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

몇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


경험이 늘어날수록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단순해 보이는 뇌 수술이 실은 얼마나 위험했는지, 그들이 무사히 행복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결코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반면 신경외과 의사는 잠시 동안이지만 천국을 느낄 수 있다.

지옥에 아주 가까이 가보았으니까.


시인들은 눈을 영혼의 창이라고 말하지만 눈은 뇌의 창이기도 하다.

망막은 뇌로 직접 연결되어 있으므로 망막을 살펴보면 뇌의 상태를 잘 알 수 있다.

눈 안의 가느다란 혈관들은 뇌 속 혈관들과 매우 비슷한 형태일 것이다.


심폐소생의 현실은 TV에서 보여주는 것과 매우 다르다.

생명을 살리는 영웅적인 행동이라기보다 비참한 폭행에 가까울 때가 많으며,

평화롭게 죽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나을 노인 환자들에게는 쓸데없이 갈비뼈만 부러뜨리는 경우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실패를 덜 두려워한다. 실패를 인정하고 나서부터 실패의 위험을 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에 저지른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면서 맞이하게 된 변화다.

이로써 감히 환자들과의 거리감도 조금은 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뿐만아니라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환자들과 똑같은 살과 피로 만들어져 있으며 똑같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하지 않는다.

나 역시 조만간 그들처럼 붐비는 병실 한편 어느 침대에 꼼짝없이 갇혀 내 목숨을 거정할 것이기에.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나자 인생이 훨씬 쉬워졌다.


그 가망없는 환자들을 상대로 일하면서 그토록 친절하고 솜씨있게 대하다니 볼때마다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때때로 그는 대소변도 못 가리고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실성한 노인들 틈에 가만히 서 있었다.

노인 뒤에서 하얀 웃옷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환자용 의자의 높은 등받이 위에 손을 얹고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게 다 뭐하는 짓일까?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거야. 이게 다 뭐하는 짓이냐고."


공기처럼 자유로운 내 생각. 책을 읽으려고 애쓰지만 실은 구름을 구경하는 내 의식.

지금 이 단어를 쓰고 있는 내 정신을 굳이 '마음과 뇌의 문제'라는 복잡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나의 의식과 자아가 실은 1000억개나 되는 신경세포들이 전기화학적 지껄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나는 그저 경외심과 놀라움을 느낄 뿐이지.

물질에서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문제로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책의 저자는 '마음과 뇌의 문제'에도 나만큼 매혹된 듯 보였지만.


온전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거의 없다면 과연 수술로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 그 환자를 위한 길인지 의문이 점점 커진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삶을 살 바에는 평화롭게 죽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보다 더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측하는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신경을 덜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후란 항상 불확실하기 때문에 무사히 회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의사로서 일을 쉽게 하려면 그냥 모든 환자를 수술해버리면 된다.

이를 통해 많은 환자들에게 끔찍한 뇌 손상이 생길 수 있고 그 환자들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어째서 삶에 그토록 간절히 매달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훨씬 덜 고통스러울텐데.

희망없는 삶은 가뭇없이 힘든 법이지만 생애 끝에서는 희망이 너무도 쉽게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배운 게 있다면 나쁜 소식을 전할 때는 가능한 한 적게 말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실수한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의사들의 실수가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함정일 뿐이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꽤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강바닥을 휘저으면 솟아나는 유독성 메탄가스처럼, 과거에 관해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실수가 표면으로 떠올랐다.

생각날 때마다 바로바로 써놓지 않으면 자꾸만 통째로 잊어버리곤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물론 어떤 실수도 잊을 수 없긴 했지만, 나를 밑바닥으로 내몬 실수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의사는 환자에게 설명할 책임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실수를 숨기거나 부인하지 않으면 의외의 결과가 기다리는 잠깐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환자와 그의 가족이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의사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그 의사는 용서라는 귀한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 셋 모두 어머니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우린 어머니에게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드렸다.

숨은 동기 따위는 없고 허영심이나 이기심은 눈꼽만치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사랑에 둘러싸여 있다는 건 아주 특별한 느낌이야." 돌아가시기 이틀 전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난 지금 좋았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단다." 현명하신 우리 어머니 말고 과연 누가 이토록 완벽한 죽음을 누릴 수 있을까.

건강하게 장수한 끝에 내 집에서 고통없이 빠른 기간에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맞이하는 죽음....

우리가 어머니와 맞이한 죽음은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 것이다.

많은 노인들이 차가운 병원이나 호스피스 시설에서 간호 전문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는다.

시설에서 노인들을 대할 때 짓는 걱정스런 표정은 호텔 로비 직원의 미소와 다를 바 없다.

등을 돌리는 순간 그 표정은 얼굴에서 곧바로 사라져버린다.


죽음이란 결코 쉽지 않은 순간이다.

우리의 몸은 발버둥치지 않고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는 가족에게 몇 마디 의미 있는 마지막 말을 남긴 다음 시간 맞춰 숨을 거두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질식하거나 기침을 하면서 격렬하게 죽거나 또는 혼수상태에서 죽지 않는다면 서서히 닳아 없어지면서 죽는 게 전부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기왕이면 자는 동안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 복은 그리 쉽게 오지 않으리란 걸 잘 안다.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어 오늘내일하며 얇은 끈처럼 시간을 보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우리의 자아, 느낌과 생각, 타인에 대한 사랑, 히망과 야망, 미움과 공포 모두 우리의 뇌가 죽으면 같이 죽는다...

신경과학적 관점은 반대로 물질이라는 것을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무언가로 격상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우리 뇌에는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가 들어 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의식의 조각을 가지고 있을까? 의식이 있으려면 다시 말해 아픔을 느끼려면 얼마나 많은 신경세포가 필요할까?

아니면 의식과 생각은 이 수십억 개의 세포를 한데 묶는 전기화학적 충격안에 살고 있을까?

달팽이는 지각이 있을까? 밟아 뭉개면 아픔을 느낄까? 아무도 모른다.


"삶은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일단 본인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모든 것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미심쩍어도, 아무리 실날같아도, 조금 남은 그 희망에 얼마나 매달리는지 과연 알기나 할까.

환자에게서 그 연약한 한 줄기 빛을 빼앗는 것이 의사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지 과연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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