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말.

즉, 악인과 선인은 구분되어 있지않고 언제든 상황이 된다면 보통의 사람은 그런 성향으로 치우친 행동을 하게된다는 의미다.

집단적인 휨쓸림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다.

왜냐하면 인간 대부분은 분위기가 이끄는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이 그랬고,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일본인이 그랬다.

그들은 잔혹한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대중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각 개인의 의지로 세상을 바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유럽 어디를 가든 체제를 전복하려는 소수의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서유럽의 인도주의와 정의의 정신 덕분에 보호를 받으며 언제든 인화성 강한 횃불을 치켜들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사상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현재 인구 중에서 상당히 지적이고 심리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계층의 비판적인 이성뿐이다.

그러나 이 계층의 크기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심리적 전염에 맞설 때에도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또 그 공격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일어날 것인지를 알 때에만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우리는 통계적으로 세상을 그리는 관행이 심리에 미치는 효과를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종교는 경험의 비이성적인 사실들에 대한 의지와 복종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동체의 가치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의식이 없다면, 직설적으로 말해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것은 정신에 의해 의식적으로 곰곰 생각되고 표현될 때에만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존재의 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에서 개성을 간직하려는 의지는 이기적인 고집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지를 과학은 주관주의라고 폄하하고, 교회는 이단이거나 영적 자만이라는 식으로 도덕적으로 비난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다수가 모인 곳에는 안전이 있다.

다수가 믿는 것은 당연히 진실임에 틀림없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분명 추구할 가치가 있고 또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선한 것임에 틀림없다.


대중인간의 유치한 꿈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 낙원의 비용을 누가 대는지에 대해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회계의 균형을 맞추는 책임은 보다 높은 정치적 또는 사회적 권위자에게 있다.

이 권위자는 그런 임무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권력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권위자가 권력을 더 많이 가질수록, 개인은 더욱 나약하고 속수무책인 존재가 된다.


거의 모든 것이 인간의 영혼과 그 기능에 의존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우리가 쏟을 수 있는 최대한의 관심을 받을만큼 가치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미래의 행복과 불행이 야생동물의 공격에 의해서도 아니고 자연재앙에 의해서도 아니고 세계적 전염병의 위험에 의해서도 아니고

바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의 변화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오늘날엔 인간의 정신에 관심을 특히 더 많이 쏟아야 한다.


유럽 전체 역사를 통해 기독교 국가들이 자행한 야만과 대량학살과는 별도로,

유럽인은 또한 식민지화 과정에 검은 피부의 사람들에게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나타나 그 안에 거주하는 악은 무서울 정도로 크다.

그렇기에 교회가 원죄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뿌리를 아담이 이브와 함께 저지른 비교적 사소한 잘못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악은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하며, 대단히 과소평가되어 있다.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의식이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그대로라고 믿는다.

그때문에 사람은 스스로를 무해한 존재라고 여기며 또 그렇게 생각함으로서 죄악에다가 어리석음의 잘못까지 저지르고 있다.

사람은 예전에 가공할 만한 일이 일어났고 또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가공할만한 짓을 저지르는 자는 언제나 '타인들'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가 가까운 과거나 먼 과거의 일일 때, 그 행위들은 재빨리 망각의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악이 원래부터 인간의 내면에 있다는 관점을 받아들일 경우 누릴 중요한 이점은 인간의 양심에게 지워진 매우 무거운 책임을 더는 한편

악에게 그 책임의 일부를 떠넘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창조한 존재이기보다 자신의 정신적 구조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심리학적으로 제대로 인정하면서 말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가슴 안에서 보지 못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의 가슴 안에서 보는 그 악에 대한 두려움이 매번 이성을 마비시켜 놓는다.

사람들이 그 무기의 사용은 곧 우리 인간 세계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행복과 만족, 영혼의 평안, 삶의 의미, 이런 것들은 오직 개인에 의해서만 경험된다.

국가에 의해서는 결코 경험될 수 없는 것들이다.


개인이라는 아주 작은 단위가 이 세상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또 이 세상은 그런 개인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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