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산다는 것, 스스로 보기에 괜찮은 인간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존엄,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고 타인이 그에게 그 어떤 끔찍한 짓을 하더라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권리로 이해된다.

그러나 내가 이책에서 시도한 것은 다른 접근법이다.

내가 말하는 존엄이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이다. 그것은 사고와 경험, 행위의 틀이다.

존엄한 삶의 형태를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내가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차원은 즉 내가 타인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세 번째 차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우리는 각자가 경험의 중심체다. 우리는 경험을 함으로써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실감한다.

사람이란 내면의 시각과 내면의 세계를 지닌 육체적 존재다.

 

독립적이라는 것은 공허한 말과 듣기 좋은 격언에 의심을 품어보는 것이다

명확성과 전체 체계를 구하는 데 끊임없이 열심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신적 경계가 허물어지면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시선 아래 살아간다....

우리는 평생 동안 끊임없이 사회적 얼굴, 즉 체면을 다듬어나간다.

체면을 잃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무방비와 무력감을 뜻한다.

그러므로 체면을 잃는다는 것은 굴욕과 연결되어 있다.

 

내면의 경계선을 넘어갈 때에만 자기 존중감을 잃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자기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도 그것은 쉽게 상실된다.

 

인생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것은 다음 두 가지를 뜻한다네.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인정하는 것, 그런 다음에 세상을 향해 얼굴을 돌려 이렇게 외치는 거라네.

그래, 다 내가 했어! 아니, 더 좋은 건 이렇게 외치는 거야. 이 모든 것이 내 모습이야!"

 

인생의 성취를 내포하는 행위 하나하나와 그것의 중대성, 이들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의미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 발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걸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이 모든 것의 종착역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무서움이란 어떤 것을 경험하고 난 경우에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충격에 빠진다.

 

노화 또는 질병으로 인해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누가 빼앗아 간 것이 아니다.

서서히 진행되는 소멸의 과정일 뿐이다. 결국에는 관계를 이어갈 배우자도 곁을 떠나간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면할 일이 없다 보니 점점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고 마침내는 고독해진다.

친밀감과 애정의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다.

독립성의 상실과 친밀한 인간관계의 상실, 이 두 가지는 존엄성을 위험에 빠뜨린다.

 

시간ㅁ이 더욱 진행되면 우리는 그들의 정신이 뚝뚝 단절되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고와 의지와 경험에 있어서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오직 시간적으로만 연결된 개별적 에피소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의식의 일관성이 점차사라지는 듯한 그들을 보며 우리는 쇠약이 붕괴로 전이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생명을 유지하는 육체 기능이 정지되고 경험 주체로서의 인간이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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