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해서 한층 깊이 이해를 주는 책이다.

인간의 뇌가 동작하는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인식한다는것, 자아는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도와준다.

독립적인 자아, 이를 통한 행복한 삶의 성취.

뇌를 들여다 봄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다른 측면에서 볼아다 보는 기회였다.



인간은 공간적인 존재이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고 있는 시간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육체와 다르게 정신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정신이란 어디에 존재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정신은 시간이라는 1차원에서만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신경세포가 세상을 보는 시야는 우리의 눈과 똑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은 170도로 보는 반면 일차 시각뇌의 신경세포들은 각자 1도 정도로만 볼 수 있습니다.


해가 아름답다는 것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철수와 영희가 사랑을 나눈다고 할 때, 철수가 사랑하는 것은 영희 자체가 아니라 철수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희가 사랑하는 것은 철수 자체가 아니라 영희 자신이 생각하는 철수입니다.

존재 자체보다는 존재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내가 아무리 나라는 주장을 해도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 사회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진공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라는 개념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계속해서 연결되는 존재를 우리는 나라고 부릅니다.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로 이어짐으로써 나는 나를 나라고 자각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나라는 자아의 핵심은 연장성이라고 했는데, 이 연장성은 손톱, 발톱, 머리카락, 간세포가 아닌 신경세포가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 자체가 뇌의 해석이라는 얘기입니다.

즉, 우리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그림자를 가지고 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지요.


과학적으로 뇌 한복판에 있는 클라우스트롬(전장)을 끄면 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밝혀졌습니다...

뇌과학에서는 우리 눈앞에 무엇인가 보일 때, 이것을 퀄리어(어떤 것을 지각하면서 느끼게 되는 기분이나 떠오르는 심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의식이 있고, 이것은 곧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좀비에게는 퀄리어가 없습니다...

좀비가 사람이 되려면 퀄리어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계가 진정 인공지능을 가지려면 퀄리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비요.


우리 뇌의 맨 아래에는 뇌의 시스템을 정지시키는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전원을 꺼버리는 영역이지요.

이 시스템을 꺼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기절해버립니다. 여기까지는 예전에도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그것은 퀄리어가 아닙니다. 단지 시스템의 작동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클라우스트롬을 끄자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좀비나 인형같은 또는 사이보그 같은 식물인간이 돼버렸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등은 오케스트라의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같은 악기의 역할을 한다면 클라우스트롬은 그것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개별 악기들을 혼자두면 잡음도 나고 불협화음도 생기지만,

지휘자가 자리를 지키고 시간적으로 순서를 정해주는 순간 멋진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빨강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신경세포들이 스파이크에 불과했더 것이 갑자기 빨간 장미의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만들어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무작위로 연결된 시냅스가 발달 과정에서 최적화되는데 이때를 '결정적 시기'라고 부릅니다.

모든 동물들은 저마다 특정 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시냅스가 발달하는 특정 시기가 있습니다.

오리는 태어나서 2~3시간, 고양이는 4~8주, 원숭이는 1년, 사람은 10~12년이 결정적 시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뇌가 마치 젖은 찰흙 같아서 자주 사용되는 것은 살아남고 사용되지 않는 길은 남김없이 지워져버립니다.

결국 경험이 하드웨어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인데, 이 시기가 끝나면 찰흙은 굳어버려 동일한 경험을 해도 뇌는 더 이상 변하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그 뒤로는 하드웨어는 변하지 않고 소프트웨어만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지요...

결정적 시기에는 과학이나 수학, 논리, 언어, 인권처럼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불변의 진리를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역사나 이념, 종교처럼 그 나라에 최적화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똑똑하니까 무슨 일이든 웬만큼은 하고, 착하니까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해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삶의 방향을 잃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웬만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는 있지만 결코 탁월한 성취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폭이 좁은 세상에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국을 넘어 세상을 폭넓게 경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광유전학 실험에서는 파란 빛을 쪼였더니 위쪽 세포만 자극을 받고 아래쪽 세포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드디어 '1,0'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뇌과학자인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라는 존재는 뇌에서 만들어지므로 뇌의 정보를 읽어(브레인 리딩) 다른 뇌로 심어주면(브레인 라이팅)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계속 예측 가능한 포인트가 바로 '나'입니다.

반대로 예측 불가응한 것은 세상이고요. 이런 방식으로 세상과 자아가 나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적인 거리를 '나'라고 느낍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들 뇌가 예측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한번도 육체를 가져본 적 없는 존재는 욕구가 없으니 고통도 느낄 수 없겠지요.

다만 과거에 몸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모든 운동세포가 죽어 자기 몸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눈동자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스티브 호킹 같은 분이 그렇지요.

하지만 이분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몸의 욕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이란 머스크처럼 큰 기업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냥 행복하면 됩니다.

돈을 아주 많이 벌든 멋진 책을 쓰든 간에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그럴 때 그냥 독립적인 자아를 가지면 된다고 얘기하면 됩니다.

사람은 성공을 모방하기 마련이니 이것이 생각의 바이러스가 퍼지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알렉산더 루리야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움베르코 에코 <프라하의 묘지>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자연과 그리스인>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대니얼 데닛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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