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넘어져보는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리얼리티입니다. 그런 인생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삶입니다.

 

웅덩이에 갇힌 시간도 내 삶의 귀중한 일부임을 인정할 것.

그 처한 곳에서도 삶을 누릴 것. 포박된 삶의 고통과 갑갑함을 기꺼이 껴안고 삶을 지속할 것.

즉 내가 처한 그 웅덩이 안에서도 내 삶이 진행되게 할 것.

당장 진전이 없을지라도 돌이켜 그 시간이 내게 귀한 경험이 되었던 때였음을 회상할 수 있게 처신할 것.

하루하루가 아픈 나날일지라도 때를 기다려 오늘을 열고 닫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

그 자리에서 썩어 주변과 함께 악취를 만들지 말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힘차게 여행을 떠날 것.

마치 웅덩이에 고였다가 새로운 물이 밀고 들어올 때 힘차게 바다로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물처럼.

 

저 나무 한 그루에게서 또 배웠습니다. 배롱나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자신의 지상부 전체를 버리는 선택을 해야 했으나, 땅속의 뿌리만은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추위가 계속되던 날, 나무는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몇년을 일궈온 자신의 것 대부분을 버려야 했습니다.

뜰을 온통 붉게 물들여 벌과 새를 부르며 자신의 하늘을 열고자 했던 꿈을 지닌 배롱나무에게 삶이란 그렇게 치열한 것이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뿌리에 숨겨 놓은 꿈만은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연 속에는 버려서 다시 시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버리되 뿌리를 지킬 수 있다면, 떨구되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다시 꽃을 피울 수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의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잘 나가는 국면으로 접어들 때건 험난한 국면으로 접어들 때건 가장 중요한 전략은 그 상황으로 내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무들은 겨울이 오면 그 시절에 맞춰 자신을 정돈합니다. 낙엽을 만드는 것을 보면 알 것입니다.

반면 여름이 오면 나무들은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제게 허락된 하늘을 향해 힘차게 자신의 잎과 가지를 뻗어나갑니다.

지금 숲에 드리운 푸르름의 힘찬 기운을 보면 알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나무처럼 새로운 국면의 실체를 자각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을 지혜롭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바람 불고 눈 내리며 추워진 시간의 협곡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안으로 깊어가는 시간을 보냅니다.

이미 만들어 놓은 겨울눈을 지키며 오로지 침묵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숲은 내게 간결함을 위해 먼저 멈추고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내 안에 이미 담겨 있는 씨앗과 새롭게 움튼 눈을 응시하도록 가르칩니다.

새롭게 성장할 때를 기다리되 협곡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나무들은 나목이 되어 자신을 지켜냅니다. 겨울엔 오로지 자신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더 이상 소비도, 생산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목은 무언가를 생산하려는 시도를 멈춥니다.

당연히 소비도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고요. 간결해지는 것이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만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에는 그렇게 버티는 것만이 큰 희망이고 수행인 시기가 있습니다.

 

삶의 나이

                       박노해<<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

우리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 삶의 나이라오.

 여의주: 익으면 열매가 벌어짐

 관상용 호박

 

관상용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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