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데에서 연도는 어떻게 건너 뛸 수 있을까?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이이였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의문이 풀렸다.

1880 - 1891 - 1907 - 1908 - 1910 - 1911 - 1913 - 1914 -1917 - 현재

이 소설에서의 시간의 흐름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작가가 쓰고 싶은대로 쓰면 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보여준다.

나는 왜 형식에 집착을 했던걸까?

이 소설은 연도도 마음대로 이지만 내용도 전개도 지은이의 구미대로 전개된다.

그래 작가는 모두 자신이 쓰고 싶은대로 쓴다.


이 소설은 소소한 일상들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풍경화를 설명하는 듯하다.

긴장이 고조되고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도 찾기 힘들다.

소설 전체를 통해서 등장하는 엘리너가 이야기의 골격을 유지해 준다.

아! 하나 더 중요한 게 있다.

느림의 미학을 느끼고자 한다면 이 소설을 읽으며 천천히 시간을 음이해 볼일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삶의 영역이 생긴다는 것은 어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공간과 삶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즉,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들이 독립을 한다는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아벨 대령(아버지), 에드워드, 밀리, 델리아, 마틴, 엘리너, 로즈, 모리스....

인상적인 글귀를 옮겨본다.


가을 바람이 영국 전역에 불었다. 바람은 나무들로부터 잎사귀를 잡아 당겨 노랗고 빨갛게 팔랑거리며 떨어지게 하거나, 넓은 곡선을 그리며 나부껴 굴러다니게 했다.

도회지에서는 돌풍이 모퉁이를 돌아와 여기서는 모자를 벗겨 날리고, 저기서는 여자들의 베일을 머리 위 높이 휘날리게 했다. 돈은 매우 빨리 유통되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성 바울 성당 부근에 있는 사무실의 경사진 책상 위에는 서기들이 줄펴진 문서 위에서 그들의 펜을 멈추곤 했다.

휴가가 끝난 다음에 다시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마게이트와 이스트본과 브라이튼이 그들의 얼굴을 구릿빛으로 그을렸다.

참새와 찌르레기들은 성 마틴 성당의 차양 주위에서 불협화음으로 지저귀며, 지팡이나 둥글게 만 문서를 들고 의회 광장에 서있는 말끔한 동상들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임항열차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운하를 출렁이게 하고, 프로방스의 포도들을 흔들어 떨어뜨렸으며, 지중해의 그의 배에서 등을 갈고 누워 있는 게으른 어부 소년을 뒹굴려 밧줄을 잡게 만들었다.


그녀는 상자의 뚜껑을 들어보았다. 역시 비스킷 네 개와 옅은 색의 초콜릿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 밤에 배가 고플까봐 준비한 것이었다.

셀비아는 <어떤 무명인사의  일기>, <러프의 노섬버랜드 기행>, 그리고 단테의 이상한 책 등, 엘리너가 밤에 책을 읽고 싶을까봐서 책도 준비해두었다.

그녀는 책을 한 권 꺼내서 곁에 있는 침대 겉덮개 위에 놓았다.

아마도 그녀가 여행중이어서 그럴테지만, 아직도 배가 부드럽게 바다를 지나고 있는 것 같고, 아직도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프랑스를 지나느라고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떠나게 되어 기뻤지만, 크로스비에게는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이었다.

그녀는 저 크고 산만한 집에 있는 찬장, 판석, 의자, 식탁 등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것들을 알았던 것처럼 5,6피트 떨어진 거리에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직접 문지르고 닦으면서 그녀는 홈과 얼룩, 포크와 나이프, 냅핀과 찬장 따위를 속속들이 다 알았다.

그들과, 그들이 하는 일이 그녀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리치몬드의 독방으로, 혼자서 떠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크로스비, 안녕."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몸을 굽혀 크로스비에게 키스했다. 그녀가 건성 피부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엘리너 자신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로버를 쇠사슬에 매어 잡고 있던 크로스비가 계단 아래의 보도로 한 발 한 발 내려가기 시작했다.

끔찍한 순간이었으며, 불행하고,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잘못된 순간이었다.

크로스비는 너무도 애처로웠고, 그녀는 그렇게도 기뻤다.

그러나 그녀가 열린 문을 붙잡고 서 있는 동안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흘렀다.

그들은 모두 여기에 살았고, 모리스가 학교에 갈 때면 그녀는 여기 서서 손을 흔들었으며, 크로커스를 심곤 했던 조그만 정원도 여기 있었다.

이제 크로스비는 검은 보네트 모자 위에 눈송이를 맞으며, 로버를 팔에 안고, 마차에 올라탔다. 엘리너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사람들은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 기능이 약화되고 정신력 또한 낡아빠져간다는 것을 뜻했다.


공습이 있은 후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녀는 웨스트민스터에서 레니와 매기와 함께 저녁을 먹었었다.

그들은 석탄저장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니콜라스- 그것이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가 전쟁이란 참으로 하찮은 것이라고 말했었다.

"우리들은 뒤뜰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노는 아이들이에요."


"여행이란 너도 알다시피, 뱃전이라든지,

그밖에 여행자가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만 하는 저들 협소한 장소에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야만 하는 고단한 노정이지...."...

"너도 여행을 좀 다녀야 해.

반나체의 원주민들이 달빛 속에 강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단다.....저기 그 집이 있군......"


"나는 다리 위에 서 있었지. 그리고 말했어.

나는 하루에 두 번씩 무의미하게 밀려오는 조수 위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는 해초인가?"


어떤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수록 시들어가고, 어떤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노스는 생각했다.


나의 인생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었어. 엘리너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모리스의, 친구들의, 그리고 니콜라스의...... 그와의 대화가 단편적으로 그녀에게 떠올랐다.


세상에서의 행복.....그녀는 생각했다. 살아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음악이 멎었다.....

그녀는 먼곳에서 들리는 런던의 밤의 소리를 들었다. 경적이 울리고, 강위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다른 세상, 이 세상과 무관한, 깊은 밤에 어두운 심연 속에서 고통받고 수고하는 사람들의 세상으로부터 울려온 것을 암시하는 먼 곳의 소리들이 엘리너로 하여금 그녀의 말을 다시 반복하게 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 그러나 고통에 시달리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모든 거리 모퉁이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위에는 죽음이 있었다. 또는 더욱 나쁘게는.... 폭정, 잔인함, 고문, 문명의 타락, 자유의 종말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그녀는 생각했다-결국 파괴될 하나의 나뭇잎에 은신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엘리너는 말한다.

세상이 좋아졌다고,그들 수백만의 사람들 가운데 단지 두 사람이 <행복>하기 때문에.... 그녀의 눈길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키티가 말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한다면, 지난 날들은 괴롭고, 역겹고, 잔인한 세월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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