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인 추격을 주는 흔치 않은 책이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의문을 품었을 법한 질문들이다.
대부분은 명확한 답도 없다. 하지만 이런 고민정도는 해야 인생에 대한 나름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은 인공지능으로 마무리된다.
우리 인간은 현재까지 제대로 살아 왔는가?
인공 지능이 보기에 우리는 사라져야 할 전염병으로 보일 거라는 저자의 말이 송곳이 되어 가슴을 찌른다.
라이프니츠는 '신'을 바로 논리적으로 필요한,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는 오메가라고 가설하고 '왜 무가 아니고 유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신이며, 신의 존재는 논리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왜 무가 아니고 유인가? 현대 물리학의 답은 단순하다.
물체와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무'는 양자역학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무'는 오래갈 수 없기 때문에 '유'이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는 랜덤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은 대부분의 문화에 존재한다.
인간의 뇌에는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기의 뇌는 젖은 찰흙같아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자유자재로 주물러지고 변형될 수 있다.
오리는 태어난 지 몇 시간, 고양이는 4부에서 8주, 원숭이는 1년, 인간은 약 10년까지 유지되는 '결정적 시기'에 겪은 경험을 통해 뇌 구조가 완성된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한 뇌는 아이슬란드에서 최적화된 뇌를, 카르타고에서 자란 뇌는 카르타고에 최적화된 뇌를 가지게 된다.
고향이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희망을 만든 원인, 바로 그 자체이다.
인생은 싸움이고 전쟁이다. 힘들고, 치사하고, 고통스럽고, 곧잘 자존심 상한다.
기쁨과 행복 사잉에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굴욕 사이 아주 가끔 조금 덜 불행한 날들이 허락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2,500년 전 그리스 권투선수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존재한다.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는 상처투성이의 몸과 마음을 달래며 직장으로, 학교로,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질문한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불행한 걸까? 왜 나만 어렵게 살아야 할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잘사는 방법을, 나만 모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 하나뿐이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변치않는 두 점 사이 매달려 있는 '인생'이라는 실.
문명과 과학이라는 얇은 페인트를 살짝만 긁어보면 드러나는 영장류 집단의 본질은 갑을관계, 즉 '계급 제도'라는 말이다.
인생에 절대적인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반가운 것일까?
의미가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정해진 목표와 용도가 있다는 말이다.
나에게 용도가 있으면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은 나와 상관없는 다른 무언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망치이고, 망치이기에 못을 박아야 한다.
의미있는 인생은 존재의 무거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생이다.
그렇다면 '나를 위한 인생'은 인생에서 절대 의미를 뺀 후부터 가능해진다. 삶의 의미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가벼워진다는 말이다....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고, '왜'라고 의미를 추구하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짊어진 무거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지각이라는 틀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각할 수 없는 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눈과 망막은 세상을 보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마음과 정신, 그러니까 바로 뇌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항상 지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실은 나의 오감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가장 큰 차이는 현실은 나에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내 엉덩이 무게에 저항하는 현실의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지만, 환각의 의자에 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실을 변경하려면 항상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현실에서는 공짜가 없다.
환상과 착각은 내가 더 이상 믿지 않으면 사라지지만 현실은 나의 믿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현실이다.
내가 없어도 현실은 계속 존재하지만 나의 환상은 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나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가설 아래 현실을 내가 없는 우주, '현실=우주-나'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지각과 의도로부터 독립시키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현실을 개관적으로 설명하고 응용할 수 있게 된다.
기억과 자아는 뇌가 정상 작동하는 동안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뇌가 죽으면 나의 모든 기억들이 파괴되고, 자아가 전멸되며 영혼도 끝난다...
영혼은 자아, 기억, 감정의 합집합이고 그것들은 뇌의 특정 기능들을 일컫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30년, 50년, 100년 후, 기계가 드디어 정보를 이해하고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의 발명도, 혁신도, 노동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니 누구도 인간의 노동. 혁신, 발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든지 기계가 더 빠르고, 더 완벽하게 그리고 더 저렴하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모든 물건과 서비스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10개의 인공지능 회사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지구는 무한의 부자가 되겠지만 99% 이상의 사람들은 직업도, 소득고 없어지지 않을까.
지구에서 소득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단 10명 뿐이라면? 100년 후 인공지능 시대에 과연 민주주의가 여전히 존재할지 궁금해진다.
새상은 복잡하다. 사소한 우연의 일치가 거대한 변동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역사를 바꾸어 놓을 같던 사건이 아무 이유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무한의 가능성과 무의미한 우연 사이의 싸움이다....
인간 사회는 유명인과 무명인으로 나뉜다.
내가 관심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보다 더 많다면, 나는 공동체의 배경인물이며 약자이다.
힘, 노력, 재능, 운 덕분에 내 행동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내가 관심주는 사람보다 더 많다면, 나는 공동체의 주인공이며 사회적 강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다음 세대가 사랑하는 모습이 아닐까?
노력도, 그리움도, 실망도, 질투도 없이, 잘 꾸며진 UI를 통해 오늘 밤의 연인을 고르기만 하면된다.
하지만 그리움도, 질투도, 실망도 없는 사랑을 여전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사랑은 왜 해야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절대적이며 외부의 그 어떤 존재와도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른다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들 간의 상대적인 관계이다.
하지만 무질서적 관계가 질서있는 관계로 변하기보다 질서가 무질서로 변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더 높다.
우리가 엔트로피 증가를 선험적인 시간 흐름의 방향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지구라는 통계물리학적 시스템에서 우리 뇌가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존재적 걱정은 언제나 약자의 과제이다.
강자는 존재의 정당화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사랑보다는 전쟁, 이타주의보다는 이기주의, 자비보다는 잔인함,
카르페 디엠보다는 '귀차니즘'과 시간낭비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에 막심 고리키가 빈정거리지 않았던가. "'인간', 참으로 오만한 단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어른의 삶을 비난하던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여행을 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낀다. 몸이 즐거워 마음의 질문을 잠시 잊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나만은 다르다'라는 착각으로 시작해 결국 '그래봐야 똑같다'라는 좌절로 끝나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런 우리를 지능 가진 기계는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그저 불쌍히 여길까? 아니면, 지구에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일종의 전염병으로 판단할까?....
인류의 모든 역사와 지식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보존할 기계들이기에, 인류의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듯, 기계도 호모 사피엔스를 멸종시키는 것뿐이라고. 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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