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죽음

모든 소유물이 없어지는 거야!.

죽음이란 건 그런 걸 모두 잃는거지.

죽음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평생 마음 쏟은 일들과 소유물,소망,게다가 우리의 정체성까지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야.

 

제대로 보면 말이야, 내 이름도 내가 아니고, 나의 직업도 내가 아니고, 바닷가 별장도 내가 아니지.

살면서 미리 죽음을 받아 들이면 그런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데 익숙해져.

그런 것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일시적이고 우습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깨닫게 되지.

 

땅을 파보면 썩어서 티끌로 돌아간 육체대신 남은 뼈들이 나와. 모두 생명의 찌꺼기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죽었는지 상상할 수 있겠니?.

그것들이 다 저기 있는 거란다.

우리는 한 없이 거대한 공동묘지를 그저 계속 달리고 있는거야.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어.

물론 문제도 있었지만 심각하진 않았지.

다만 어머니가 안타까워 보였어. 돈이 없어서 줄곧 고통을 당했으니까. 수치스러운 일을 겪는 것도 보았고.

 

전당포에 가보니 그렇게 대단해 보였던 우리 부모님도 알고 보면 한 없이 약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거야.

그런 수치가 내 삶의 원동력이였단다.

아직도 기억에 선한 게, 그 어린 나이에도 " 이 좁은 동네를 박차고 나가야겠다."라는 마음이 간절했어.

 

부자 친척집에 놀러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지.

하지만 그건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말했어. "벌써 먹고 왔어요". 뭐랄까. 그런 힘, 그런 원칙이 확실했지.

옷차림에는 늘 신경을 썼어. 남의 집에 갈때는 반드시 제대로 차려 입었지. 안그러면 흉잡히니까.

가난하고 힘도 없는데 얼간이처럼 보여서야 되겠니?.

천만의 말씀이지. 나도 너 못쟎게 품위 있다!. 벌써 배터지게 먹었는데 내가 네 고기를 왜 먹냐!.

이런 자세를 가져야 했던거야.

또하나 중요한건 가족이였단다. 짜증나는 삼촌이 매일 저녁 찾아와도 반갑게 맞아야지. 가족이니까.

가족은 무조건 서로 믿고 도와야 하는 거 아니겠니.

그게 바로 우리 부모님들이 지켜왔고 또 나에게 물려준 가치관이란다.

 

"개미의 생활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기서 온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열정과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어떤 주제에 몰두하면, 그게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그걸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모래 알에서 세계를 보고,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한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지.

 

같은 시간을 산다고 해서, 다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죽음에 직면하니까,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별로 유감스러운게 없더구나.

분명한 건, "빠바방!" 그러면 난 이제 세상에 없는 거라는 것 뿐이었지.

 

혁명이 터지면 사람들은 그 새로움에 열광하면서 거기에 휩쓸려 버려. 혁명은 마치 어린애같지.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만면서 추하고 야비한 어른으로 변하거든.

모든 혁명의 탄생의 순간에는 뭔가 황홀한 데가 있어. 혁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약속하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거짓된 모습이 드러난단다.

 

늘 그러셨쟎아요. 무서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똥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변기에 앉은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했지. 상대가 누구든 주눅들 것 없어.

누가 폼을 잡으며 장군처럼 으스대거든 그자가 아침마다 똥 누는 장면을 생각해 봐라.

남들과 다를 바 없지.

 

세계의 아름다움이란 그 다양성에 있는 것이지. 그런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삶의 토대인데 말이야!.

난 인류의 풍요로움이 그 다양성에 있다고 확신해.

 

내가 좀팽이에 겁쟁이에 무능력자였다면 넌 아마 이렇게 투덜거렸을거야.

"에이 좀팽이. 나한테 준게 대체 뭐야?. 뭘 배울게 있어야지!."

반면에 나를 능력있는 아버지로 느꼈다면 이랬겠지.

"와, 정말 우리 아버지 때문에 정말 숨 막혀 죽겠어." 하지만 난 나고 넌 너야.

그러니 적당히 타협접을 찾아야 해. 아버지가 위압적이다?.

좋아. 그래도 네 나름대로 전략을 만들면서, 적당히 지낼 줄 알아야지.

