 그려놓은 잘못된 미래상을 버리는 일은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스스로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 늘 해오던 방식에 의존하고 싶어한다.

우리 내면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자신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재평가 해야만 한다.

자신이 아직도 그 옛날의 '퀸카'라고 믿으며 거리를 떠도는 알코올중독 노숙자 여인 또는 지금은 그저 대학원의 수많은 평범한 학생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학부를 수석 졸업했다는 과거 경력에 집착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덜어내면 더 많은 것을 얻을 기회가 찾아온다.

비우면 더 많은 것을 채울 공간이 생겨난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할수록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착은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지만 놓아주는 것은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집착은 오로지 과거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놓아주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붙들고 있던 것을 놓을 때, 우리는 자신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시닥할 수 있다.

그럴 때 신성한 힘이 우리 삶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다.

 

역경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다.  -체사레 파베세-

 

혼란과 괴로움의 한간운데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때문인 것처럼 느끼기 쉽다.

그러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상황에 압도되어 있기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 뿐이다.

 

갑자기 내 자신이 바보같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마치 발밑에 있던 단단한 안전장치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힘든 건 내가 처해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진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 모든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 그런데도 근사한 글 한 줄,

아무것도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 시절의 작문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 교수님은 혹독하고 잔인한 비평으로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물론 나도 포함해서)의 재능을 가차없이 깍아내리셨다.

당시 나는 그 교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말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여섯살이나 일곱 살 때 좋아하던 무언가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무언가를 위한 사전 염습도 아니며 장난같은 헤프닝도 아니다.

그 일은 이제 당신의, 당신 삶의 스토리 일부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련을 위한 자리를 삶의 한 공간에 마련한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닫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이카는 처음엔 비중이 적은 조연을 맡았지만 곧 연극반에서 공연하기로 결정한 '브리가둔'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깜짝놀란 마이카는 주연을 맡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는 방과 후에 할 일이 많다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자신은 누군가의 대역 정도만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마이카의 노래 실력에 반한

연극반 선생님은 그가 꼭 주연을 맡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선생님은 마이카의 '숨겨진 재능'을 끌어내 계발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며 그를 설득하려 애썼다.

목소리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마이카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뮤지컬 연습시간에 일부러 빠지고, 공동 주연을 맡은 친구한테 싸움을 걸어 분란을 일으키고, 친구들과 잔뜩 술을 마시고 취한 채

연극반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선생님이 마침내 마이카의 '노골적인 반항 행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그를 불렀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마이카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누나가 자기한테 했던 말이 커다란 충격과 상처였기 때문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선생님의 격려 속에서 뮤지컬의 주연 역할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마이카는 이 공연으로 모든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다. 단 한사람, 그의 누나만 빼고 말이다.

마이카의 누나는 그의 뮤지컬 공연이 있던 주에 캠핑 여행을 떠나버렸다.

 

이 일은 나도 때로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어.

나는 언제나 강해 보이려고만 애썼어. 내게도 약한 모습 두려워하는 모습이 있는데도 말이야.

 

당신에게 벽난로같은 무언가가 없다면 하나쯤 만들어야 한다.

찾아가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당신만의 벽난로가 될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어디라도 상관없다. 당신이 그곳에서 소속감과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동네에 있는 친근한 커피숍, 바닷가의 특정한 장소, 늘 앉아서 기다리는 벤치도 좋다.

햇볕을 듬뿍 받으며 자연의 향기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도 괜찮다.

요가 클래스, 도서관의 조용한 방이나 당신의 서재, 실직자의 구직활동을 도와주는 단체도 괜찮다.

 

삶의 힘든 시기를 혼자서 보내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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