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가축화를 통해 인간은 최대의 성취를 만들어 내었지만,

또한 이를 통해 타자를 비인간화(적대시)하는 성향도 생긴다.

 

대중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적자 생존' 개념은 최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공격성이 높을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데, 싸워서 다치거나 잘못되면 죽을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적자'는 우두머리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더럽고 잔인하고 짧은' 인생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구간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협력은 아주 오래된 전략이다.

수백만 년 전 떠다니는 박테리아로 존재하던 미토콘드리아는 더 큰 단위의 세포 속으로 들어갔고,

미토콘드리아와 더 큰 세포가 힘을 합치자 동물의 몸에 힘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되었다.

 

두 살 무렵이면 타인이 본 것과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된다...

네 살 무렵에는 타인의 생각을 아주 영리하게 추측할 수 있어서 난생처음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손짓은 심리학에서 '마음이론' 이라고 부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감정은 우리의 가슴에, 육감에, 손끝에 있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생각에 있으며

대개는 타인의 생각에 대한 나의 추측과 추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실험했던 여우들과 마찬가지로 이례적이었던 개의 협력적 의사소통은 가축화의 결과로 진화한 것이다...

개는 사람이 길들이지 않았다.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가축화한 것이다.

이 친화력 좋은 늑대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친화력이 동물들의 인지능력, 특히 협력과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근거가 하나둘 쌓이고 있다.

 

자제력은 잃기 전까지는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지능력 중 하나다. 이 능력을 담당하는 뇌 부위는 전전두엽피질이다.

전전두엽피질은 뇌의 경영관리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좋은 CEO처럼 비생산적인 활동이나 위험한 실수를 막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자제력은 우리에게 도박을 해보라고 꼬드기는 측좌핵,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게 하는 시각피질,

소리만 듣고도 어둠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편도체의 활성화를 제어한다.

자제력은 사고와 행동 사이의 공간이요, 높은 못에서 뛰어내리기 전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다.

 

사람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대뇌피질의 신셩세포 밀도가 높은 종이 되었다.

우리 종의 자제력이 유례없이 강력한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된다.

사람은 자제력이 강화되면서 마음이론, 계획 수립, 추론, 언어 등의 초강력 인지능력이 발달하게 되고,

그에 이어서 우리 특유의 행동 현대성과 복합적인 문화 전통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 된다.

그런 자들은 공격해도 무방해진다.

규칙도, 규범도,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도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의 가설은 모든 사람의 뇌에는 타인을 비인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세 가지 중심 요인이 도출되었는데, 바로 편견, 순응 욕구,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을 '오류가 있으나 완고한 일반화가 기반이 되는 혐오'라고 기술한다.

 

자신들이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집단은 역으로 다른 집단 사람들을 비인간화한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 종임을 설명해준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이 부산물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매슈 플린더스는

"20세기가 민주주의의 승리를 목격했다면 21세기는 민주주의의 실패"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잠재우고

선한 본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견실하게 증명해온 유일한 정부 형태가 만주주의다.

1776년 토머스 페인이 썼듯이, "그리하여 이 정부가 탄생했으니, 새계를 통치할 도덕적 능력의 부재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 형태를 채택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준 것이 이 체제였다.

민주주의 국가는 수립과 유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쉽게 독재자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너무 민주적일 때 민주주의는 실패한다"고 2016년 언론인 앤드루 설리번은 경고한 바 있다.

관용을 베풀다 못해 스스로가 잠식하기 시작하는 때가 민주주의가 과도해지는 지점이다.

"지고한 자유로부터 야만적인 속박이 널리 퍼져"폭군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국가>에서 말했다.

"폭군의 최우선 관심사는 갖가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도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권력의 집중이 아닌 분산을 추진하고, 유사함이 아닌 다름을 찬양하며

만인의 평등한 권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 살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이 더 우월하다고 여기거나 다름이 전체의 하나됨을 위협한다고 여긴다면,

다름을 찬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은 과녁판의 원 외곽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족별 체제여도 괜찮은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과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가치를 지켜만 준다면

독재자라도 신뢰할 우파 권위주의 성향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 두 집단이 전부가 아니다.

공산주의나 일체의 정부 권리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 같은 극단적 형태의 평등주의도 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과녁의 원 외곽에 속하는 모든 극단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세계관에 위협이 되거나

자신들의 신념에 도전하는 이들을 도덕적 관점에서 배제, 즉 비인간화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내 안의 분노와 증오가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메리가 말했다.

"다정한 말 한마디로 적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요.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서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바라셨던 게 바로 그런 것이었죠."

 

폭력 시위보다는 평화 시위로 성공했을 때 민주적 체제가 수립되어 다시 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경향이 더 높았다..

모든 저항 운동은 운동의 명분에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거국적 호응과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외부자가 그 집회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집회의 '평화로운' 부분임을 기억하자. 평화로운 노력만이 내구력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오레오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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