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닥친다.
이 책은 개인이 취하는 방식을 먼저 설명하고, 필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각 나라가 위기의 상황에서 취한 방법을 소개한다.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각 나라가 처한 상황은 다르고, 그리고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우리 나라와 비슷한 예는 핀란드가 될 것 같다.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외교정책을 펴면서 남북 통일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남에게 인정받겠다는 허영심에 유혹되어서는 안된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원인이 무엇이든 모든 개인의 위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현재 삶의 방식에서 중요한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절박감이다.
"좋은 위기를 헛되이 보내지 마라" 윈스턴 처칠
개인적 위기의 결과와 관련한 요인
1.위기 상태의 인정
2.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개인적 책임의 수용
3.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 할 개인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4.다른 사람과 지원 단체의 물질적이고 정서적인 지원
5.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사람의 사례
6.자아 강도
7.정직한 자기 평가
8.과거에 경험한 위기
9.인내
10.유연한 성격
11.개인의 핵심 가치
12.개인적 제약으로부터 해방
핀란드 전몰장병의 시신은 고향으로 옮겨져 그곳의 민간인 묘지에 묻혔다....
"핀란드 외교정책의 기본 과제는 핀란드의 지정학적 환경을 지배하는 이해관계에 핀란드의 실존을 맞추는 것이다....핀란드 외교정책은 예방 외교이다..
가급적이면 눈에 띄지 않게!(...) 입장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되는 작은 국가는 정치 분야의 향후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미리미리 정확히 인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작은 국가는 외교정책의 해법에 공감이든 반감이든 감성을 뒤섞을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배웠다.
현실적인 외교정책은 국제정치를 결정하는 요인들, 즉 국가간 권력 간계와 국익에 대한 자각에 기초해야 한다."
일본이 그 국가들을 먼저 공격한 도발자였던 것이다. 1937년 일본은 중국과 전면전을 시작했다.
또 1938년과 1939년에는 러시아를 상대로 짧지만 유혈이 낭자한 두 번의 국경전을 벌였다.
1941년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민감한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를 동시에 공격했다...
마침내 1945년 러시아가 일본을 공격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미루었지만 필연적이였던 결말을 받아들이며 1945년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다.
지도를 보면 칠레가 세계에서 가장 좁고 길쭉한 나라인 걸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동서의 폭은 평균 160킬로미터를 조금 넘고 남북 길이는 거의 4,820킬로미터에 달한다.
지리적으로 높은 안데스산맥이 칠레를 다른 국가들과 분리하고 있다...
따라서 히틀러처럼 피노체트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악한 지도자의 전형인 듯하다. 하지만 칠레 군부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피노체트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피노체트가 직접 누군가를 죽였거나 고문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나 명령을 받거나 허락을 받으면 사악한 짓을 서슴없이 행하는 수천 명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있게 마련이다.
인도네시아는 1910년 경에야 식민지로서 통일되고 1945년에 독립한 신생국가이다.
열대지역, 정확히 말하면 적도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뉴기니와 오스트레일이라가 있고 서쪽으로는 인도 대륙이 있다....
'인도네시아'라는 단어가 1850년경 한 유럽인이 만들어낼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1956년부터 1969년 세상을 떠날 때가지 그는 헤센주의 검사장으로 일했다.
프리츠 바우어가 평생 지향한 원칙은 독일인은 스스로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연합국이 기소한 지도층에만 국한하지 말고 평범한 독일인도 기소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브란트의 이력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1970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였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번 동안 백분율로 가장 많은 인구를 잃은 국가였다...
브란트는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 비록 실패했지만 1943년 4월과 5월 나치으 점령에 항의한 유대인 폭동이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를 일부러 찾아갔다.
그러고는 폴란드 군중 앞에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고, 나체에게 수백만 명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며 히틀러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의 용서를 구했다...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행동은 가해국의 지도자가 큰 고통을 당한 피해국의 국민에게 보낸 진심어린 사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국민에게, 일본 총리가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스탈린이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드골이 알제리인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
강력한 국가 정체성도 독일이 잿더미로 변한 점령가 분할의 시대를 딛고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독일은 과거의 패배와 초기의 실수에서 터득한 인내의 대명사이며, 과거의 성공에서 배운 자신감을 명혹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독일은 두 번의 세계 전쟁에서 당한 패배를 딛고 일어섰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1871년 성취한 통일, 약시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1990년에 이루어낸 재통일, 전후의 경제기적에도 그런 인내가 필요했다.
개인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새로운 답을 내놓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인구가 수백만을 넘고 국가 정체성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지닌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국가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풀려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1820년에도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84%가 강제로 이주한 죄수였고, 영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죄수를 이송하는 일은
1868년까지 지속되었다.
"독일인과 달리 일본인은 정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자신들의 체제에 내재한 독소를 제거하지 않았다."...
사과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과거에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유감이나 회한을 표명하는 것은 현재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현재의 태도는 미래의 행동을 짐작하게 해주는 지표이다.
일본이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 않겠는가.
인간 행동은 세세한 면에서 저마다 다르지만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면이 있다.
이웃한 대국의 위협을 받는 작은 국가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하고, 다양한 선택안을 고려하며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밀로스 시민은 이 교훈을 무시했다. 파라과이도 이 교훈을 무시하고 훨씬 강력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연합군을 상태로 1865년부터 1870년까지
재앙적인 전쟁을 벌였으며, 결국 파라과이 국민의 60%가 희생되는 참혹한 결과를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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