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 노숙자,

그를 편의점의 알바로 고용한 전직 교사,

"불편한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일이 주요 무대다.

 

알코올성 치매로 인해 기억이 많이 날아간 그는 그저 "독고씨"라는 성인지 이름인지 애매한 호칭으로 불릴 뿐이었다.

 

"짜몽이 그러는데... 게임하면서 .. 삼각김밥...먹기 좋데요. 아들 게임할 때...줘요."

"근데 김밥만 주면... 안 돼요. 편지 ... 같이 줘요."

선숙이 고개를 들어 독고 씨를 바라보았다.

독고 씨가 선숙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그가 정말로 골든 레트리버처럼 보였다.

"아들한테... 그동안 못 들어줬다고, 이제 들어줄테니 말...해 달라고... 편지써요.

그리고... 거기에 삼각김밥...올려 놔요."

 

경만은 마음속으로 그 편의점을 '참새방앗단'이라 부르곤 했다.

그래, 오늘도 방앗간이지. 참새는 경만 자신이다.

그가 어릴적 [참새의 하루]라는 히트곡이 있었다. 송창식이 울렁울렁거리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노래는 소시민을 참새에 비유하여 생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아침이 밝았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재 너머에 낱 알갱이 주우러 나가봐야지. 아침이 밝는구나." 새나라의 어린이로 '국민학교'를 다니던 그때도 그런 노래를 흥얼거리며 공감을 했었지. 아무튼 그때도 그렇게 등교를 힘들어하던 열등생이었으니, 경만에게 인생이란 버거운 하루하루의 연속일 다름이었다.

 

오늘 밤은 '참참참'이다. 지난 몇 개월간 선택해 온 경만의 최적의 조합이 바로 이것 이었다.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 이것이 경만의 1선발이자 절대 후회하지 않을 하루의 마감이고 빈자의 혼술 최고 가성비가 아닐 수 없었다.

 

젊을 때는 실수를 해도 만회할 힘이 있었고, 숙취에 절어도 뜨거운 물 샤워 한 방에 털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회복찬력성은 게임 속 에너지 게이지가 닳아 없어지듯 그의 인생에서 빠르게 휘발되고 있었다.

 

"엄마가...... 아빠 힘들게 돈 버니까...돈 아껴 써야 한다고...편의점에 가면...원 플러스 원만 사라고...그랬다는 거예요.

거참, 정말 아, 알뜰하다 싶었고....애들이 참....자알컸다 싶었죠."

"....."

"어제부로 이 상품 다시...원 플러스 원 됐으니까, 오늘은 아버지가 사 가시면..되고,

내일부턴 딸들보고... 사러 오라고 하세요."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아니, 죄송할 건 없고요.... 좀 불편하네요."

"어쩌다 보니.....예, 불편한 편의점이...돼버렸습니다."

 

의사였다.

지금이라도 여기에 하얀 가운을 걸치고 메스를 쥐면 어떤 수술이라도 집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없이 마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 했다.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아차피 풀어야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고요.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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