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자신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고려해 보아야 할 것들을 이 책은 주제로 다룬다.
우리는 현재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자기성찰의 출발점이다.
"사람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적 동물,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이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사람은 그때까지 읽은 책이다"라는 말이 있다.
스폐인의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는 지극히 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감옥에 하나의 창이 나 있다. 놀랍게도 이 창은 모든 세계와 만나게 해준다. 바로 책이라는 이름의 창이다."
프랑스 사화과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지적 인종주의'라는 말로 학업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것에 일침을 가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가 없어 지배세력에게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산하는.
비교라는 단어는 오로지 남과 견준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것이 대학 간판이든 명함이든 소유물이든 남과 가진 것만으로 비교할 뿐,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된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보다 더 성숙한 내일의 관계를 비교하지 않는다.
존재와 관계의 끊임없는 자기성숙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자랑한다. 유럽 나라들이 대학교육을 무상 또는 준 무상으로 한 때가 1인당 국민소득 수준 1만 달러 이전이었음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물적토대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대학에 가길 강요할 뿐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구성원들 각자에게 부담시킨다.
"논리로 안되면 인신을 공격하라."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키케로의 말로 전해진다.
토론이나 논쟁을 할 때 상대방에게 논리로 밀릴 것 같으면 상대방의 인신을 공격함으로써 자리를 모면하는 사람들을 빗대서 한 말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21세기에 "논리로 안되면 인신을 공격하라"는 키케로의 말을 아주 잘 따른다.
우리는 어렸을 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 주눅들어야 했고 결국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죽였다.
가장 가까운 엄마와 아빠에게 거부당한 '왜?'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던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학교를 비롯해 어디에서도 '왜?'라는 질문을 감히 던지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수평적인 관계의 대화와 토론은 없다.
진보 의식의 성숙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부정의 과정을 단 한 번 거친 것으로 만족하는 '진보하지 않는 진보의식'이라는 형용모순에 빠진 것이다....
대중과 유리된 진보의식은 사회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조급증으로 권력집착증을 낳기도 한다.
대중의 구체적 삶에 밀착하여 어렵고 느리더라도 대중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진보하는 진보이식이 요구된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8시간 노동제에 오랜 노동운동의 피와 눈물이 담겨 있듯이, 정규직에도 오랜 노동운동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권은 직접 싸워서 획득한 것이 아닐 때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어려우며 민주주의가 후퇴할 때엔 빼앗길 위험에 처한다.
바로 그 위험이 21세기 한국 땅에서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의 택시기사들이 불친절하다 하지만 택시기사들만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돈 없는 사람들에겐 모든 한국 사람들이 불친절한 것 같다."
이미 부정적으로 의식화되어 있다. 진보 정당은 어떤가? 한국사회구성원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당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물론 대부분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주장한다는 것쯤은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알고 있는 게 있다.
'접근해선 안되거나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나는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다는 것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인간의 자발적 반란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때문이라고 전망한다.
자본을 매개로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인간의 반란이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을 인간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때가 기어이 올 것이고,
그 때까지도 자본주의는 탐욕스런 아집을 계속 부리겠지만 끝내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전쟁 수행자들이고 인간 문명은 이들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자연의 반란은 지배, 피지배 관계를 뛰어 넘어 인간과 자연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인간은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싸우기도 하지만 살아남으려고 굴종한다.
인간이 억압과 착취에 굴종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면 억압과 착취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죽는 대신 굴종을 택한다. 인간의 삶은 모진 것이며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계속된다.
자연은 인간의 억압과 착취에 굴종하지 않고 스스로 파괴되어 죽는다.
자연이 놀라운 북원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인간의 파괴행위는 속도에 있어서 자연의 복원력을 앞지른다.
그리하여, 자연의 죽음 앞에서 인간은 끝까지 발버둥치겠지만 인간 또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일부이므로 함께 죽을 수 밖에 없다.
"신은 우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 -마하트마 간디-
마름의 속성은 '자발적 복종'에 있다.
16세기에 열여덟 젊은 나이에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쓴 에티엔느 드 라 보에타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에 관하여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으니 그것이 곧 자유이다.
우리가 만약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곳곳에 악이 창궐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도 어떠한 맛과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자발적 복종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며
자유만이 유일하게 선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몰상식의 자양분이며 영악한 자들이 뻔뻔하게 군림하는 토양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열성과 집요함을 보이는 집단은 광신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이다.
18세기에 볼테르는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런 일이지만,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라는 말로 근대 시만의 자격 요건을 제시하였다....
오늘 한국에서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열성을 보이는 집단은 두 부류다. 하나는 함께 교회에 가자는 사람들이며 다른 하나는 '조중동'을 구독하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재된 열성에 따라 쉼 없이 대중을 찾아다니며 헤게모니를 구축할 힘을 키우는 데 우리는 일상의 만남에서도 대중을 설득하지 않는다.
20대에 반나치 투쟁에 참여했다고 붙잡혀 수용소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일흔 살을 앞두고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자본주의 생활 방식의 특징은 '제로섬' 게임에 있다.
주고맏거나 빠앗고 빠앗기는 물질의 합은 항상 '영'이다.
내가 획득할 때 너는 빠앗겨야 하고, 내가 승리하려면 너는 패배해야만 한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하는 것은 이러한 성질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라는 것이다.
그대의 탓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인간성은 너무 오염되었다.
물신은 밀물처럼 일상적으로 그대를 압박해올 것이며, 그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질의 크기를 비교당할 것이다.
그것에 늠름하게 맞설 수 있으려면 일상적인 성찰이 담보한 탄탄한 가치관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기성숙의 모색을 게을리 하지 말라.
자아실현을 위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그리고 성찰 이성의 성숙 단계가 낮은 사회에서 그대는 자칫 의식이 깨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에 앞서 오만함으로 무장하기 쉽다.
만약 그대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고 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성숙의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맹자는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인간의 조건으로 수오지심과 함께 측은지심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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