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를 누빈 식량학자, 바빌로프.

하지만 그 자신은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그의 원대한 노력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촛볼이 되었고, 그가 모아둔 다양한 종자는 후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이 책은 그의 탐사를 쫒아가며 바빌로프를 기린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남긴다"라는 오래된 말이 이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석유 고갈은 물 고갈로 이어지고, 물 고갈은 토양생명력의 고갈과 식량 고갈로 이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인류의 소비지상주의도 인류팽창도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하나의 한계에 도달할 때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주장이 있다.

기술 공학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진부한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류의 대다수는 이제 땅을 일구는 법을 모른다.

냉장고에서 이미 죽은 지 오래된 물건을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식탁에 내놓는 일에만 익숙할 뿐이다.


세계적으로 수천 개의 비정부단체가 여러 나라의 농업부를 비롯한 단체들과 함께 이른바 '개량한' 종자와 가축을 끝도 없이 보급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모델의 배후에 있는 것은 '근대화'라는 문화적 개념이다.

타자를 물신화하고, 지역주민들을 무식하다고 생각하거나 '과학의 혜택'을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발상이다.

이들에게 개발은 지배문화로 상승하는 것, 곧 고유한 문화와 독특한 환경을 무시하고 지배사회를 모방하는 것이다.


상트이사크 광장에 보관된 또 다른 인류의 유산은 바로 38만 개가 넘는, 발아 가능한 씨앗과 뿌리와 열매의 표본으로,

러시아의 세계적인 식물학자가 1894년부터 응용식물학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채집한 2500종의 작물에서 추출한 것들이다.


바빌로프의 동료 중 가장 헌신적이던 아홉 사람이 병으로 숨지거나 굶주림으로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자신이 돌보던 씨앗을 먹지 않았다. 물론 그들만 죽은 것은 아니다.

레닌그라드 봉쇄가 풀린 1944년 봄까지 70만 명이 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아사했다.


많은 경우 작물 다양성의 중심지는 종 분화 과정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지역이다.

식용으로 삼을 만한 식물종이 풍부한 이런 지역에 초기 인류가 무리를 지어 거주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

따라서 산악지대는 작물다양성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고대농업의 요람일 가능성이 높다.


식량다양성과 풍요, 건강과 식량안보, 즉 공동체나 국가가 영양결핍과 기아를 막는 능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 바빌로프다.

바빌로프는 그의 주요 저술에서 이런 관계를 충분히 증명했다.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을 겪은 후에도 주요 작물의 유전자 풀이 작을 경우 다양한 병충해저항력을 갖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작물다양성이 장기적인 식량안보를 보장해준다는 사실을 깩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기아와 영양결핍 문제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조차 그런 사실을 깨닫디 못하는 실정이다.


많은 환경론자들은 생물다양성 위험지대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의 서식지를 보존하자고 주장하면서도 작물다양성의 소실을 이상하리만치 간과하곤 한다.

작물다양성이, 예측하지 못했던 기후변화와 병충해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완충재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바빌로프는 지역에 적응한 다양한 품종을 심는 혼작이 단작보다 병해가 훨씬 덜하다는 점을 알아냈다.


"바빌로프는 엄청나게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항상 분주했다.

하루에 세 시간 반 정도 자면 충분했다. ...바빌로프가 아픈 적이 있었는데 ... 독감에 걸려서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하지만 그날조차 책을 늘어놓고 연구를 했다."


이탈리아 시골 사람들은 제철 채소와 과일을 맛보는 것을 대단히 좋아한다.

이름을 다 댈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채소와 가일이 제각기 다른 맛과 질감을 뽐낸다.


그레이트 리프트 계곡과 해안평야에서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고고학자들은 에티오피아 곡물 농업의 역사를 1만 5000년가량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다른 대륙보다 대략 3000~5000년정도 일찍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셈이라는 것이다.


잔갈리에프 박사는 사과의 기원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신망과 찬사를 받았다.

카자흐스탄이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을 비롯해, <사과: 유혹의 열매>의 저자이자 애플사이다 제조자인 프랭크 브라우닝, <욕망의 식물학>의 저자 마이클 폴란,

<사과 안내서>를 공저했으며 세계의 모든 과일 품종을 맛보았다는 조앤 모건이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알마아타는 '사과의 아버지'란 뜻이다. 무성한 사과나무 군락이 도시 주변 사방으로 펼쳐지다가 산맥을 이루는 산비탈에 이르면 정말 아름다운 숲이 된다.

카프카스 산맥 지역의 작은 야생사과와 달리 카자흐스탄의 야생사과는 상당히 크고 품질도 재배품종과 별반 다르지 않다...

1929년 9월에 도착한 덕분에 우리는 막 무르익은 사과를 볼 수 있었다.

이 놀랄만한 장소가 사과의 기원지라는 사실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수 있었다.


1943년 1월 16일, 지상의 모든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밝히기 위해 역사상 그 누구보다 애썼던 과학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는 만성적인 굶주림의 부작용으로 숨을 거두었다.


무엇보다 슬픈 아이러니는, 숨은 기아든 만성적인 기아든 기아선상에 놓여 있다고 분류되는 사람 중 절반이 농부라는 점이다...

가축을 기르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나물을 캐거나 짐승을 사냥하지만, 기아를 피할 만큼 충분한 소득이나 먹을거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기아선상에 놓인 이들 중 22퍼센트는 시골에 살지만 땅이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20퍼센트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기아의 근본 원인은 시략이나 땅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말이다.

라페는 40년 전쯤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를 저술한 후 세계의 기아문제와 관련해 정곡을 찌르는 지적을 많이 해왔다.

최근에 조지프 콜린스, 피터 로셋과 함께 집필한 <굶주리는 세계: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업정책 전문가인 앤드루 무시타와 캐럴 톰슨은 최근에 이렇게 주장했다.

"지구의 미래는 군사력이나 자본의 투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매일매일 어떤 음식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음식을 선택하는 문제는 생물다양성을 교환하거나 섭취하는 문제, 곧 우리의 집단적 영양과 자산이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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