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은 힘없는 자들의 비극이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땅을 찾는다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그 자체를 보면 일방적으로 땅을 차지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히틀러에 의해서 핍박받을 때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겠는가?
인간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숨겨진 진실을 들여다 보며 경계함이 마땅하다.
1917년 디아스포라 이후 2천년이 지난 뒤, 영국이 하느님의 약속 어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당시는 강대국들이 거대한 포함과 함께 위대한 붓놀림을 자랑하던 시대였다.
인도산 먹물을 아낌없이 쓰며 벨푸어 경은 그의 '선언'에 서명했고,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을 준다는 영국의 약속을 얻어냈다...
시온주의란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 오랜 전통, 현재의 필요, 미래의 희망에 기인합니다.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를 탈취했고 그 이후 성서에 기록된 유대와 사마리아 땅은 유대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그들의 정책은 '선정착 후허가(이스라엘 정부 그리고 메시아의 허가)'였다.
그런 대담함으로 그들은 1972년부터 인근의 키리앗 아르바에도 정착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1979년에는 구쉬 에뮤님 일파가 헤브론시에 들이닥쳤고, 아직까지 눌러앉아 있다.
그드은 어떤 불경한 '가나안 사람'의 행동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게 늘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어두고 있다.
가는 도중, 그 삼촌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농업을 방해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자자 지구에서 웨스트뱅크까지 수십마일 거리를 트럭으로 농산물을 운반하려면 각기 다른 여섯 군데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차량 통과만도 다섯 군데의 허가가 필요하다.
농산물 유통허가를 받으려면 당국에 부가가치세 1만 2,000셰켈을 선납해야 한다(이스라엘 농부들의 경우 18퍼센트의 부가가치세를 공제받는다)
그런 제약 조건이 있고, 이스라엘 중개상을 상대해야 하는 문제점까지 겹쳐 가자 지구에서 유럽까지 선편으로 농산물을 수출하는데 드는 비용은 이스라엘에서
항공편으로 보내는 비용의 두 배가 된다.
아마도 가장 큰 어려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농업 용수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의 물을 이스라엘과 정착촌에 공급하는데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는 겨우 17퍼센트가 돌아간다.
여기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이 35퍼센트의 물을 통제하고 있으며,
정착촌에서 자꾸만 신설하는 200미터 지하수정 때문에 파레스타인 사람들의 우물물 염소함유량이 높아가고 있다.
이제 그물은 마시기에 적당치 않을 뿐 아니라 가자 지구의 농작물까지 시들게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
팔레스타인은 구약성서에서 모세와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고 한 '가나안'지역이다.
좁게는 현재의 이스라엘,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역을 포함하지만 넓게는 북부의 골란 고원과 레바논, 남부의 시나이 반도와 홍해까지의 지역을 포함한다.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대인의 선조 아브라함과 영원한 계약을 맺어 그의 자손들을 신이 선택한 민족으로 정한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그들의 영구 소유지로 약속한다.이에 따라 지금의 쿠웨이트 부근, 갈대아 지방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이 기원전 1730년경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그의 종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의 자손, 야곱은 흉년과 기아로 이곳에 거주하지 못하고 일족과 함께 애급(현재 이집트)으로 이주하게 된다.
극심한 흉년을 잠시 피할 목적으로 이주한 그들은 낯선 땅에서 무려 400여 년 동안 이집트 파라오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그후 기원전 1290년 경 선지자 모세는 애곱의 자손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20여년 동안 평야 생활을 하고 가나안 땅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에서 숨을 거둔다.
마침내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을 거느리고 약속의 당에 도착한다.
여호수아는 약 25년 동안 약속의 땅을 정복한다. 그리고 그 땅의 원주민들인 가나안 일곱 종족을 차츰 멸해 가며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필리스틴인들은 기원전 1006년경 다윗이 열두종족을 연합하여 예루살렘에서 최초의 유대 왕국인 헤브라이 왕국을 세울 때까지 존재하다가 가나안인들과 함께 유대인에 동화되었다. 다윗에서 솔로몬 (기원전 972~932)으로 이어지는 초기 왕정시대에는 통일 왕국을 형성했고 약 120년간 지속되었다.
그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국은 남북으로 나뉘게 된다.
북쪽 사마리아에는 열 개 종족이 모여 이스라엘 왕국을, 남쪽 에루살렘에는 두 종족이 모여 유다 왕국을 세운다.
하지만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1년 앗시리아에, 남쪽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네브카드네자르 각각 멸망당한다.
기원전 586년 유대국의 멸망으로 유대인들은 사실상 '디아스포라(망국의 유랑민)'신세가 된다.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322년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한 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등 1세기 반 동안이나 헬레니즘 세계의 지배를 받았으며,
기원전 63년 로마에 정복되면서 로마의 숙주, 유대주가 되었다.
131~135년에 일어난 두 번째 반란으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살해되거나 로마 제국의 변방으로 추방되었다.
135년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에루살렘을 재건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대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예루살렘에는 거의 유대인이 없고 티베리아와 제파트 같은 곳에 소수의 유대인이 살았다.
그 후 팔레스타인은 비잔틴 제국의 영향아래 있다가 637년 아랍인이 진출하면서 이슬람 제국에 편입되었다.
이때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이슬람교도로 개종하였고, 십자군 원정을 통해 기독교 세력의 예루살렘 수복이 몇 차례 있었으나,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17년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위임 통치하에 들어가기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은 통치자는 바뀌었으나 이슬람 제국의 한 부분으로서 아랍인들이 거주하였고
주민의 대다수가 아랍인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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