 

첫 걸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는 게 중요하지.

그래야 다음 걸음을 제대로, 크게 내딛을 수 있어

시작이 좋아야 순탄하게 진로가 개척되지.

 

"진리는 길 없는 땅이다." 길은 가는 사람이 찾는거야.

누구도 너한테 " 봐라, 저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말해주지 않아 . 그럴 수 없지.

정해진 길을 따라 가면서는 절대 새로운 길을 발견하지 못해.

뭔가를 추구할 때도 마찬가지야.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결코 찾을 수 없어.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거야. 확실한 것, 잇숙한 것들에 대한 포기.

뭔가를 추구한다는 건 낯선과정이고 대단한 결단을 요하는 일이거든. 누구나 익숙한 것 안에서 살아가는 게 편하니까.

아침 여덟시에 기차가 떠나고, 아홉시에 은행 문이 열리고, 행실은 발라야 하고, 돈을 훔치면 안되고 등등 말이야.

하지만 익숙한 것을 떠나서 남들이 많이 다녀보지 않은 길을 찾거나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한다면 비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어.

 

내 육신은 죽더라도 ,같은 길을 가거나, 같은 가치를 믿는 사람을 통해서 내 정신의 일부나마 남아 있으면하는 소망말이야.

네가 인생에 대해서 뭔가를 안다면, 자신의 파편을 모아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은 이 소망을 이해할 수 있을거다.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가 그 작은 꾸러미겠지.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거 말야.

진정한 삶, 내게 맞는 삶, 자신을 올바로 이닉할 수 있는 삶을 사는거지.

 

갈림길을 만나거든 오르막길을 택하거라.

올라간다는 건 희망을 품는거니까.

 

물론 누구나 마지막길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단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죽을 수는 없는거지.

그러나 문앞까지는, 의식이 있는 한, 나는 네 엄마 손을 잡고 가고 싶단다.

 

인간이 죽는 건, 태어났기 때문이야.

젊을 때는"죽음은 다른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죽음이 삶의 일부이고 삶에 통합될 수 있는 것이란 걸 배우고 깨닫는다면, 삶이 휠씬 아름다워져.

삶과 죽음의 대조만큼 삶이 더 풍부해지겠지.

그걸 이해하려고 바로 죽을 필요는 없어.

마음편히 백살정도 살수도 있지.

하지만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는 걸 깨닫는 건 정말 중요해.

 

신기하지 않니. 자연은 그냥 제 갈길을 가.

네가 죽는다고 자연이 신경이라도 쓸까?.

네가 병들어 고통스러워 한다고?. 아니야.

풀코야. 그냥 흘러갈 뿐이야. 모든 게 흘러가. 병도 고통도.

 

그게 바로 자연이 주는 위대한 교훈이야.

한 순간이라도 멈춰 서서 부드럽고 은밀하게 바람에 나부끼는 자작나무 이파리들을 관찰해 봐라.

그럼 내 육신이라는 것도 하찮다는 걸 이해하게 돼. 자연은 눈부실만큼 무심해.

자연을 흔들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왜 우리는 자연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걸까.

흥분하지도 않고 울음을 터트리지도 않는 법을 말야.

그러면 호들갑떨지 않고 모든 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거야.

그래봐야 아무것도 아니지. 무엇을 위한 일도,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야.

이나무를 위한 것도 이 풀밭을 위한 것도 아니고, 하찮은 노란 꽃을 위한 것도 아닌야.

그런 존재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매일매일 자라고 변화하며 이 거대한 전체의 일부가 돼.

 

난 내생명이 이제 사라질테지만 그러면서도 사라지지 않을거라는 걸 알아.

왜냐면 나도 여기 이 모든 나무들과 같이 생명 그 자체의 일부이기 때문이야.

이 우주의  생명속으로 녹아들어서 그 전체의 한 부분이 된다는 건 장말 경이로운 일이야.

나의 생명은 결코 나만의 생명이 아니야.

존재의 생명이고 우주의 생명이지. 난 단지 그 일부분일 따름이야.

따라서 내가 내 육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 내겐 잃을게 없어. 아무것도.

 

무상함이야말로 늘 도처에 있고 믿기 어려울만큼 대단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도 결국은 스러져간다는 걸 아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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