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자유론을 읽었다.
방황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더 큰 위안을 받고, 방황도 더 적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읽은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의미있다.
나만의 삶을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리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읽는 이의 영혼을 울릴 것' 이것이야말로 고전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아닐까.
나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힐난했듯이, 다수 대중은 '별을 보는 자'를 용납하지 못한다.
천재가 날개를 펴지 못하는 사회는 모두에게 불행이다....
사회성의 한 특성인 '남과 하나가 되려는 성향'이 자칫하면 현대 사회의 어두운 측면, 즉 '몰개성의 시대'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남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개별성'의 중요성을 가슴이 시릴 정도로 강조한다.
<자유론>의 마지막 장은 자유의 기본원칙, 즉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최대한 다양하게 인간 발전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법에 따른 물리적 제재 또는 여론의 힘을 통한 도덕적 강권-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자유의 기본 영역으로 다음의 셋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내면적 의식의 영역이 있다.
둘째,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셋째,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서 이와 똑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 결사의 자유가 도출된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삷에서 어떤 목적을 향해 나가는 것이 좋은지 판단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이 자기 자신의 행동을 인도하는 진정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믿어도 된다.
지적 또는 도덕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보여주는 모든 자랑스러운 것들의 근원, 즉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이렇게 된 것이다.
인간은 토론과 경험에 힘입어 과오를 고칠 수 있다.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의 경험을 올바르게 해석하자면 토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잘못된 생각과 관행은 사실과 논쟁 앞에서 점차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사실과 논쟁이 인간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그 정신 앞으로 불려 나와야 한다.
사실 스스로가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에 관한 사람들의 논평이 있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이 내리는 판단의 힘과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잘못된 판단을 시정할 수 있는 수단을 언제나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판단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어떤 사람의 판단이 진실로 믿음직하다고 할 때, 그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비롯된다....
현명한 사람치고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
인간 지성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지성을 단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를 꼽으라면 단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의 근거를 학습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무엇을 믿든지 간에, 그것이 자신이 반드시 정확하게 알지 않으면 안되는 주제라면,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제기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적군이 사라지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공부를 집어치우고 낮잠이나 자러 가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런 현상은 전통적인 모든 교리, 즉 도덕이나 종교는 물론이고 인생에 관한 지식이나 지혜를 담고 있는 것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의 절반은 그런 버릇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떤 작가는 "확정된 결론은 깊은 잠에 빠진다."고 말했는데 정말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신이나 도덕적 힘도 자꾸 써야 커진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자신의 분명한 이성적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이성은 튼튼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선택하는 사람만이 자기가 타고난 모든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관찰하기 위해 눈을 써야 하고, 앞날을 예측하기 위해 이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자료를 모아야 하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이러저런 차이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결정하고 나면, 자신의 신중한 선택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확고한 의지와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의 삶을 완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가운데 가중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 그 자체이다.
인간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양심이 약한 것이 문제이다.
강한 충동과 약한 양심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인과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어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도 강하고 더 다양하다는 것은,
분명히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이 더 충분하고 따라서 남보다 나쁜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보다는 좋은 일을 할 가능성이 더 큰 셈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강력한 충동이란 곧 정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천성적으로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아주 강렬하게 가꾸고 발전시킬 수 있는 법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있어야 열정적으로 덕을 추구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자기만의 욕망과 충동을 가진 사람, 다시 말해 그것들을 통해 자신의 타고난 본질-이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 속에서 발전되고 다듬어진다.-을 담아내는 사람은,
말하자면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자기 고유의 색깔을 띤 강렬한 충동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굳센 의지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다면, 그는 정력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이제는 사회가 개별성을 훨씬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충동과 신호의 과잉이 아니라 반대로 그런 것의 결핍이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다.
천재는 오직 자유의 공기 속에서만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다.
천재는 그 속성상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개인적이기 때문에,
각 개인이 자기 기분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사회가 쳐놓은 작은 그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어려워한다.
강력한 의지나 이성이 없다 보니 무비판적으로 남을 따라 사는 것이 주류가 되고 있다.
제법 강한 개성을 지닌 사람도 차츰 전통적인 것을 생각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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