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터치가 좋은 소설이였다.
주요 등장인물
아시마, 아쇼크, 고골리(니킬), 모슈미, 소냐
"러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어라. 읽고 나면 다시 읽어라. 널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 거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이 되면서부터 아쇼크는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카라마조프의 형재], [안나 카레리나]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을 읽은것은,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복잡한 초우링히와 가리아핫 거리를 걸으면서였다.
그가 이번 여행을 위해 챙긴 책은 두꺼운 장정을 씌운 [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 모음집]이었다.
애칭이란 인생이 항상 그렇게 심각하고, 형식적이고,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유물, 어린 시절이 남겨준 유물인 것이다.
애칭은 또한 사람이란 함께 있는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아시마의 애칭은 모누이고, 아쇼크의 애칭은 미투이다.
귀염받을 때나 야단맞을 때, 그리움의 대상이 되거나 사랑받을 때도 언제나 이 이름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가족들에게 이 이름으로 기억되었던 것이다.
라나가 차마 누나에게 전화로 직접 할 수 없었던 얘기였다.
어제 저녁 아시마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침대에서 혼자 카드놀이를 하시던 채였다.
출생 신고서에 올라간 이름이 소날리였고 평생 지니고 다닐 공식적인 이름이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곧 그녀를 소누라 부르기 시작했고, 다음은 소나, 나중엔 소냐가 되고 말았다.
뉴일글랜드에서의 새로운 삶 속에서 벵골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또 하나의 삶, 과거의 삶 속에 있던 사람들의 수는 계속 줄어만 갔다.
아시마와 아쇼크를 본명으로서가 아닌, 모누와 미투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돌아가시는 분이 많을수록 한밤중에 그들을 깨우는 전화도 잦아졌다..... 부음을 알리는 편지는 다른 편지들처럼 분실되는 일이 절대 없었다.
나쁜 소식이란 전화기가 아무리 잡음이 많고 아무리 울려도, 언제나 어떻게든 전달이 되는 법이었다.
외국 생활 10년만에 그들은 고아가 되었다.
아쇼크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시마의 어머니는 신장 질환이었다.
고골리와 소냐는 새벽녘에 이런 죽음들로 인해, 얇은 침실벽을 사이에 두고 부모님들이 지르는 외마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알던 사람들, 사랑하던 사람들을 모두 잃은 채 오직 기억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남은 사람들.
아직 살아 있는 가족들까지도 어떻게 보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니콜라이 고골리는 1809년 폴타바 지방의 우크레이나 카자흐의 준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지주이자 희곡 작가로, 고골리가 열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네진 학원에서 수학한 그는, 1828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서 1829년에는 내무부 공공사업국의 공무원이 되었다.
1830년에서 31년까지 왕실 자산국의 궁정부로 전임되었고, 이후에는 교사가 되어 영 레이디 인스티튜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평생 들어온 자신의 애칭이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지닌채 다가왔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비극적인 사고와 관련된 어떤 것을 상징해왔던 것이다.
"그게 저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거예요?" 고골리가 물었다. "저를 생각하면 그날 밤이 생각나시냐구요?"
"아니, 전혀." 아버지가 한 손을 갈비뼈에 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까지 고골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습관이었다.
"너는 나에게 그후에 일어난 모든 것을 의미한단다."
1년에 한 번씩은 침대 위에 편지들을 모두 쏟아놓고, 하루 종일 부모님이 쓰신 글을 보며 실컷 울곤 하였다.
대륙을 가로질러 한 주도 빠짐없이 전해진 부모님의 정과 염려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것이다.
편지에는 케임브리지에서의 생활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이런저런 소식들이 적혀 있었는데, 이 무관한 소식들이야말로 그 시절을 버티게 했던 힘이었다.
"오늘 여기 왔던 거 기억할거지. 고골리?"
아버지가 손으로 마개를 하신 채 뒤돌아서서 그를 보며 물었다.
"얼마나 오래 기억해야 되는데요?"
바람이 획 불어왔다가 사라지면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멈추어 서서 기다리다가 고골리가 가까이 오자 손을 내미셨다.
"언제나 기억하도록 해라." 고골리가 다가서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머니와 소냐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아버지는 고골리를 데리고 방파제 위를 다시 천천히 걸었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데까지 우리가 같이 왔다는 것을, 너와 내가 여기까지 함께 왔었다는 것을 기억해라."
줌파 라히리의 저서
1999 <축복받은 집>
2003 <이름 뒤에 숨은 사랑>
2008 <그저 좋은 사람>
2013 <저지대>
2015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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