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들 부부가 먼저 간 제 3 행성에 가기 위해 100년 넘게 우주 정류장에서 혼자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170세 노인 안나, 엄마의 영혼과 조우한 지민. 등등
SF 소설이지만 과학적이여서 더욱 감정적이다.
먼 곳에 존재할수록 그 사무치는 감정도 크고 절망적이다.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쫒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였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릴리 다우드나는 100년도 전의 사람이야.
그리고 그녀가 이 악몽 같은 세계를 만들었지."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존재를 폐기하는 것은 릴리에게 어떤 종류의 죄책감고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릴리는 내가 그녀와 똑같은 유전병을 가진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즉시 폐기할 수 있었다.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올리브는 델피와 함께 지구에 남았어.
그리고 델피와 분리주의에 저항했디.
그녀이 어머니, 릴리가 지구에 남긴 흔적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고 애썼던거야.
많은 이들은 누구가와 사랑에 빠질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거야.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거야.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무리인들은 죽음에 이른 다음에도 죽지 않는다고 스스로 믿는다.
무리인들의 믿음 안에서 자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몸을 바꾸어 가며 쓶임없이 전달될 뿐이다.
"그들은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진다고 믿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두 번째 루이를 만났어."
죽은 개체의 유해를 토기에 담아 강에 실어 보냈고, 건너편에서는 어린 개체가 뗏목을 타고 건너왔다.
그 절차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한 개체의 영혼과 자의식을 넘겨주는 과정인줄은 몰랐다.
무리인들은 희진을 불러 새로운 루이를 가리키며 '같다'고 손짓했다.
상 건너편으로 보낸 루이를 가리키면서도 '같다'라는 동작을 했다.
다른 두 신체 사이에서 의식이 이어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희진은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믿음은 일종의 원시 신앙에 불과해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루이는 너무나 첫 번째 루이와 닮아 있었다.
그들은 분절된 개체이다.
희진은 한 루이가 죽고 다른 루이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울 때 연속적이지 않은 두 자아 사이의 어긋남을 목격했었다.
영혼은 이어질 수 없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다른 루이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같은 루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어떤 초자연적인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 루이들은 단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들은 기록된 루이로서의 자의식과 루이로서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경험, 감정, 가치, 희진과의 관계까지도.
그렇다면 희진도 그들을 같은 영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루드밀라 행성을 볼 때 사람들은 무언가 놓고 온 것,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 떠나 온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지.
언젠가는 이곳에서 우주선이 출발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같은 곳에 묻히는 것에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시네요."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는가 보군. 그럼 세대 차라고 해두자.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 갈 뿐인 게 아닌가."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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