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배움을 주는 책이다.

 

세상이 연결되고 문화들이 뒤섞임에 따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또는 이 일이 왜 지금 벌어지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겸손한 질문의 접근법을 더욱 싶고 넓게 확장하면

상대방의 무례한 단언을 꿰뚫어 보고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배우는 기술을 갈고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빨라져만 가는 변화의 내용을 따라잡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지식, 업계, 전문 분야에 안주하려는 성향을 타고났다.

그 안에서는 수월하게 변화에 발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따라잡아야 하는 것은 가속화하는 변화의 내용이 아니라 맥락인지도 모른다.

"뭐가 달라졌을가?"처럼 내용을 묻는 질문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혹은

"왜 이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처럼 맥락을 묻는 질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심각한 난제인 기후변화와 전염병 대유행에 대해서도

진영논리(나 맥락)가 과학적인 사실을 짓누르기 일쑤다.

마치 불편하거나 위협적인 진실보다는 대안적 견해를 얼마나 완고하고 집요하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내세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식이다.

어떤 사람들은 검증하고 합의할 수 있는 진실보다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

'우리'와 '우리의 견해'를 관철하는 것에 집착한다.

합의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이유는 논쟁을 키우고 '우리'와 '그들'을 가를수록 얻을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 분열에서 가장 위험한 점은 무언가를 배우거나 새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하나만 들자면,

겸손한 질문을 통해 무엇보다 자신의 일과 삶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즉 꾸준히 잡음에서 신호를 분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을 대안적 사실이나 허구와 혼동하기 쉬운 세상에서 대화와 관계를 통해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

아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데 이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또한 질문과 숙고에 힘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질문하고 경청하고 숙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겸손한 질문의 태도에 담긴 모든 것이다.

심오한 미래학자 밥 조핸슨의 말마따나 확신과 명징은 스펙트럽의 양극단에 위치한다.

확신은 어떤 관점을 믿고 고수하는 것으로, 종종 맹렬한 논쟁을 동반한다.

반면에 명징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더 많이 보고 배우는 능력으로,

사건 전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덧붙이자면, 확신에서 벗어나 명징을 키우는 것은 겸손한 질문의 태도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점 중 하나다.

 

새롭지 않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실은

겸손한 질문이 알고리즘이나 규칙이 아니라 태도이자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기기, 옳다고 인정받기,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이런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탓에 많은 사람들은 말을 왜곡하거나 지어내거나 거짓말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진실과 거짓은 한낱 논쟁거리로 전락했다....

문제는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을 논의하는 과정마저도 이에 물들었다는 것이다.

 

주제넘은 충고에는 세 가지 오만이 담겨 있다.

- 자신이 상대방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 자신이 아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경험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삶은 우리가 자초했거나, 제 발로 걸어 들어갔거나, 남들에게 끌려 들어간 상황들의 연속이다.

겸손한 질문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집중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자신이 왜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긍정적 대화에 필요한 문화적 규칙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목적의식은 태도를 규정한다.

자신이 왜 대화를 하고 있는지를 알면 잡념과 부적절한 감정을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 있다.

 

당신이 묻는 것, 즉 질문의 내용이 상황을 규정한다.

 

겸손한 질문의 출발점은 태도이며 그 토대는 질문 형식의 선택이다.

우리가 현재의 맥락에서-자신의 기대와 선입견이 끼어들기 전에-상대방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을 품을수록

올바른 질문 형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도움이라는 목적이 대화에 반영될수록 관계 개선의 여지가 커진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해서 끊임없이 편견과 질문을 지각 왜곡, 부적절한 충동을 만들어내는지 알아야한다.

겸손한 질문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려면 이 편견과 왜곡의 본질을 이해하고 관계 형성, 도움 제공, 의미 파악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이를 회피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ORJI 순환의 출발점은 사실상 우리의 필터와 편향이다.

 

부정은 특정 범주의 정보가 자신에게 해당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고

투사는 자기 내면에서 벌어지는 맹복적 자아의 현상을 오히려 타인에게서 관찰하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사막의 모든 시기루가 오아시스로 보이는 것처럼 욕구에 의해 자각이 왜곡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현실에 대처하고 객관성을 추구하고(미술가들이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 때처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자신의 지각계가 만들어내는 최초의 왜곡을 이해하고 감소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감정을 주정하거나 너무 당연시 하는 바람에 사실상 감정을 건너뛰고 판단과 행동(개입)으로 직행한다.

이런 탓에 불안, 분노, 죄책감, 당혹감, 공격성, 기쁨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 있으며, 설령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은 알고 있더라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를 수 있다...

종종 우리는 감정이 판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료를 처리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를 하고 판단을 내린다.

행동에 앞서 분석하는 이 능력 덕에 인류는 정교한 행동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복잡한 목표를 달성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일련의 단계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행동을 체계화하는 능력은 인간 지능의 고유한 속성이다.

 

최상의 조건에서도 인간의 추론 능력에도 한계가 있고 우리가 채계적 인지 오류를 저지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왜곡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눈을 크게 뜨고 겸소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신뢰할 만한 자료 수집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려면 질문할 때 판단하려는 충동을 억눌려야 한다.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리면 그이 따라 행동한다(겉으로는 전혀 행동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판단은 정서적 충동에 반응하려는 결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역할을 하며 이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절제되고 신중한 관찰과 순수한 호기심은 잘못된 판단과 부적절한 행동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 소통의 문을 열고 싶다면

눈을 크게 뜨고 부정확하거나 근거 없는 자료를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호기심을 품은 채 겸손한 태도로 질문하여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관계 맺기와 집단적 의미 파악의 핵심과정이다.

 

대화는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며, 단언하거나 '교정'하려는 욕구는

성격이나 폭넓은 사회적 힘보다는 맥락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배움을 촉진하려면 학습 불안을 줄여야 한다.

새로운 행동이나 실천이 위협적이지 않고 가치가 있으며 능히 배울만하다고 느껴야 한다.

 

겸손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먼저 질문하고 성찰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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