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은 에라스무스가 세 번째 영국 여행을 하던 중 토머스 모어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풍자문이다.
스스로를 <어리석음의 우신>으로 세우고 자유롭게 떠들 수 있다는 바보의 신성한 권리를 능란하게 이용하여,
에라스무스는 웃음이 섞여 들어간 재치 넘치는 해학과 함께 세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우신 예찬]은 발표되자마자 학자와 성작자의 분노를 샀고 에라스무스 사후에는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어리석음이 국가들을 탄생시켰으며, 아리석음을 통해 제국과 관리와 종교와 의화와 법원등이 유지되어 왔으므로,
한마디로 인간 세상 모든 일들은 전적으로 어리석음의 독무대라 하겠습니다.
공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니와, 재능을 쏟아 부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다양한 분야를 이룰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긴 것은 명성에 대한 굶주림 이외에 달리 무엇이겠습니까?
...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여러분이 이렇게 일에 쏟은 타인의 광기를 먹고 산다는 점입니다.
먼저 신중한 처신은 밝은 세상 물정에 기초합니다.
그럼 다음 둘 중에 어느 쪽에 이런 명예로운 이름이 잘 어울리겠습니까? 소심함 때문에 혹은 영혼의 유약함 때문에 아무것도 감행하지 않는 현자이겠습니까?
아니면 애초에 갖지 않은 겸손함에 구애받지 않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험에 방해받지 않으며 아무 일에나 덤벼드는 어리석음이겠습니까?
현자들은 선현들의 책 속으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세상에 물들지 않은 지혜를 익힙니다.
어리석은 자는 세상일에 뛰어들어 가가이에서 겪으며 모험을 감행하며 이로써 신중한 처진 방법을 얻습니다.
시대와 불화하는 지혜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으며, 세태를 거스르는 처신보다 신중하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어리석음을 부여잡고 깨닫지 못한 채 잘못 알고 속으며 무지 가운데 살아가는 것.
그런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철학자들은 말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어떤 것도 자신의 본성을 따른다 하여 불행하다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어리석음은 하등 불행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천품인 까닭입니다.
다음으로 교회학자들은 조용히 지나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들은 거만하기 으를데 없으며 매우 성마른 부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잘못 건드리면 이들은 6백개의 논변을 가지고 떼거리로 달려들어 내가 말실수했다고
승복할 때까지 공격할 것이고, 내가 주장을 꺽지 않으면 내낸 오나악하게도 나를 이단자로 몰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누군가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이런 방식의 날벼락으로 사람을 겁주곤합니다.
운명의 여신은 생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며, 무모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반면 지혜는 사람을 소심하게 만드는 바,
결국 지혜로운 사람들이 가난과 기아와 헛된 희망 가운데 천대받으며 각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여러분은 보았을 것입니다.
진실 그 자체는 수용성이 떨어지지만, 이를 재미있게 가공할 경우 사람들 마음속으로 쉽게 파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쓰라린 부분이 있어 나 자신을 돌아보았더라도 나는 상처받은 티를 내지 않고 이를 숨기며 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내가 사려깊은 사람이라면 나는 이에 교훈을 얻어,
어떤 사람은 익명으로 당하는 비난을 앞으로 나는 실명으로 받을지도 모르니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진실 전부를 언제나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리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에라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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