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념의 모든 경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개념을 전달한다.

"고요함의 지혜" 이 책은 그걸 이야기 한다.

어쩌면 우주 만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인간이 나름의 생각을 부여하여 신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은, 현실이고, 자연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존재의 이유일 수도 없음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현재에 행동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념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왔으며 진정한 평화의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책 속의 소중한 글을 몇 가지 옮겨 본다.

 

진리는 당신 안에 존재하는 깊은 차원이며 사고보다 무한히 더 드넓은 것이다.

깊은 차원에는 생동하는 평화로움이 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멈추고 고요해질 때 지혜가 바로 거기 있다.

그저 보고 들어라.

그 이상은 필요 없다.

 

진정한 지혜는 고요함 속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창의력을 개발하고 해결하고 싶다면 고요함 속으로 들어 가라.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고 생각이 지어낸 좁은 자아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한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육체와 정신을 담은 틀이 잠시만 존재하는 무상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나의 실체이다.

깊은 차원에 존재하며 과거나 미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이다.

 

생각에만 골똘한 나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생각에 나의 자아상이 덧붙여진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 만들어낸 '나' 즉 나의 에고이다.

에고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런 에고에게는 두려움과 욕망이 그림자차럼 따라다니며 삶을 휘두른다.

 

머릿속에서 나인 척 하며 수다를 그칠 줄 모르는 목소리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생각의 흐름이 곧 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과거의 꿈에서 나는 깨어난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나의 본 모습은 그 목소리가 아니며,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며 다만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불행의 궁극적인 원인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습관이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더 낫게 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자아성찰적 목표를 세운다면 비록

목적을 달성한다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한 순간밖에 없지 않은가?

삶은 언제나 '이 순간'이 아니던가?

 

이 한 순간. 즉 지금이 내가 도망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며 나의 삶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오직 하나이다.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한 가지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도망칠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을 두 팔을 벌려 맞아들이고 친구로 삼는 게 어떠한가?

 

삶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는 것은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고 궁극적으로 는 착각이다.

과거와 미래는 생각의 형태이며 정신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이다.

과거는 오직 지금 현재에서만 기억될 수 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대에도 '지금' 일어났던 사건이다.

미래가 다가왔을 때는 이미 지금이 된다.

그러므로 진정 존재하는 것, 지금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혁신적인 정신 수행이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안에서든 밖에서든 말이다.

 

내면의 평화를 찾는 방법은 삶의 환경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당신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느끼는 극도의 충격은 의식으로 하여금 형상과 나를 동일시했던 과거의 습관을 한 순간에 놓아버리게 하기도 한다.

육체가 죽기 직전 마지막 짧은 순간에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나는 나를 형상을 벗어난 자유 의식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때 돌연히 두려움이 사라지고 한없이 평화로움이 찾아든다.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은 단지 형상의 해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음은 결국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의 몸이 나라고 생각했던 착각.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가? 고통을 끝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이든 마치 내 스스로 그것을 온전히 선택한 듯이 살아가라.

그렇게 나의 내면을 지금 이 순간에 조율하는 것이 고통을 끝내는 길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허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

 

고통스러울 때, 불행할 때 지금 이 순간의 현실과 온전히 함께 머물라.

지금 이 순간의 드넓은 공간 안에서는 불행이나 고통이 살아남지 못한다.

 

만성적인 육체의 통증은 가정 엄한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그 스승은 '저항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가르친다.

 

삶의 초월적인 차원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 보였던 것이 이제 순응을 통해서 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의성 왕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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