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주는 글이 많이 있는 책이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 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다.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을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지닌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아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더니 점호장으로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진흙 바닥에 패인 웅덩이에 비친 하늘의 빛나는 풍경이

잿빛으로 지어진 우리의 초라한 임시 막사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감동으로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만약 강제 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킬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심각한 무감각 현상이 팽배해 있었다.

무감각은 수감자들의 감정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없게 되는 것이다. -도스토엡스키-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이제 내가 만든 이 이론에 왜 '로고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얘기하겠다.

로고스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 혹은 다른 학자들이 '빈 제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본다.

 

설문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 16퍼센트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

78퍼센트는 첫 번째 목표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실존적 좌절: 실존의 의미

- 존재 그 자체, 즉 인간 특유의 존재 방식

- 존재의 의미

-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즉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사람은 어느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히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근래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됐는데,

그것은 그간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어떤 때는 스스로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몰르 정도가 됐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자동화 과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가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의 공허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서'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 내면이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조건지어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각 개인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채로 남아 있다.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행복을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