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의 경계를 명확하게 설명한 책이다.
논리적이지도 증명이 되지도 않은 것은 사실이라 말하기 어렵고, 개인적인 감정이라 말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주장을 내놓는 사람은 그 주장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논문을 쓸때 뭔가를 주장을 할때, 그에 대한 논리적 증명을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그 주장은 타당성을 가질수 없다.
천체로부터 정기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이처럼 간단한 데이터를 이처럼 단순하게 해석하는 경우에도 과학자들이 깜박 속아 넘어갈 수 있다고 치면, 만약 더 큰 것이 걸려 있고, 감정적 경향이 작동하고 있으며, 나아가 증거가 훨씬 더 약하고, 믿고자 하는 의지가 훨씬 더 강하고, 회의적인 과학적 전통이 들어설 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종교의 영역에서는 말입니다.
"대화 도중에 권위를 증거로 제시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기억력을 이용하는 셈이다."
가령 바루흐 스피노자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항상 하느님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비유를 서서 이 세께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의미한 하느님이란, 우주의 물리 법칙의 총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중력 더하기 양자 역학 더하기 대통일장 이론 더하기 다른 몇 가지가 하느님과 등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하면서도, 그 하느님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물어봐서도 안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서 이것이 그냥 우주가 항상 여기 있었다고 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만족스러운 논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의식은 두뇌 건축구조에서 벌어지는 뉴런 결합의 수와 복잡성이 빚어낸 작용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결국 10의 11개의 뉴런과 10의 14개의 시냅스 같은 것을 여러분이 지니고 있을 때 생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여기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삶이란 불가능하다. -레오 톨스토이-
스피노자나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으로서, 이것은 더도 덜도 아닌 자연 법칙의 총합으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진리는 우선 논리적으로 무모순적이어야 합니다.
즉 그 자체로서 모순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몇 가지 논리적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가 아는 다른 것글과도 무모순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열의가 더 강할수록, 우리는 보다 더 회의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합니다.
증명의 부담은 항상 어떤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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