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의 절망이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나의 대학교 1,2 학년 시절이 느꼈던 감정이랄까.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았으니....마치 절망 모드였다.


의료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한 지은이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절망으로 시작하여 절망으로 끝을 맺는다.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

결국 지은이의 이야기처럼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끝까지 하다가 사라져 가는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또 뒤를 이어서 어렵게 월급에 기대어 어렵게 견디며 또 살아 갈 것이다.

행복으로 끝났다면 어쩌면 나도 그렇게 잊어버렸을 것이나, 마지막까지 담아진 절망이 나를 잊지 못하게 한다.

그의 숙제가 나에게도 숙제로 남아 있게 될 것 같다.

그리고 후일 또 들여다 보게 될 듯 싶다.


김훈 선생은 자신의 책을 두고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내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없는 세계를 희망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 나기를 나는 바랐다'라고 했다....

또한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오롯이 감내하면서도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그에게서 조직 내 중간관리자의 고통도 보았다.


나는 어릴적에 '상이 군인'이라고 말하기 꺼려하던 아버지와 어느 명절에 동사무소에서 상이군인에게 주는 밀가루 한 포대를 이고 돌아오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석양을 뒤로 하고 어머니와 걷던 거칠고 긴 비포장도로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날 어머니의 머리 위에서 밀가루 포대가 미끄러져 길바닥으로 떨어졌다.

제 무게를 못 이겨 배가 터져 갈라진 종이 포대에서 흰 가루가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흙이 묻지 않은 밀가루의 윗부분을 손으로 퍼서 다시 봉투에 담는 동안 어린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물러설 자리가 없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는다.

안 될 경우를 걱정할 것 없다. 정 안되면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그뿐이다....... 나쁜 보직을 감수할 자세만 되어 있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다.

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상황에 밀려 해임되면 그만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단순한 논리였다.


'외상'이 몸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에 의해 손상된 모든 것을 의미할 때,

'중증 외상'은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외상으로 반드시 '수술적 치료' 및 집중치료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더 위험한 고강도 노동은 같은 노동자들 중에서도 계약직이나 하청 노동자들이 담당했다.

위험은 부상을 부르고 부상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위함도와 돈벌이는 비례하지 않았다.

늘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내 꼴이나 환자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가냘픈 노동자의 목숨이 비루한 내 인생에 힘겹게 기대고 있었다.


요즘 어찌 지내?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오창권이 웃으며 내말을 맏았다.

그냥 해. 나도 버지니아에 있을 때 비하면 할 말이 많은데.... 그냥 하는거야. 아무생각 없이.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 웃었다. 허무 위에서 연명하는 이들의 깊은 무기력이 그와 나 사이에 흘렀다.

그가 나가고 텅 빈 갱의실에서 나는 '아무 생각없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아무 생각없이' '얼마나' 버텨야 하는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스스로 직장을 물러난다는 무의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조직에서 나를 내치지 않는 한, 스스로를 깍아먹고 갉아먹으며 버티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가장 좋은 것은 '타의에 의해 잘려나가는 것뿐'이라고, 수술방에 들어서며 나는 생각했다.


늘 내 일의 종결을 생각했으나 비공식적으로 압박당해 가기는 싫었다. 나는 숨죽여 엎드렸다...

물러설 곳이 없이 하루를 버텨나갈 때였으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나에게도 새 시즌이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다면 잘해보고 싶었다.

나는 거울 속에서 지나간 얼굴을 애써 지웠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직장에서 인정받고, 여유가 생기면 동료들과 편히 술 한잔 기울일 수 있었다.

내가 삶에서 바란 것은 그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만큼만 살았으면 싶었다....

강물은 유예된 날들을 너무 빨리 끌어가버렸다.


내전으로 시달리는. 큰 배낭 하나 가득 휴대폰을 채우고 거기 가서 반군들에게 다 팔고 오라고 해도 난 갈거야.

10년 전쯤인가 대리 시절에, 경쟁사에 밀리는 CD롬 사업부에 있을 때 부서원이 열셋이었어.

그런데 모두 정리되고 나하고 다른 한 명만 남았던 적이 있거든.

단 두명이 남을 때까지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가져다 놓고 월화수목금금금을 숙식하며 버텼다.

이정엽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때 떠나간 동료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담담했다.

승진이나 보직 발령 같은 거 별로 많이 생각하지 않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필요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봐.

내가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난 최선을 다할 거야.

누가 강제로 시킨 일은 아니니까.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잘 버텨봐...

그 짧은 와중에도 그는 도리어 나를 격려했다.

'하는 데까지 해보다 조직에서 쓸모없어지면 은퇴할 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것이 인생이라면서. 이정엽은 조직의 잘잘못과 방향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훗날에는 그리워질 것이라며 위로도 했다.


밥벌이의 종결은 늘 타인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버티는 것이 나은 법이며,

나 스스로 판을 정리하려는 노력조차 아까우니 힘을 아끼라는 그의 말이 나는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어쨌든 이 일은 내 밥벌이였고 병원 일도 직장생활이었으므로 나는 병원이 공식적인 지시로 관두게 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무감각 하게 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나 지리멸멸함 속에 떠밀려온 나는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다.

내게 '기대'나 '희망'이라는 말은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빙하기를 맞아 무기력하게 죽지 않으려면,

큰 조직은 '기술력'과 '민첩성'을 갖춘, 정예화된 기동부대같은 소규모 조직의 연합체로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두 사람이 공통된 생각이었다...

결국 정책이나 국가 사업은 같은 방향을 보며 의지를 가지고 집요하게 쫓는 이들에 기대어 살아남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