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앞에 두고 있다.
원본의 3권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새로운 사고를 들여다 본다는 의미에서 독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노동이다.
3주에 걸쳐 절반을 읽었다.
한 숨을 돌리며 밑줄친 글중에서 추려내어 적으며 음미해 본다.
참으로 인간이란 헛되고 가지각색이며 변하기 쉬운 것이다.
우리의 눈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지 않고 늘 저 너머에 있다.
공포나 욕망, 희망 등이 우리들을 늘 미래로 비약시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현실에 관한 고찰과 마음을 가리고, 장차 올 일, 다시 말하면 우리가 장차 세상을 떠날 날의 일에 관심을 갖게 한다.
장례의 절차와 묘지 선택과 장례의식은 고인에게 무슨 부조가 되기보다 오히려 산 자들을 위한 위안이다.
불행이 닥쳐 올 때면 우리는 무슨 원인이건 붙여 보지 않은 일이 있는가?
대들어 볼 상대를 찾기 위해 옳건 그르건, 어떤 것이나 되는대로 원망하며, 대들지 않는 것이 있는가?
일어나는 일들에 화를 내서는 아니되느니
신들은 우리들의 분노 따위에는 개의치도 않는 것을.
한가함은 항상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
급작스레 신속히 둘러대는 것은 재치에 해당하는 일이고, 천천히 침착하게 말하는 것은 판단력에 적합한 일이라고 본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그것은 소득 없이 자기를 괴롭히는 불행이다.
인색은 늙어서 모두 잘 걸리는 병으로, 인간의 모든 어리석은 수작 중에서 가장 꼴같잖은 일이다.
누구나 오래 불행하다는 것은 모두 자신의 탓이다.
죽음도 삶도 참아낼 용기를 갖지 못하는 자를, 저항하기도 달아나기도 원치 않는 자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공포의 충격을 참아내지 못해서 목매달아 죽고, 빠져 죽고, 뛰어내려 죽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공포는 죽음보다도 더 참아낼 수 없이 괴로운 일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예지와 사유가 결국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 한 점에 귀결된다.
매일 매일이 그대에게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기대하지 않은 시간이 오는 것을 감사로 맞이하라.
죽음의 예상은 자유의 예상이다.
죽기를 배운 자는 노예의 마음씨를 씻어 낸 자이다.
죽음을 알면 우리는 모든 굴종과 강제에서 해방된다.
우리 묘지들이 교회당에 붙어서 도시 사람들이 가장 자주 찾아가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친한 사람들이나 여자들, 아이들이 죽은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게 하고, 우리들에게 해골.무덤.장례 행렬 등을 늘 보아 눈에 익혀서,
우리 인간 조건을 알려주게 하기 위한 일이라고 리쿠르고스는 말했다.
우리들 앞서 지나간 영원한 태고의 세월들이
우리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음을 알라.
고귀한 일 가운데 위험 없이 되는 일은 없다.
우리는 기억력을 채울 생각만 하고, 이해력과 양심은 빈 채로 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지식을 받아 담는다. 그것뿐이다. 지식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불이 필요해서 이웃집에 불을 얻으러 가서는, 거기서 따듯하게 피어오르는 불을 보고 멈춰서 쬐다가 얻어 온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
배 속에 음식을 잔뜩 채워 보았자, 그것이 소화가 안되고 우리 속에서 변하지 않으면, 또 우리들을 더 키워 주고 힘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실 학문의 방법은 판단력의 방법보다 못하게 평가된다.
판단력이 있으면 학문은 없어도 된다. 그러나 학문은 판단력 없이는 안 된다.
감히 현명하여라.
시작하라, 잘 살아 볼 시간을 미루는 일은
강을 건너려고 물이 다 흘러가 버리기를 기다리는 촌사람 격이니라.
그 동안 강물은 흐르며,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철학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이며, 거기에는 유년 시절이라도 다른 연배들과 마찬가지의 학과가 있는 이상,
어째서 소년에게 그것을 가르쳐서 안될 일입니까?...
사람들은 인생이 끝날 무렵에 인생을 가르칩니다.
진리를 말하는 문장은 기교없이 단순해야 한다 -세네카-
내게 진실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가짜라 비난하며 경멸하는 것은 역시 어리석은 자부심이다.
이것은 일반인들보다도 좀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결함이다.
분명 큰 강이 아닐지라도
그보다 더 큰 것을 못 본 자에게는 크게 보인다.
한 나무와 한 인간을 두고도 그러하니, 모든 종류에게 각자가 본 가장 큰 것은 거대하게 보인다.
눈에 익혀 습관이 되면 우리 정신은 사물들과 친근해진다.
눈은 항상 보는 사물에 놀라지 않으며, 그리고 그 원인을 탐구해 보지 않는다. -키케로-
한 인간의 품위와 가치는 그 마음과 의지로 이루어진다.
여기 그의 진실한 영광이 있다. 용감성은 팔이나 다리가 아니고, 마음과 심령의 견고성이다.
우연은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일을 결정한다. -메난데르-
나는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습관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만큼 조심스레 습관은 나의 모든 행동을 제한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남이 침범하지 않는 아주 자기 고유의 것인 뒷방을 가지고, 그 속에 진실한 자유와 은둔처를 마련해 둘 일이다.
여기서 우리 자신과의 일상의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사사로워서, 외부와의 어떠한 관련이나 교섭도 그 곳에는 미치지 못하게 할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걷어채이며 둔중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 말게 하라.
자기를 추어 올리며 애무하라. 자기 이상과 양심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그들 앞에 잘못하면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자기를 다스리라.
"사실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퀸틸리아누스-
그대와 동무 하나만 있으면, 그대들 둘이 충분히 인생의 무대가 된다.
또 그대와 그대 자신만으로 족하다.
세상 사람들이 그대에게는 하나이며, 그대 하나가 그대에게 민중 전체가 되게 하라.
한가하게 집에 있거나 은둔에서 영광을 끌어 내려고 하는 것은 비굴한 야심이다.
자기굴에 들어가는 문턱에서 발자국을 지우는 산짐승의 본을 떠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해 주기를 찾는 것이 그대에게 필요한 일이 아니다.
양심은 우리를 공포심으로 채우듯, 마찬가지로 평안과 신념으로 채워 준다.
그리고 나는 내 의지와 의향의 깨끗함을 알고 있는 덕택으로, 수많은 위험한 경지를 더 확고한 걸음으로 걸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양심이 자기에게 주는 증명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공포나 희망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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